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여전히 ‘만들 이유’를 묻는가

by 김석민


요즘은 “팔리는 것”이 거의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잘 팔리면 좋은 기획이고, 많이 클릭되면 옳은 메시지라는 인식이 너무 자연스럽다. 그러다 보니 왜 만들어졌는지 설명할 수 없는 콘텐츠, 태생 이유를 묻기 민망한 브랜드와 웹사이트가 빠르게 늘어났다. 디지털 환경이 바뀌었을 뿐인데, 기획의 초발심은 오히려 더 쉽게 포기된다.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이런 방식이 과연 수익이 되느냐”고.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거꾸로 묻는다. “이걸 굳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는 아무리 예산이 커도, 아무리 일정이 급해도 결국 오래 가지 못했다.


목적 사업과 수익 사업은 분리되지 않는다

많은 조직이 ‘의미 있는 일’과 ‘돈이 되는 일’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나눈다.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은 내부 브랜딩용으로만 남고, 수익 사업은 점점 시장의 흉내로 변질된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다르다. 목적이 분명한 프로젝트일수록 오래 살아남고, 본질이 또렷한 브랜드일수록 결국 수익으로 돌아온다.

비쥬얼스토리가 공공, 교육, 식품, 제조,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영역을 넘나들며 20년 넘게 프로젝트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이 브랜드는 왜 지금 존재해야 하는가

이 서비스는 사회에서 어떤 빈자리를 메우는가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끝까지 붙들었기 때문이다. ‘잘 팔리게 만드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였다.


흉내로는 기획이 되지 않는다

시장은 언제나 “요즘 잘 되는 레퍼런스”를 요구한다. 하지만 흉내는 결코 원작을 이길 수 없다. 비슷해 보이는 웹사이트, 비슷한 문장, 비슷한 UX는 결국 기억되지 않는 경험으로 남는다.

비쥬얼스토리는 내부에서 늘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기준은 시장에 없다.” 기획은 조사로 시작할 수는 있지만, 답은 조사에서 나오지 않는다. 답은 현장에서, 사용자 맥락에서,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불편한 질문에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경력보다 사고방식을 보고, 숙련도보다 질문하는 태도를 본다. 이미 굳어버린 방식보다 아직 비어 있는 감각이 더 위험하고, 동시에 더 가능성이 크다.


자율성은 방임이 아니라 책임이다

창의성은 회의실에서 합의로 태어나지 않는다. 모두가 무난하다고 고개를 끄덕인 결과물은 대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결과가 된다. 비쥬얼스토리는 자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자율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방향은 분명해야 하고

기준은 공유되어야 하며

잘못되었을 때는 즉시 짚어야 한다

자율성이란 마음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끝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다. 때로는 치열하게 부딪히고, 의견이 갈리고, 감정이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 끝에 “이건 정말 우리가 아니면 못 했을 결과다”라는 확신이 남는다면 그 충돌은 실패가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다

가장 강력한 콘텐츠는 머리로 짜낸 문장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나온 언어다. 우리는 수많은 브랜드를 만나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스토리는 화려한 이론이 아니라 대표의 하루, 직원의 동선, 고객의 망설임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래서 비쥬얼스토리는 브랜드를 설명하기 전에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아 왔는지를 묻는다. 디자인은 그 다음이다. UX는 그 다음이다. 웹사이트는 그 다음의 다음이다.


여전히 놓지 않는 질문

우리는 여전히 이 질문을 붙들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덜 피곤하게 만드는가

이 경험은 누군가의 판단을 조금이라도 덜 어렵게 하는가

이 브랜드는 5년 뒤에도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때만 우리는 움직인다. 빠르게 만드는 시대일수록 왜 만드는지 설명할 수 있는 조직만이 오래 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느린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팀으로 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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