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살갗
근 일 년 만에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 어머니는 점차 삶이 녹아내렸다.
근육과 살이 빠지면서 기억력은 덩달아 빠르게 빠져나갔다. 볕을 보지 못한 어머니 살결은 뼈에 납작 들러붙었고 희디희다. 닭뼈처럼 가늘고 긴 손가락 안쪽 맥박을 우연히 잡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맥박이 서맥이고 약간 부정맥이 있는 나보다 훨씬 힘차고 또렷하게 뛰고 있는 게 아닌가. 맥박만 살아 있었다. 다시 어머니 얼굴을 바라본다. 삶의 의지를 슬몃 가늠해 본다만, 없다. 아니, 느껴지지 않는다.
휠체어에 앉아 면회실로 온 어머니는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애기가 되어 있었다. 고개는 무겁게 뒤로 젖혀져 있다가 앞으로 툭 떨어지곤 했다. 두 손으로 받쳐보고 얼굴을 어루만져 본다. 아아, 세월의 무게가 고개에 실려 있었고 거무죽죽한 눈두덩이에도 시커멓게 담겨 있었다. 어머니의 피로가 찌르르 전해 왔다.
처음에 요양원에 보내드릴 때 함께 따라가 어머니를 산에 버리듯 버리는 느낌이 들어 남편과 어머니의 하나 남은 친 아들만 보내고 말았다. 당신이 낳지 않은 7남매-거기에 당신과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큰아들과 두 딸도 있었고-와 당신이 낳은 두 아들(그중 하나만 살아남았고) 거두시느라 숱한 세월 꼬부라지셨던 어머니.
그 뒤로 간간히 면회가 뵐 때마다 어머니의 말은 이상한 기호와 부호가 되고 알 수 없는 소리가 되어 벽에 부딪히며 더 알아들을 수 없어졌다. 간혹 도련님 손을 주먹으로 내리치기도 하셨었다.
요양원으로 모시게 된 까닭을 되짚어 본다. 밤새 느닷없이 두런거리던 어머니의 큰 소리에 불면증이 된 도련님은 참다 참다 어머니를 결국 요양원으로 모시고 싶어 했다. 절대로 요양원에 안 가시겠다던 어머님이 안타까웠지만 일단 도련님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모시고 사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언젠가부터 의무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결혼 생활 25년 넘게 충분히 의무를 다했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있었다. 9남매의 6번째 아들인 남편과 아내인 나, 우리는 시댁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거의 큰아들며느리 노릇을 해 왔고 대소사에 수시로 함께 했었다. 이제 그만 의무라는 끈을 놓아버리고 죄책감이란 그물에서도 놓여나고 싶어져 마침내 매듭 풀듯 풀어버렸었다.
오랜만에 함께 조지아랑 튀르키예 여행을 하면서 남편은 내게 추석 때는 집으로 오기를 바라며 어머니를 찾아보자는 말도 덧붙였다. 추석 전 두 아들이 먼저 어머니를 찾아뵈었으면 좋겠다는 내 간절한 부탁은 그에게 가 닿지 않았나 보다. (친 아들이 아닌) 그는 어머니께 가면 자신은 할 이야기가 하나도 없단다. 그럼 나는? 며느리일 뿐인 나는 어떨꼬, 생각은 해 보았으려나? 그저 의무의 실로만 엮여 있을 뿐인데 가서 말하는 건 거의 나뿐이다. 어머니의 귀에 대고 '어머니, 하* 엄마 왔어요! 어머니 저 알아보시겠어요?' 의미 없는 소리가 어머니 귓전에 흘러갔을 뿐이었다. 어머니 눈동자가 잠시 잠시 커졌다 사그라들곤 했다. 어머니의 살갗은 엄지검지로 집어 올리면 살 없이 가볍게 따라 오르며 금방이라도 몸에서 따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손으로 잡는 힘은 가끔 휠체어 앞부분을 그러잡을 때 최소한만 남아 있는 듯했다.
'차라리 자기 손을 주먹으로 내리치기라도 했으면...' 하고 도련님은 눈물 그득한 얼굴로 말했다. 어머니는 이젠 남았던 원망마저 하늘에 먼저 올려 보내셨나 반응조차 가뭇없었다.
아기로 돌아가는구나 저렇게. 인간이 네 발에서 두 발, 다시 세 발이다가 네 발로 돌아간다더니. 이제는 고개와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허공에 몸을 맡기고야 말았구나.
어머니, 다시는 당신의 두 다리로 서지 못하시리라. 말깃말깃한 살갗과 살 없는 팔다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살갗 아래 간직된 꿈은 뭐였을까? 꿈은 과연 있기나 했을까? 당신의 눈물과 원망, 기쁨과 슬픔은 살갗 속에 얼마나 얇아져 있으려나?
어머니, 9남매 돌보시느라 애쓰셨어요. 어머니,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고마워요!
아들들이 못다 한 말을 어머니 귓가에 천천히 속삭여드리고 돌아섰다.
어머니,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으셨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분명 고마운 분이었어요.
... 알아들으셨지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