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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un 24. 2024

나는 본가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집에 있으면 모든 것이 정체될 수밖에 없는 것만 같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둔 공간. 정리돼 있더라도 여전히 많은 잡동사니. 딱히 먹을 게 없지만 가득 차있는 냉장고. 벽에 덕지덕지 붙은 성경구절. 시끄럽게 틀어놓은 방언기도와 찬양. 그리고 가족 간의 날 선 대화들. 그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생산적인 일을 할 수가 없다. 쉬는 것조차 쉬는 것이 아니다. 이상하게 잠이 쏟아져서-현실을 도피하고 싶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는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잠을 자거나 멍하니 핸드폰을 보다 오는 것이 전부다. 시간이 아깝다. 그렇게 평생 여기에 머물러야 할 것만 같은 암울한 감각에 휩싸인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의 책임만 처리해 놓고 빨리 내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

그런 나를 알면서도 모친은 음식을 준비해 놓고, 내가 잠을 자고 가지 않으면 서운해한다. 나는 또 죄책감을 느낀다. 좀 더 많이 대화할걸. 좀 더 시간을 보내다 올걸.


어쩌면 본가를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그곳에서만 거의 20년을 살았고, 내겐 안 좋았던 기억들만 가득했다. 내가 몇 번이고 건의를 했으나 가족들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18평짜리 작고 노후된 아파트. 재개발이 된다는 소문만 10년째. 그 집에 있으면 모든 것이 정체될 수밖에 없는 것만 같다.


본가에 갈 때마다 네 자리는 원래 여기라고 일깨워주는 것도 같고, 지금 가진 것을 고마워하라고 알려주는 것도 같다. 나는 역시 그곳에, 한 곳에 정체되어 있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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