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urður Guðmundsson - "Event" (1975)
계영배
먼저 떠난 여동생 몫까지 살아보겠다고
매일매일을 한도초과하며
능력 과대망상을 수년
대체 누가 듣는다고
묻지도 않은 개인사를 나는
적고 또 적고
배알은 노냥 집에 놓고 다니는 걸까
매번 떨어지는
글을 내고 또 내고
그렇게 대책 없이 당겨만 지던 줄이
툭! 끊어지던 어느 날
"본인은 굳이 말하자면 피카소에 가까운데
하루키 흉내를 내는 것 같아.'
하루아침에 하루키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지인에 들켜버린 하루키 지망생은
결국 절필을 선언하고
어느 작가 지망생의 하루키 흉내내기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돌연
끝이 났다.
하루키도 아니었지만
다른 딱히 재주도 없던 하루키 지망생에겐
하루키 되기만큼이나
하루키 아닌 것도 쉽지 않았다
하얗게 지새우는 밤들이 늘어가고
그걸 보는 아부지 흰머리도 늘어가고
어릴 적 한문시간에 들었을까?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내버려 두지 않고
자식은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평생을 매달 통장에 돈이 스쳐 지나가지만
흰색 벤츠는 못 버리는 딸내미에게
평생을 오천 원짜리 바지만 사 입던
아비는 백화점에서 하얀 코트를 턱턱 사주곤 했다
과년한데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알 수 없는 딸내미는
좋다고 마냥 신나게 입고 빙글 돌고
여든의 아비는 그런 반백살 딸을 보고
환하게 웃고
하얀 눈은 아직 안 녹았는데
코트는 있고 아빠는 없는 첫겨울
그렇게 죽을 듯 울더니만
배는 또 고프고
덥수룩한 머릴보니
머리도 잘라야겠네
서랍정리하다 발견한
아빠 하얀 난닝구
여름이면
하얀 난닝구만 입고
물이 뚝뚝 흐르는 해삼 잡아 내밀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엄마는 친정집에서 울고
난 우리 집서 울고
남의 집 아빠 부고엔
눈물이 안 났었는데
아부지 난닝구를 잡고 난 죙일
몰아서 운다.
70 노인이 되더라도
아부지 앞에서
한바탕 자랑 좀 해볼라고
그간 용을 써 왔는데
이제 뭐 뭐가 되든
이제 뭔 상관
사람 인생 한 치 앞을 모른다고 했던가
언젠가 읽은 책, "내려놓음"
그땐 그저 눈으로 읽은 책이
이제는 훅, 가슴으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