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al Transparency

내면의 악을 다루는 방법

by 윤우

인간은 감정으로 살고, 이성으로 걷는다. 이성은 인간의 물리적인 힘, 의도적인 움직임을 담당하는 매우 현실적이고 성숙한 감각이다. 감정은 그와 반대이다. 감정은 때때로 변칙적이고, 제어불능이며, 의도적이지 않고, 정신적인 태초의 힘을 담당한다.


우리 주변에는, 매우 조용하고 입술이 사막이 되도록 입을 잘 열지 않는 ‘shy’한 사람들이 있다. 독자라면, 성인이 대부분이겠지만, 초등학교 시절을 기억하면 정말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한마디도 안 하는 친구를 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 친구들과 친해지기 쉽지 않았을 거다.


단순히 성격상 말을 안 해서 친해지기 어렵다는 말이 아니다. INFP라고 해서 주변에 친구들이 없진 않을 것이다. ‘말이 없는 친구’라는 건, 자기 자신의 감정이 이성에 의해서 완전히 막힌 친구, 다른 말로 ‘어릴 때부터 감정을 매우 잘 다루는 친구‘를 말한다.


특히 가정이 매우 엄격하거나(방치하거나), 어렸을 때부터 고된 일을 당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어릴 때부터 안전하지 않은 환경, 단순히 집이 없는 환경에서부터,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없는, 지켜주지 않을 거 같은 생각이 어린 나이에 지속되었다면, 그럴 확률이 높다.


왜 그런 이유에서부터, ’말이 없는 친구’가 되었을까. 인간은, 특히 어린 나이에서부터, 자신만의 ‘자기 방어기제‘를 형성한다. 어린 나이일수록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자‘의 존재감이 매우 중요하다. 슬프게도, 위와 같은 고된 상황을 겪은 경우, 자기 인생에서의 ’보호자’는 결여된다.


집과 밥을 주고 돌봐주는 사람을 ‘보호자’라고도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해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린아이의 감정은 아직 미완성이고, 조절에 미숙하다. 자기 자신의 감정의 정의조차 알지 못하는 장님 신세인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 없는 친구’는 어떻게 ’어릴 때부터 감정을 매우 잘 다루는 친구‘로도 불릴 수 있을까. 감정이 무엇인지 모른 채, 다가오는 악의 감정이 무서워서 만지지도, 보지도, 듣지도, 맡지도 않고, 가슴 깊이 창고방에 가둬버린 채 좋은 감정만 같이 있으려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고, 어른도 똑같이 한다. 그러나 어른의 차이점은 창고방에만 두지 않고, 나중에서라도 직접 들어가 자신이 물리치는 용기와 방법을 이미 배웠다는 것이다. 썩히지 않는다. 언젠가 풀리기 마련인 존재다.


그러나 ‘말이 없는 친구‘, 어린아이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용기는 당연 없고, 이 감정이 뭐라고 불리는지도 모른다. ’말이 없는 친구’에게는 그때마다 배울 기회도 적기에, 창고방에 쌓인 빚은 계속해서 쌓여가고, 썩어간다.


누군가 이 감정을 풀어주었으면, ’보호자’가 풀어주었으면, 그렇게 계속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상황도 상황일뿐더러, 그런 마음조차 ’악의 감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 조차도 창고방에 넣는다. 자기 자신의 상태조차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커가는 아이는, 점점 문제가 발생한다. 썩어간 ’악의 감정‘이 진짜 ‘악마’로 탄생한다. 너무 커진 몸에 창고방이 터진다. 팡.


