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이라는 작은 사회

주민과 경비원

by 김희곤

아파트 주차장은 기술의 공간이 아니라 성정(性情)의 전시장이다. 차를 대는 방식 하나에도 삶의 리듬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배어 있다. 좁은 공간일수록 한 사람의 편의는 곧 타인의 불편과 맞닿는다. 도시의 삶은 이토록 밀접하고 위태롭다.


예전에 아파트에 세 들어 살 때, 나는 차를 앞으로 들이대어 주차했다가 경비원에게 호되게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후진 주차를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침에 차를 빼기 편한 쪽을 생각했고, 그분은 화단과 질서를 먼저 생각했다. 당시의 내 눈에는 그것이 지나친 간섭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장면은 단순한 실랑이가 아니라 각자 다른 세계가 충돌하던 순간이었다. 나는 이동의 편의를 우선하는 사람이었고, 그분은 공동 공간의 규칙을 지키게 하는 사람이었다. 둘 다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이유의 유무가 아니라, 그 이유를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있었다. 우리는 상대를 한 사람으로 보기보다, 먼저 역할로 본다. 주민은 경비원을 “관리하는 사람”쯤으로 여기고, 경비원은 주민을 “통제해야 할 사람”쯤으로 여기기 쉽다.


그 경비원은 과거 하늘을 누비던 조종사였다. 사람들은 대개 현재의 직함으로 상대를 재단하지만, 누구에게나 그 이전의 시간이 존재한다. 제복을 벗었다고 자존(自尊)이 마모되는 것은 아니며, 경비복을 입었다고 생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상대를 사람보다 역할로 먼저 본다.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해는 독버섯처럼 자란다.


아파트는 묘한 공간이다. 같은 담장 안에서도 소유와 평수에 따라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다. 많이 가진 자도 늙고, 덜 가진 자도 피곤하다. 결국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저녁을 맞이하는 이웃일 뿐이다. 상대를 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순간, 갑질은 이미 시작된다. 내 편리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 공동체는 성가신 규칙 위에서 유지된다는 깨달음, 그것이 주차장이 내게 준 수업이었다.


품격은 대단한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문을 잡아주는 손길, 먼저 건네는 인사, 불편을 말할 때 낮추는 목소리 같은 사소한 절제에서 드러난다. 직함 뒤에 숨은 한 사람의 생애를 상상해 보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예의다.


우리는 모두 잠시 어떤 역할을 맡았다가 내려놓는 존재들이다. 주민도, 경비원도, 기장도 영원한 이름은 아니다. 끝내 남는 것은 내가 타인을 얼마나 사람답게 대했는가 하는 기억뿐이다. 오늘 스쳐 지나가는 이를 직함이 아닌, 생애를 가진 단독자(單獨者)로 볼 수 있다면, 우리 삶의 거친 모서리도 조금은 둥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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