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이전, 이미 완성되어 있던 교육의 설계도

申叔時가 제시한 교육의 핵심

by 김희곤

우리는 중국 고대 교육을 말할 때 습관처럼 공자와 오경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이 순서는 자주 역사를 단순화한다. 공자는 출발점이 아니라, 더 오래된 전통을 정리하고 재구성한 인물에 가깝다. 그 사실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 주는 문헌 가운데 하나가 바로 《國語》 〈楚語上〉이다. 여기에는 楚莊王이 태자 箴의 교육 문제를 묻고, 申叔時가 그 방도를 진술하는 유명한 대목이 실려 있다. 이 장면은 공자 이전에도 이미 통치자를 길러 내는 정교한 교육 체계가 존재했음을 증언한다.


申叔時가 제시한 교육의 핵심은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몇 권의 경전 공부가 아니다. 그는 태자에게 《春秋》, 《世》, 《詩》, 《禮》, 《樂》, 《令》, 《語》, 《故志》, 《訓典》을 차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순서도 중요하다. 《春秋》는 선을 높이고 악을 눌러 마음에 경계심을 세우는 데 쓰이고, 《世》는 선왕의 계통과 흥망의 자취를 밝혀 德의 밝음과 어두움을 분별하게 하며, 《詩》는 뜻을 드러내고, 《禮》는 위아래의 법칙을 알게 하고, 《樂》은 내면의 거칠고 들뜬 기운을 가라앉힌다. 여기에 《令》으로 관직과 정무를 익히게 하고, 《語》로 선왕의 정치 언설을 배우게 하며, 《故志》로 흥망의 교훈을 깨닫게 하고, 《訓典》으로 족류와 의리의 질서를 분별하게 한다. 여기서 《世》는 단순한 족보가 아니다. 계보와 역사 기억이 결합된 정치적 기억의 장치다. 이 목록 전체를 보면 周代 교육은 이미 역사, 문학, 예악, 행정, 윤리를 하나의 체계로 묶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더 주목할 것은 申叔時가 교육을 독서에서 끝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이런 가르침에도 태자가 따르지 않으면 다시 文詠으로 풍자하고, 현량한 사람을 곁에 두어 보좌하게 하고, 몸소 부지런히 이끌며, 훈전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마침내 忠·信·義·禮·孝·事·仁과 文·武·罰·賞·臨의 방향으로 단계적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배움은 읽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가짐과 습관과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의 말로 옮기면 지식 교육, 인성 교육, 리더십 교육, 공공윤리 교육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하나의 인간 형성 과정 안에 들어 있는 셈이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후대의 六德, 六行, 六禮를 떠올리게 된다. 다만 여기서 문헌적 경계는 분명히 해야 한다. 《國語》 〈楚語上〉가 六德·六行이라는 정식 범주를 직접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제도 언어로 선명하게 정리되는 대표적 문헌은 《周禮》 〈地官司徒〉이며, 통행본에서는 六德을 知·仁·聖·義·忠·和, 六行을 孝·友·睦·姻·任·恤로 제시한다. 또 《禮記》 〈王制〉는 “司徒修六禮以節民性”이라 하여 六禮라는 범주를 말하고, 같은 편에서 “詩書禮樂”으로 士를 기르는 교육 원리도 함께 보여 준다. 그러므로 申叔時의 현실적 교육론과 《周禮》, 《禮記》의 제도적 분류는 이어져 있지만, 그대로 겹쳐 놓을 수는 없다. 전자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고, 후자는 그것을 제도 문법으로 정리한 결과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자의 위치가 선명해진다. 공자는 무에서 유를 만든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왕실과 귀족 사회 안에 존재하던 문헌 전통과 교육 전통을 다시 묶어, 그것을 더 넓은 인간 교육의 체계로 전환한 인물이었다. 申叔時의 교육이 통치자를 만들기 위한 공부였다면, 공자의 경학은 그것을 인간을 만들기 위한 공부로 확장했다. 권력의 후계자에게 집중되어 있던 교양을, 수양과 배움의 보편 원리로 끌어낸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위대함은 창조 그 자체보다 재편과 승화에 있다.


결국 《國語》 〈楚語上〉는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일깨운다. 공자 이전에도 교육은 이미 문명의 핵심 장치였다. 역사를 통해 선악을 분별하고, 계보와 기억을 통해 정체성을 세우고, 시와 음악으로 감정을 다스리며, 예와 법령으로 질서를 배우고, 고사와 훈전으로 정치의 무게를 익히는 교육이 이미 존재했다. 공자는 그 토대 위에 섰다. 그리고 그 오래된 귀족의 교육을, 후대 동아시아 문명을 지탱하는 보편적 공부의 형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런 뜻에서 申叔時의 한마디는 단순한 태자 교육론이 아니다. 그것은 공자 이전, 이미 하나의 문명이 어떻게 스스로를 가르쳤는가를 보여 주는 설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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