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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Apr 29. 2024

책들의 시간 83. 초보 노인입니다.

# 김순옥 에세이, 민음사,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노년의 삶에 대하여 계속 생각하고 있다. 정말 옛날 어른들이 하던 말씀 그대로 눈 떠보니 늙어 있더라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사십 대 중반으로 아직 ‘늙음’을 말하기에는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괜스레 책도 찾아 읽어보고, 엄마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늙음’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늙어가는 것이 두려웠던 적은 없으나, 그건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겠단 생각도 든다. 막상 사십 대 중반에 여기저기 아픈 일들이 생기고, 급격하게 떨어지는 체력에 한계를 마주하기도 하고, 옥수수 과자를 먹다가 치아가 빠지는 일을 겪으면서 건강하지 못한 삶이 얼마나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일인지 체감하고 있다. 그러면서 늙음이라는 키워드에 더 많이 집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발견한 책이 ‘초보 노인입니다’이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라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표지도 참 좋았다. 표지 속 어르신들의 그림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1. 소통과 고립, 그 사이.


  이사한 지 여섯 달 만에 다시 아파트를 내놓을 만큼 나는 실버의 세계에 적응을 못했다. 식당의 음식이 특별히 나빠서도, 동아리 활동이 맘에 안 들어서도 아니었다. 이 아파트 전체에 흐르고 있는 실버들의 분위기에 스며들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아직 내가 실버라는 실감을 하지 못한 채 이방인처럼 살고 있었다. (85쪽)     

  우리가 노인인 걸 우리만 모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아니, 각자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노인이 홀대받는 시대이기 때문에 노인이 되어가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부모 세대가 쉰이면 흔연히 노인의 삶을 받아들였던 것과 달리 나는 환갑을 넘기고도 스스로 노인이란 사실을 남을 통해 알아 가고 있다. 가르쳐주지 않으면 스스로 알아 가기 어려운 세대인가 보다. 우리는. 

  어쨌든 그렇게 노인이 되는 법을 배워 간다. (168쪽)


  이 책은 은퇴 이후 남편과 함께 ‘실버 아파트’에 들어가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노인의 삶에 대하여 쓴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술술 잘 읽히는 문체와 단정하면서도 아름다운 어휘들을 발견하고, 작가님이 궁금해지긴 했다. 

  작가는 노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진 실버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입주의 기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아파트 전체에 흐르고 있는 실버들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서였다. 작가의 말을 빌려와 표현하자면, ‘생각과 실체의 간극’. 여전히 젊은것 마냥 생활하고 그렇게 느끼고 있지만 실체는 노인인 것, 그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사람들에게 ‘실버 아파트’라고 알려진 곳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이사를 결정하게 된다.      


  ‘실버’라는 어휘는 언제부터 ‘노인’을 의미하게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진 않았다. 보통 우리는 노인들을 위한 공간이나 편의 시설을 부를 때 ‘실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런 현상이 아파트에서도 적용되고 있나 보다. ‘실버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60세가 넘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아파트는 노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동아리 활동이 개설되어 있으며, 의료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고, 노인들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키워드가 ‘소통’과 ‘고립’이었다. 1인 가구의 증가, 노년층의 증가와 같은 사회의 변화 속에서 ‘고독사’라는 용어가 생길 만큼 혼자서 맞이하는 죽음이 흔해진 요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소통이나 연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의 성격으로는 ‘소통’이 쉽지 않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활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많이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보다 익숙한 것이 좋고, 새로운 단체에 가입하는 것보다 울타리 안에 소속된 안정감을 더 많이 추구한다. 

  하지만 지금이야, ‘직장’이라는 이름으로 소속된 단체가 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안전한 울타리가 있으며,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날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고 계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나이가 들었을 때 소통의 범위가 좁다면, ‘고립’을 경험할 수도 있다. 나는 그 고립의 마음을, 감정을,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외로워하지 않고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사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2. 지금, 지금 이 순간


  “그래, 다 사는 방법이 다르니까, 우린 친구랑 같이 다니는 걸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 인생이 별거야? 내가 세계 구석구석을 다 다녀 봤는데 어디가 제일 좋았냐 하면 말 통하는 친구들하고 다닌 때였어 난 지금 여기 이 사람들이 좋아.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그나마 건강할 때 옆에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 지내는 게 최고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최고야. 그게 누구든.”(57쪽)     

  물론,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지만 대개 식당의 분위기는 편안하다. 혼자인 분들이나 부부나 모두 편안하게 식사를 한다. 혼자 먹는다고 해서 특별히 외로워 보이지도 않는다. 혼자인 분이 많고 혼자인 것이 아무렇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실제적인 필요가 채워지는 위로의 공간인 식당은 중요하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 가치를 식당 운영자들이 알아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73쪽)


  작가가 만난 실버 아파트의 이웃이 해 주신 말, ‘다 사는 방법은 다르니까.’ 여기서 위로를 받는다. 늙음과 젊음을 나누는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듯이, 사람마다 사는 삶의 모습에 정답과 오답을 나누어 나와 같지 않음을 틀렸다 말할 수 없다. ‘난 지금, 여기 사람들이 좋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산다면, 충분하다. 혹여 외롭고 높고 쓸쓸할지라도 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괜찮다. 

  책을 읽으면서 실버아파트의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식당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유료이기는 하지만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의 제공으로 노인들의 실제적 필요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도 더 눈길이 갔던 부분은 혼자 식사를 하는 노인이 많다는 것이다. 가족을 이루고 살아도, 노년에 혼자의 삶을 살게 되는 시기가 충분히 올 수 있음을 잘 알기에. 하지만 책 속에 그려지는 분위기는 ‘혼자 먹는다고 특별히 외로워 보이지 않았고, 혼자인 것이 아무렇지 않다’라는 것.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혼자서 카페를 가고, 혼자서 영화를 볼 수는 있지만 혼자서 밥 먹기까지의 시간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역 일주일 살기를 하면서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니 아무렇지 않아 졌다. 같이 먹을 사람이 있을 때 같이 먹고, 같이 먹을 사람이 없을 때 혼자 먹는 것, 그런 것일 뿐인데 괜스레 의미를 두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 불필요한 일이다.      


3. 정리     


  다가오지 않은 노년의 삶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열여덟 살 때 이십 대의 삶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이십 대 감정의 노예처럼 나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감정들에 휘둘렸을 때에도 나는 그 시기를 지나왔으며, 뒤에 부끄러움은 남았지만 그럼에도 ‘성장’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삼십 대를 살아낼 때 내가 사십 대에 경험할 일들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니, 나의 육십 대를 섣불리 장담하지 못하는 것, 불안해하지 않는 것, 나에게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늙음을,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 


  ‘초보 노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매 순간이 처음인 채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경험의 폭이 쌓여 어떤 일들에도 관대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나는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경험이 부족하며, 여전히 많은 일들 앞에서 헤매고 심지어 속도 좁아 작은 일에도 삐질 때가 많다. 그러니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야겠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까? 있다면 언제였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생각과 실체의 간극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으며, 지금은 어떤 과정 중에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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