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We want to make money when people use our devices, not when they buy our devices."
(Jeff Bezos)
마이크와 어맨다가 너무 불쌍해서 먹먹해 졌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블랙미러 시리즈 에피소드를 하나 보았다.
"보통 사람들"
(아래는 스포일러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내 어맨다는 교사이고 남편인 마이크는 블루칼라 노동자다.
어느 날 갑자기 어맨다가 쓰러지고 그녀의 뇌와 신경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존의 의학으로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리버마인드』라는 신생 IT기업의 도움으로 그녀는 극적으로 다시 일어섰다.
수술도 공짜라고 했다. 조건은 딱 하나. 그녀의 뇌에 이식된 칩을 구독하는 것.
통신사에 폰 서비스를 구독하는 것처럼 뇌기능을 구독하는 것이다.
한 달에 $300.
기발한 상상력이었다.
하루는 자동차로 여행을 가다가 어맨다가 순간 정신을 잃었다.
회사에 물으니 서비스 기지국을 벗어나서 그렇다고 했다.
또한 어맨다는 생활 속에 불쑥 불쑥 광고를 내뱉는데 자신은 그걸 인지하지도 못했다.
회사는 현재 플랜이 저가형이라 광고 모델이 포함되어 그렇다면서
그게 싫으면 상위 플랜으로 올리면 괜찮아 질거라고 했다.
한 달에 $800.
그러다 어맨다가 하루에 12시간씩 자게되고 늘 피곤하다고 하자
회사가 그녀가 자는 동안 그녀의 뇌의 컴퓨팅 파워를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게 싫으면 더 높은 최신 플랜으로 업그레이드 하라고 권했다.
한 달에 $1800.
게다가 임신을 하면 호르몬이 바뀌어 두뇌가 처리할 것이 급격히 늘어난다며
추가로 매달 $90을 더 내야 한다고 했다.
모든 게 돈이었다.
두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함정에 빠져들었다.
기발했던 상상력은 상상하기도 싫은 악몽이 되었다.
보고 나니 먹먹해 졌다.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그들이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벌을 받는 권선징악 스토리가 아니라
착하디 착한 보통의 커플이 잘 못한 것도 없이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게 단지 상상력에만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반독점법이라는 걸 만들어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리며 기를 쓰고 막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과연 지구의 회전 방향을 돌릴 수 있을까?
이 현상에는 패턴이 있다.
먼저 '니즈'가 있다. 여기선 어맨다의 병이 니즈다.
다음은 니즈를 해결해 주는 '미끼'가 있다. 리버마인드의 서비스 플랜이 미끼다.
마지막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고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드는 '덫'이 있다.
서비스 커버리지, 무의식 중의 광고 등이 덫이다.
니즈가 '욕구'인 경우에는 방법이 있다. 참으면 된다.
하지만 니즈가 '필요'인 경우에는 쉽지 않다. 무작정 참는다고 답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욕구'가 강해지면 '필요'가 되고,
'필요'가 강해지만 '필수'가 된다는 것이다.
'욕구'가 '필수'로 넘어가는 순간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영혼을 내어주고 내 욕구를 채울 수밖에 없다.
쿠팡이 처음 와우 회원을 만들었을 땐 월 2,900원이었다.
아마존 프라임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싸다고 생각했다.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3년 만에 4,990원으로 올리더니, 또 3년이 지난 후 7,980원으로 올렸다.
5%, 10% 오른 게 아니다. 처음보다 무려 2.8배나 올랐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덫에 빠졌기 때문이다.
무료 배송과 무료 반품, 회원 전용 할인, 쿠팡이츠 배송료 무료뿐만 아니라
쿠팡플레이가 제공하는 SNL, 프리미어리그 축구,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각하면
절대 비싼 게 아니라고 고객들을 설득했다.
그건 그렇지 하며 고객들은 본인의 선택을 정당화했다.
쿠팡은 최근 두 가지를 발표했다.
