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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말투'에 숨어 있다

브랜드 페르소나와 마이크로 카피의 과학

by 김석민

이전 글에서 우리는 토스의 화면 설계가 단순한 UI가 아니라 '대화'임을 확인했습니다.

“어디로 돈을 보낼까요?”라는 문장이 금융 행위를 일상의 행동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내용이었죠.

이번에는 그 ‘문장’ 자체에 집중해 보려 합니다. 사람의 뇌는 화면 구조만큼이나 언어의 온도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브랜드가 건네는 짧은 문장 하나, 오류 메시지 한 줄도 사용자의 머릿속에 그 브랜드의 태도로 남습니다. 작은 문장이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은 실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뇌는 브랜드를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의인화(Anthropomorphism)'의 과학

우리가 로봇 청소기에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거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이것은 단순한 장난이 아닙니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회적 뇌'를 가동합니다.

특히 내측 전전두피질(mPFC)은 타인의 성격이나 의도를 파악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인데, 흥미롭게도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깊이 생각할 때도 이 영역이 똑같이 활성화됩니다. 즉, 뇌 입장에서 나이키는 '도전적인 코치'이고, 당근마켓은 '동네 이웃'이라는 하나의 인격체(Persona)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입니다.


마이크로 카피: 찰나의 순간에 건네는 위로

거창한 슬로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버튼, 안내 문구, 로딩 화면 등에 들어가는 아주 짧은 텍스트, 마이크로 카피(Microcopy)입니다. 사용자가 가장 불안하거나 지루해하는 순간, 브랜드의 진짜 센스가 드러납니다.


사례 1: 당근마켓의 '따뜻한 이웃' (온도)

중고 거래 앱 당근마켓은 사용자 평점 시스템을 '매너온도'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인 접근: "평점 4.5/5.0" (평가와 심판의 언어)

당근의 접근: "매너온도 37.5도" (체온과 감각의 언어) '점수'를 '온도'로 바꾼 이 작은 언어적 장치는 뇌의 감각 영역을 자극합니다. 사용자는 거래를 '평가받는 시험'이 아니라 '온기를 나누는 교류'로 기억하게 됩니다. 36.5도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심리를 자극해 행동을 변화시킨 좋은 사례입니다.

1d808135-0be9-4672-a9ec-c8e73408e919_1_ZB0odurYlAR58eOO_Zimew.jpg 당근마켓 블로그 참조
1d063127-e644-4f03-9912-e54e52887bcd_1_l_u0AWiQ1UXWu0zTjOlTdQ.webp?auto=compress,format 당근마켓 블로그 참조


사례2 : 메일침프(Mailchimp)의 '하이파이브'

이메일 마케팅 담당자에게 가장 떨리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바로 수천 명에게 메일을 보내는 '발송(Send)' 버튼을 누르기 직전입니다. "혹시 오타가 있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극에 달하죠.

이때 메일침프의 마스코트 '프레디'는 땀을 뻘뻘 흘리는 애니메이션으로 사용자의 긴장에 공감해줍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High Five!"라며 손바닥을 마주치는 하이파이브 애니메이션을 보여줍니다.


mailchimp-high-fives.jpg 매일메일침프(Mailchimp)의 '하이파이브'


Before (일반적): "발송이 완료되었습니다." (건조한 사실 전달)

After (메일침프): "성공! 이 메일은 이제 세상을 향해 날아갔어요. 하이파이브!" (감정적 해소)

이 작은 애니메이션과 카피는 사용자의 '불안(Cortisol)'을 순식간에 '성취감(Dopamine)'으로 바꿔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을 어루만지는 마이크로 카피'의 힘입니다.


실수했을 때, 본성이 드러납니다

사람 관계와 마찬가지로 브랜드의 진가는 문제가 생겼을 때 드러납니다.

에러 메시지나 권한 요청 같은 '부정적 경험'의 순간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브랜드의 호감도를 결정합니다.


