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마흔

by 각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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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을 생각하다

아침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일은 전쟁이지만, 그래도 재밌다.
정성스레 머리를 땋고, 레이스가 치렁한 드레스를 입히면 오늘도 한 명의 엘사 공주님이 완성된다.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집 안에 들어서면
비로소 평화로운 나만의 아침이 찾아온다.
향긋한 모닝커피 한 잔을,
마치 쌍화차 들이키듯 후루룩 비우고
곧바로 외출 모드로 전환된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창밖을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생각이 많아진다.
잠시나마 ‘민아 엄마’가 아닌 내가 되어,
세상 속 사회인의 대열에 합류한다.


왕복 세 시간 거리. 네 시간 알바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낮 시간 동안
내가 향한 곳은 한 주얼리 회사였다.
하루 네 시간 일하고, 집까지 왕복 세 시간 거리.
통근이 힘들었지만, 그마저도 어렵게 얻은 자리였다.

회사엔 나와 비슷한 또래의 팀장과 과장들이 있었다.
같은 나이인데, 하는 일의 무게가 전혀 달랐다.
그들은 ‘디자이너’라 불렸고,
나는 ‘알바 언니’로 불렸다.

커리어 있는 또래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어딘가 공허했다.

당시 나는 내세울 만한 경력도, 자격증도 없었다.
운전면허조차 없었다.
‘언젠가는 나도 전문성을 가진 일을 해야지.’
그 다짐이 그 무렵부터 마음속에 조금씩 자리 잡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세계

원래 내가 했던 일은 판매업이었다.
동대문 두타와 밀리오레가 성행하던 시절,
나는 명동의 한 대형 쇼핑몰에 입점해
작은 옷가게를 운영했다.

밤새 동대문 시장을 돌며 상품을 고르고,
낮에는 매장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그때의 나는
패기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땐 55 사이즈 옷도 직접 피팅이 가능했는데,
그 사이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익숙한 일을 찾아보려니,
20대 때는 너무도 쉬웠던 일들이
이제는 면접 기회조차 얻기 어려웠다.

육아에 올인했던 공백기 동안 변한 건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나이도 있고, 일에 대한 감각도 떨어지다 보니
여러모로 자신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우연히 본 TV 속 한마디

별생각 없이 켠 TV 화면 속에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나왔다.
청소업체 대표라고 했다.

카메라는 그녀가 분주히 일하는 모습을 따라갔다.
까다로운 공간조차 그녀의 손길이 닿자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움직임에는 분명한 전문성이 묻어났다.

틈틈이 진행자가 물었던 질문 중에

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냐는 말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젊은 사람들이 잘 안 하는 일을,
젊은 내가 하면 고객들이 더 좋아할 것 같아서 하게 됐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내 나이보다 조금 이른 일을 택하면,
그게 곧 경쟁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보다 이른 일?


나는 TV에서 정리 전문가가 나올 때마다 늘 흥미롭게 지켜보곤 했다.
원래 정리를 좋아해서, 어릴 때 친구 집에 놀러 가면 한 번씩 치워주고 오던 사람이었으니까.
그저 취미라고 여겼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직업이 된다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가끔 지인들에게

“이 일, 내가 직업으로 하면 어떨까?”

하고 가볍게 물어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늘 비슷했다.

“그거 남의 집 가서 일하는 가사도우미 아냐?

나이도 젊은 애가 뭐 벌써부터 그 일을 하려고 해?”

그땐 집 정리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던 때라 ‘정리 컨설턴트’라는 직업 자체가 생소했다.

이사하는 날도 아닌데 왜 집 정리에 돈을 쓰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구직 사이트를 열심히 뒤져봐도
이쪽 일을 구인한다는 글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취업이 쉬운 직종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나던 어느 날,
형님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형님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아주버님이 일하던 중 사고로 고층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하는 형님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목숨은 건졌지만, 다시 걷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마침 그 무렵, 대부분의 보험을 해지한 탓에
상황은 더 막막했다.
그 일로 형님은 50이 넘은 나이에
갑자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평생 전업 주부로 살았던 형님은 그제야 이것저것 자격증을 알아보기 시작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미래의 내가 스쳤다.
‘그 상황이 되면 나라고 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먹고살 수 있는 기술 하나쯤은 꼭 배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실패해도 괜찮아, 그래봤자 마흔이야


뭐든 시작해 보겠노라 그때 결심했다.
어떤 일이든 딱 3년만 최선을 다해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까짓 거! 실패해도 마흔이다.

그때부터 정리 전문가와 관련된 정보를 본격적으로 찾아봤다.
팀장이 되면 월 300만 원은 벌 수 있고,
2급 자격증만 따도 취직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그 길로 동네 여성인력센터를 찾아
자격증반에 등록했다.
그렇게, 내 정리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다시 만난 학창 시절

2019년 초여름에 시작한 수업은
그해 12월, 한겨울에 끝이 났다.
1급 자격증에 이어 강사 자격증까지 따냈다.

배우다 보니 재미가 붙었고,
함께한 동기 선생님들과의 우정도 깊어졌다.
수업이 끝나면 우리 집에 모여
웃고 떠들며 식사하곤 했다.

정리 공부도 즐거웠지만,
이 일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더 소중했다.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오랜만에 느껴보는 풋풋한 설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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