팡, 터진 악마는, 문을 열고 복도로 뛰어서, 좋은 감정도 잡아먹어 간다. 그나마 좋은 감정과는 곁에 있으려 했기에 다행이었지만, 이것마저도 먹어간다. 이성으로도 조절이 안된다. 지금까지 쌓아온 ‘악마’는 너무 파괴적이고 무자비해서,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현실에서도 파괴되기 시작한다. 모든 일이 정지된다. 사고도 정지되며, 지금껏 잘해오던 것이 잘 안 되기 시작한다. 학교, 학원, 직장 출석/출근율이 낮아지고, 주변 친구가 줄어들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몸에 이상이 생긴다. 소화계에 생기는 경우가 많으며, 불면증이나 ADHD도 쉽게 걸린다. 심하게는 암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있기도 하고, 조울증이 있기도 하고, 무기력증에 걸리기 쉽다.


’악의 감정‘, ‘악마’가 너무 강력해서, 모든 걸 파괴한다. 전쟁과도 같다. 그러나 이 아이는, 다룰 줄 모른다. 총과 칼도 없다.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순간에 찾아온다. 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서, 이상한 음지 커뮤니티에 들어가거나,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이제 방법이 없는 것일까.


그래서, 혹시나 이런 아이였을지도 모를까 하는, 성인 또는 청소년 독자 여러분이었다면, 필자가 이제부터 간접적이게라도 총과 칼을 지급해드려 보겠다. 지금에서라도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1.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직시한다. 아무 생각이나 다 나는 대로 하는 것도 좋지만, 위험한 생각이 들기도 하기에, 그러기보단 생각의 흐름을 막지 말자라는 태도로 접근해 보자. 시냇물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다. (한편, 일부 생각하는 것조차 윤리적으로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던데, 개인의 생각 내에서의 세상은 현실화하지 않는 이상 ’법’이 없다. 자기 파괴적이지만 않으면 정말 무엇이든 좋다.)


2. 과거의 거슬리는 감정이 무엇인지 자기 만의 태그를 단다. 직장 상사한테서 들은 말이 불쾌했다면, 그 일의 감정은 나에게 ‘불쾌함’인 거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들어라‘와 같은 도덕적인 규칙은 이제 필요없다. 하찮은 남의 언동에 자신의 감정을 묵살당하지 말자.


3. ‘악의 감정’이 어느 정도고, 무엇인지 알았다면, 이제 길들여야 한다. ‘악마‘는 길들여지지 않은 늑대와 같다. 적당히 사육해야 한다. ’악의 감정’, ‘배고픔‘은 풀어져야 한다. 운동도 좋고, 여행만 다니는 것도 좋고, 하루 종일 책을 읽어도 좋다. 그 ’악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풀어주는 자신만의 행동을 일상에서 실천해 보자.


4. 그런 행동이 ‘악의 감정‘을 잠재우는 시기가 분명 온다. 감정이 더 이상 요동치지 않으며, 누군가는 ’악의 감정‘과 공생한다고도 한다. ’악의 감정‘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줄어들면, 그때 모든 행동을 멈춘다.


5.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일 외에는 아무 생각이 안나는 것이 좋으며, 지속 가능한 생산적인 일을 시작한다. 사업도 좋고, 취업도 좋고, 알바도 좋으며, 공부, 대회, 프로그래밍, 미술, 스포츠, 공예 등 자신이 자신을 빛낼 수 있는 일을 시작한다.


6. ’악의 감정‘에서도 점점 빛이 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그동안 돌봐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 그리고 삶의 ‘변화 가능성’을 보기 시작한다.


7. 자신이 가진 모든 장애와 단점, 그 모든 안 좋은 것에 대한 생각이, ’악의 감정’이 나에게 흡수되기 시작한다. 곧 에너지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이성은 드디어 ‘악의 감정’과 대면했으며, 사실 ’악의 감정‘ 그 자체는 곧 ‘나’이기에, ‘나‘의 관한 모든 것을 포용한다.


여기서까지 잘해왔다면, 앞으로는 ’악의 감정’이 더 커질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너무 깊게 바라본 것이 아닐까’라고 독자 여러분이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안 해본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주변에는 연식이 있어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악의 감정’이 너무 부풀려 저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젊은 사람들을, 서울 강남에서 자주 본다.


각자의 성격이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지만…

가장 보편적인 원인일 것이고,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