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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의 의미

Jailbreak

by Jimmy Park

“We are what we repeatedly do. Excellence is not an act but a habit.” (Aristotle)


안 해 봤던 것들을 열심히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공허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루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너무 바쁘기 때문이었다.

회사 생활 자체가 가장 큰 루틴이었다.

내 인생 위에 떨어진 거대한 바위처럼 절대 밀리지 않는 고정 루틴.

그 전날 무슨 일이 있었어도 리셋하고, 새벽에 눈 비비며 회사에 갔다.

구글 캘린더가 시키는 대로 하루를 보냈다.

문득 하고 싶은 게 생겨도, 좋은 생각이 들어도 미뤘다.

나중에 꼭 해야지 생각했다.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주일 속에서 나중이란 건 없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비슷한 내일뿐이었다.

루틴의 의미도 모른 채, 난 루틴대로 살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 두자, 할 일이 많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살면서 해보고 싶은 일의 종류가 너무 많았다.

이제 시간이 생겼으니 운동도 좀 해야겠다.

그동안 밀렸던 집안 일도 신경을 더 써볼까?

아내와 평일 낮에 전시회 같은 곳도 한번 가보자.
오는 길에 요즘 핫한 카페에 들러 시그니처 디저트도 맛보고...

여행도 한번 가볼까?

책도 좀 읽어야지. 생각이 많아지니 글도 쓰면 좋겠구나.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도 한번 만나봐야지.

거대한 루틴 덕분에 미뤄두었던 신선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열심히 살았다. 후회하지 않으려 열심히 뛰어다녔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결국 해낸 건 한 줌에 쥔 모래만큼이고
흘려보낸 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바다만큼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고 루틴을 만들어 봐야겠다.
매일 아침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뭘 하고...
무슨 요일엔 꼭 뭘 하고, 주말엔 가족들과 뭘 하고...

잠깐의 생각만으로도 일주일이 금세 꽉 찬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래서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나오는구나.


선별적 포기만이 답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으로 루틴을 만들어 캘린더를 먼저 채우자.

그리고는 남는 부분의 캘린더는 반드시 비우자.

시급하다고 끼워 넣지 말고,
비었다고 채워 넣지 말고,

생각이 숙성되고, 변화된 체질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캘린더에 여유를 먼저 찜하자.


이제야 루틴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루틴은 중요한 무언가를 반드시 하기 위함이다.
루틴은 덜 중요한 무언가를 절대 하지 않기 위함이다.

중요하지도, 시급하지도 않은 무언가로 하루를 채우지 않기 위해

더 소중한 무언가로 내 시간을 선점하는 것이다.

열심히 살았지만 돌아보니 턱 없이 부족하다 느껴질 때,
그 땐 루틴을 만들자.
루틴을 따라 한참을 왔는데 문득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그 땐 루틴을 바꾸자.

루틴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정된 시간을 가장 오래 쓸 수 있다.
내 삶의 참 주인이 될 수 있다.


(Making Rutines, Powered by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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