많이 웃어라.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는 것은 대개 얼굴의 생김새가 아니다. 또렷한 이목구비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분위기다. 어떤 이는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 주고, 어떤 이는 단정하고 조용한 표정만으로도 주변 공기를 맑게 바꾼다. 반대로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어딘가 불편하고 날이 선 인상을 주는 사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사실은, 사람을 끄는 힘이 외모의 조건만으로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힘은 말투와 시선, 감정의 결, 살아온 태도에서 천천히 만들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매력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외형과 연결해 생각한다. 피부가 좋고, 옷차림이 세련되고, 남들보다 눈에 띄면 그것이 매력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세월이 조금 지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오래 남는 사람은 반짝이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가 있는 사람이다. 가까이 있을수록 더 편안해지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진실하게 느껴지는 사람, 자기만의 결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마음을 연다. 결국 진짜 끌림은 상대를 압도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마음이 자기 곁에서 자연스럽게 놓이게 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힘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 한 사람의 내면에 쌓인 습관의 결과다. 무엇을 부러워했고, 무엇을 견뎌 냈으며, 얼마나 자주 자신을 돌아보았는지가 표정에 남는다. 그래서 얼굴은 단지 생물학적 형태가 아니다. 한 사람이 건너온 시간의 지층에 가깝다. 눈가의 결은 웃음과 근심이 지나간 자리이고, 입가의 모양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말해 준다. 누구는 세월을 탓하지만, 사실 세월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낸다. 애써 숨기려 했던 마음의 방향이 얼굴 위로 천천히 올라오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원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피하고 싶다고 다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억지로 붙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일도 있고, 실컷 애썼는데도 손에 쥐어지지 않는 일도 있다. 그럴 때 사람의 마음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점점 더 날카로워지는 길이다. 세상을 원망하고, 타인과 비교하고, 자신의 몫이 적다고 여겨 분노를 키워 가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조금씩 내려놓는 길이다. 될 일과 안 될 일을 구분하고, 내 힘의 바깥에 있는 일에 매달리지 않으며,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몫에 마음을 두는 길이다. 이 두 길은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은 결코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일을 지나왔기에 가능한 얼굴인 경우가 많다. 감정을 마구 쏟아 내는 대신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을 배운 사람, 서운함이 생겨도 곧장 칼날처럼 내보이지 않고 한 번쯤 속으로 삭일 줄 아는 사람, 자존심과 평온 중 무엇이 더 귀한지 알게 된 사람의 표정에는 묘한 여유가 깃든다. 그것은 타고난 선량함과는 조금 다르다. 삶을 통과하며 어렵게 익힌 절제의 결과에 가깝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분명해지는 것은, 얼굴이 마음의 습관을 닮는다는 사실이다. 늘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의 얼굴에는 그늘이 내려앉고, 자주 분노하는 사람의 표정에는 긴장이 굳어진다. 반대로 남의 빛을 시기하기보다 자기 몫의 햇살을 아끼는 사람, 실패를 핑계 삼아 더 비뚤어지기보다 다음 날을 살아낼 힘으로 바꾸는 사람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부드럽다. 평온은 원래 주어진 성격이 아니라, 선택하고 연습한 태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름답게 늙는다는 말은 단지 젊음을 오래 붙드는 기술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마음으로 세월을 받아들였는가의 문제다. 거울 앞에서 주름 하나를 지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표정 속에 쌓인 조급함을 덜어 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남과 겨루느라 잔뜩 힘이 들어간 얼굴보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낸 사람의 얼굴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삶의 무게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눌려 찌그러지지 않은 얼굴, 무너진 날이 있었어도 다시 일어섰다는 사실을 조용히 품고 있는 얼굴은 그 자체로 한 권의 기록이다.
사람을 끄는 힘도 결국 같은 곳에서 나온다. 꾸며 낸 친절은 오래가지 못하고, 계산된 미소는 금세 들킨다. 그러나 오랜 시간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대하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따뜻함이 흐른다. 그 힘은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조용하다. 그런데도 오래간다. 강하게 흔들기보다 깊게 스며드는 힘, 사람을 움켜쥐기보다 곁에 머물게 하는 힘, 그것이 나이 들수록 더 귀하게 느껴진다.
결국 사람의 얼굴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의 총합이다. 살아온 날들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그 흔적이 너무 날카롭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후회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원망만 남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상처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타인을 찌르는 칼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세월이 흐를수록 얼굴에 남아야 할 것은 승부의 표정보다 이해의 표정이고, 과시의 빛보다 잔잔한 온기일 것이다.
좋은 얼굴은 완벽한 얼굴이 아니다. 많이 웃어 본 얼굴, 많이 참아 본 얼굴, 때로는 무너졌어도 다시 제 마음을 추슬러 본 얼굴이다. 그런 얼굴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깊어지고,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을 끈다. 살아온 시간이 결국 얼굴에 적힌다면, 우리 각자의 얼굴에는 조금 더 너그러움이, 조금 더 평온이, 조금 더 다정한 흔적이 남았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이 마지막에 건네는 가장 진실한 이력서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