기계적인 언어 vs 페르소나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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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페르소나를 설계하는 3가지 원칙

그렇다면 우리 브랜드의 목소리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1. '누구'인지 정의하세요 (Define the Character)

브랜드가 사람이라면, 연예인 누구와 닮았나요?


배달의민족 : 진지해서 더 웃긴 동네 형

배달의민족은 정반대의 전략을 취합니다. 가장 진지한 서체(한나체 등)로 가장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키치(Kitsch)한 동네 형'입니다.

Role : 맛집을 꿰뚫고 있는 유쾌한 형 (Foodie Buddy)

Tone: 위트 있는(Witty), B급 감성의(Kitsch), 진지한 척하는(Serious but Funny)

Key Principle :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달의민족은 기업이 고객에게 하는 딱딱한 말을 쓰지 않습니다. 친구끼리 주고받을 법한 대화체로 사용자의 심리적 방어기제를 무장해제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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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1_22213_5342.JPG 배달의 민족

나이키(Nike) : 당신의 위대함을 믿는 코치

나이키는 물건을 파는 상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용자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한계를 넘도록 독려하는 '전설적인 스포츠 코치'의 페르소나를 씁니다.

Role: 나의 잠재력을 믿어주는 코치 (Coach)

Tone: 단호한(Assertive), 영감을 주는(Inspirational), 역동적인(Energetic)


나이키의 앱과 웹사이트에서는 '소비자'라는 단어를 찾기 힘듭니다. 대신 "If you have a body, you are an athlete (몸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선수다)"라는 철학 아래, 고객을 'Athletes(선수)'로 대우합니다.

할인 행사: "재고 정리 세일" (X) -> "Member Days / Energy Week" (O) (팀원을 위한 축제)

상품: "신발/의류" (X) -> "Gear (장비)" (O) (승리를 위한 무기)

품절/출시: "구매하기" (X) -> "Got 'em / Draw" (O) (쇼핑이 아닌 게임과 승리)


나이키는 사용자의 뇌 속에 '쇼핑'이 아닌 '훈련'과 '성취'의 회로를 자극합니다. 그래서 나이키의 알림은 광고가 아니라, 나태해진 나를 깨우는 동기부여(Motivation)가 됩니다.


2. 상황에 맞는 톤을 조절하세요 (Context is King)

일관성이 중요하지만, 융통성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결제 오류가 나서 돈이 묶인 상황에서 "이런! 실수가 있었네요~ 찡긋" 같은 위트 있는 말투를 쓴다면 사용자는 분노할 것입니다.

기쁨의 순간엔(구매 완료) 더 크게 축하하고, 불안의 순간엔(서버 오류) 진중하고 명확하게 안내하세요. 이것이 '공감 능력' 있는 브랜드입니다.


3. 능동태와 대화체를 사용하세요

"회원 가입이 완료되었습니다" (X) -> "환영합니다! 이제 시작해볼까요?" (O)

"결제가 진행됩니다" (X) -> "결제를 시작할게요" (O) 수동태는 책임을 회피하는 느낌을 주지만, 능동태는 함께 행동하는 느낌을 줍니다. 사용자의 뇌는 '시스템'이 아니라 '나를 돕는 주체'가 있다고 느낄 때 안정감을 갖습니다.


문장은 '정보'가 아니라 '감정'입니다

마이크로 카피는 단순한 텍스트 전달을 넘어, 브랜드의 온기를 전하는 가장 효율적인 매체입니다. 화려한 디자인은 순간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마음에 남는 한 문장은 긴 기억을 사로잡습니다.

당신의 앱을 켠 사용자에게 가장 먼저 건네는 말은 무엇인가요? 그 사소한 한마디가 당신의 브랜드를 '그저 그런 앱'으로 남길지, '또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남길지를 결정합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지금, 어떤 말투로 말을 걸고 있나요?



이 글은 비쥬얼스토리의 실무 경험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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