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상들은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반복의 반복은 이곳에도 저곳에도 별다른 재미는 없다는 것만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혼자 처음 지하철을 타던 날.
언니와 처음으로 서울 구경을 갔던 날.
처음 카페에 가 본 날.
처음 술 마셔본 날.
처음 운전대에 앉아 본 날 그 기분은 잊히지 않는다.
처음 컴퓨터 사인펜으로 마킹을 해본 날.
반복 속에서 감각만 둔해졌을 뿐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경험도 쌓이니 새로운 것, 그 자체에 대한 흥미도 누그러든다.
그 누구보다 간절했던 운동화와 책가방들.
과소비를 해서라도 사고 싶었던 바비브라운.
너무 타보고 싶었던 비행기.
그런 시간이 있었고 지금의 내 시간은 내일 당장 어디 멀리 여행을 간다고 해도 그 신선한 기쁨은 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 '재미없음'이, '동기 없음' 낯설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건지 모름에 많은 시간이 낭비된다. 허탈.
하고 싶은 공부 했고, 가고 싶었던 여행도 했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적당한 수입도 있고. 모든 것이 럭키 했다. 생각해 보면 시대도 잘 타고 태어났다(지금까진). 어렸을 때 위인전이나 여러 책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총도 안 쏘고 활도 안 쏘고 전쟁도 없고 도깨비도 없고..
언제부턴가 개인적인 욕망을 포기하거나 혹은 그런 욕망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들, 즉 꾸준히 그 자리에서 부지런하게 하루하루 성실히 비슷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봤을 때 문득 장인과 같은 멋짐을 느꼈다.
또, 결혼을 해 보니 엄마는 어떻게 애를 셋이나 낳고 타지에서 나보다 더 악조건의 모든 것을 겪으며 살았나 라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어떻게 지내다 보니 지나간 시간이겠지만.
내 존재와 욕망이 그리 중요하거나 고귀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매 순간 큰 오르막 내리막 없이 잘 살 수 있는 거라는 것. 그게 잘 안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