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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송 Oct 18. 2024

  외판원의 한마디

                     ( 79년 암흑의 세계)

           책을 통해 들려온 외판원이 내 인생 사십오 년 길이 되었다.


어느 날 책장사 외판원이 우리 집 왔다.

큰딸 다섯 살 손을 잡고 우리 집을 방문한 그는 “계십니까?”  큰딸에 의해 엄마 있음을 확인하고 들어 온터


나는 안방에서 재봉틀을 하고 있었고 그 손님의 소리를 듣고, 나는 대화하기 위해 머무르시려면 시간이 없어 대화를 못 합니다. 그러나 물 한 모금이 필요하시면 물은 드리겠습니다.     


내 나이 29세였다 (79년도 5월) 젊은 시절 이야기다 아이들 나이 세 살, 다섯 살이기에 단독 집이고 대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책장 사는 나가면서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이 이러고 있으니 우환이나 있지 말을 남기도 떠나는데 그 말의 뜻이 나를 붙잡았다. 아저씨! 뒤통수에 대고 다시 그분을 불렀다.


어찌 그런 말을.........

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그분을 불러 소파에, 앉혀 놓고 물 한 모금을 대접하는데

저에게 기도를 좀 해 드릴까요? 하는 것이었다. 대화 속에 그는 목사가 되기 위해 돈을 만들기 위해 외판원을 한다고 했다.     


          79년도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이별이 새로운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79년 1월 2일 할머니 사망, 일곱 살 조카가 1월에 사망, 친정아버지가 3월 21일 사망하면서 삼 개월 동안 3명이 세상과 이별, 그런 상태에 5월에 외판원이 오셔서 나에게 한 그 한마디 말 그 자체 충격이었다.       


우리 식구는 다섯 식구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었다.

일어나면 우환으로 짓밟혀 있는 악몽 같은 79년도     

그 별이 되어 천사를 보내신 외판원의 등장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사실 남편에 의해 천주교 입교를 했지만 그 시간 때에는 냉담(쉬는 신자) 중이었고 난 사실 통신교리로 교육을 접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때였다     

그날 밤에 잠을 청하는데 요즈음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앞에 세 번이나 나타나셨다는 사실이다. 믿거나 말거나

실제상황으로 흰옷을 입으신 상태로 하늘로 오르시는 모습,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불을 꺼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아침 새벽에 성당을 찾아갔다. 수녀님께 이 사실을 그대로 말씀드리고 수녀님의 도우심으로 신앙생활을 새로 접하게 되었다.     


나는 70년도에 뺑소니 자동차 사고로 일 년을 투병 생활을 하고 임종을 지켜보는 나의 삶이었다. 사고로 인한 장애인이었다. 왼팔과 오른쪽 다리가 마비가 되어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야 했고, 그 뒤 남편을 만나 장애인으로 결혼을 했다

 남편은 천사로 나에게 와서, 남편의 돌봄으로 지금은 이렇게 정상인으로 잘 살고 있다.     

         

           묘 위에 지은 집이라는 이웃집 이야기          


이런 병력과 3명의 가족을 잃은 아픔 가운데 그 외판원의 의미심장한 말  내 가슴을 두드렸다. 사실 그 집이 독산동이었는데 산을 깎아 집을 지은 터인 것을 내가 집을 살 때 에는 새로 지은 불란서 집, 그 집 내용은 아무것도 모르고 새집이라는 장점을 보고 샀는데


나중에 교회에서 은사 받으신 분이 오셔서 집터가 세다고 지하실에 십자고상을 걸고 방보다 지하실에서 기도를 많이 하라고..,     

연탄만 갈러 지하실에 내려가면 머리가 쭈뼛쭈뼛 소름이 끼치고 늘 우환 속에서 5년을 버티며 그 집에서 우환과 경제적 고통과 씨름하면서 살았다.


마중 물조차 바닥이 난 신세,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막막한 시간과의 싸움,

삶 자체가 전쟁이었다.     

방이 네 칸 이어서 아버님 방이 따로 있었는데

아버님 방은 괜찮았는데 방 3칸은 뭔지 모르게 너무나도 힘들고 힘들게....

알고 보니 3개의 무덤 위에 지은 집이란다 군데군데 산소가 있었던 지역이란다  원주민 신자 말에 의하면


그 외판원으로 인해 신앙을 찾게 되는 별의 인도가 있었으며 그곳에서 엄청 큰돈도 벌어 나 올 수가 있었다. 그 시기가 집값이 하루하루 천정부지로 오르는 때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집터가 센 집에서 죽지 않고 나온 게 다행이다

기가 약하면 죽었을 텐데 하는 것이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우환으로 고생하고 경제적으로 곤두박질치고, 사람이 패대기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정도의 고난과 역경과 험난 참 지독한 시간이었다. 그것을 다 견디고 새로운 창조가 발생되었다.     


그해 79년 10월 남편이 심장 옆구리 부문을 갈라서 인공위성 돌리듯 가슴은 50 바늘 꿰매는 대동맥 폐동맥 수술을 하게 되었다. 언니는 말했다 나는 할머니, 내 딸, 아버지를 3개월 동안 다 잃었지만 너는 남편이 수술만 하면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이 있으니 기운을 내라, 울지 말고, 아마 박서방이 선한 사람이어서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외판원의 한마디가 너무 고맙고, 지금은 책 (성경) 속에서 쉬고 있다. 


 결국 남편은 서울대 혜화동에서 심장 수술을 하고 회복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금 새로운 가정으로 탄생하여 가장의 역할을 잘 이어 가고 있습니다.     

고통 뒤에 영광이 찾아왔고

저 구름 뒤에 태양이 없다고 누가 말하는가?

어둠 뒤에 숨어있는 빛의 찬란함이 나를 반겨주어

지금은 희망찬 세상, 살아 볼만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한마디의 언어로 나는 깨어났고

힘겨움이 장애물이 아닌 디딤돌이 되어 징검다리를 밟고

건너와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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