광고를 보면 와우 회원이 아니더라도 쿠팡플레이를 볼 수 있게 푼다고 했다.
와우 회원 대상으로만 패스(PASS)라는 프리미엄 서비스도 곧 도입한다고 했다.
광고 없이 다양한 프리미엄 콘텐츠들을 추가로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이 뉴스를 보면서 『리버마인드』가 떠올랐다.
광고를 보며 공짜 콘텐츠에 길들여지면 프리미엄의 덫에 빠질지 모른다.
처음엔 물건을 편하게 사고 싶다는 '욕망'이었는데
당일배송과 새벽배송에 길들여진 우리는 어느새 '필요'라고 느끼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도저히 발을 뺄 수 없는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쿠팡은 내 계좌에서 또 얼마를 빼갈 것인가?
그런데 이게 만약 쿠팡이 아니라 테슬라라면 어떨까?
쇼핑이나 콘텐츠가 아니라 모빌리티 서비스라면?
내비게이션 서비스이고, 슈퍼차저 네트워크이며, 자율주행 기능이라면?
테슬라는 그동안 725만 대의 네트워크 노드를 길에 뿌려 두었다.
725만 대가 거리를 달리며 쉴 새 없이 운행 데이터를 수집해서 보내고 있다.
중앙에서는 이를 분석하여 거의 매달 업데이트를 하여 차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해가고 있다.
"Make it→Sell it→Forget it"에서 "Make it→Sell it→Make it better"로.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은 FSD(Full Self-Driving)라고 부르는데
고속도로는 물론 도심 내 도로 자율 주행과 신호등 감지 자동 출발 등을 포함한다.
FSD는 테슬라가 자체 개발한 슈퍼 컴퓨터로 끊임없이 AI 학습을 시켜서
2024년 한 해동안만 28번이나 OTA(Over The Air)로 업데이트를 했다.
한 때 일시불 $15,000 받던 추가 비용을 2024년에는 $8,000까지 낮췄고
월간 구독료도 $199에서 $99로 절반이나 낮췄다.
이렇게 자율주행의 편리함에 길들여지면 나중엔 혼자 운전하는 게 가능은 할까?
아니 설령 가능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운전을 하려면 특수 면허증이 필요한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자율주행 차량들 사이에서 사람 운전자가 어울려 다니려면
비슷한 알고리즘으로 운행을 해야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땐 자율주행이 더 이상 '욕구'나 '필요'가 아니다. '필수'다.
테슬라는 그날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서 본캐와 부캐를 이야기했지만
테슬라의 본캐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본캐인 소프트웨어에서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다면
부캐인 하드웨어에서는 돈을 조금 잃어도 된다.
그때도 하드웨어가 본캐인 다른 자동차 제조사들이 경쟁할 수 있을까?
충전을 구독하고, 내비게이션과 자율주행을 구독하는 날이 오면 그 땐 이미 늦는다.
독점하면 테슬라가 『리버마인드』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폭스바겐, 현대가
소프트웨어 기반 차량(SDV, Software Defined Vehicle)을 준비하기 시작한 건 다행이다.
테슬라 혼자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옆에서 함께 뛰어 주어야 한다.
넷플릭스, 폰, 케이블TV, ChatGPT, MS오피스, 쿠팡와우, 구글클라우드, 애플뮤직, 정수기/비데 등.
매달 내 은행 계좌에 자동 접속하는 구독 서비스들이다.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구독 서비스의 핵심은
일시불로 내던 돈을 이자를 얹어서 나누어 내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서비스 사업자가 소유권을 가지고 데이터를 마음껏 가진다는 데 있다.
그 데이터로 서비스를 지속 개선하고 맞춤형으로 제공하여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는 데 있다.
그렇게 락인(Lock-in)된 우리는 그들에게 선택권을 기꺼이 내어 준다는 데 있다.
미래의 그날을 대비하라.
그날이 오면 우리 모두가 "보통 구독자들"이 된다.
착하디 착한 어맨다와 마이크처럼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보통 사람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