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You miss 100% of the shots you don't take.” (Wayne Gretzky)
"타조 농장을 만들어 타조 고기를 팔겠습니다."
오래전 실리콘밸리의 액셀러레이터 Plug & Play에 갔을 때 스타트업 피칭을 들었다.
그전까지 스타트업은 세상에 없던 기술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거라 생각했다.
타조 농장이라니... 너무 신선했다.
그런데 듣다 보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갔을 때 타조고기를 처음 보고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타조고기는 소고기 대비 단백질도 풍부하고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적으며
기를 때 필요한 물과 토지, 온실가스 배출량이 훨씬 적어서
미래의 지구를 위한 대체 식량이 될 거라고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가능성을 본 고급 슈퍼마켓들이 미래 5년 치의 고기를 선주문했다는 것이다.
아직 제대로 된 농장도 없는데 말이다.
사실이라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Plug & Play를 다시 보게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발굴하는 액셀러레이터겠지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들의 사업엔 바운더리가 없었다.
앱서비스든 타조농장이든 인류에게 가치가 있다면 괜찮았다.
사무실에 올라가니 국가별로 Pavilion을 만들어 미묘한 경쟁심도 느껴졌다.
자신들이 지구를 앞으로 굴리고 있다는 에너지가 전해져 왔다.
여러 엑셀러레이터를 만나봤지만 Plug & Play는 특별한 느낌으로 남았다.
몇 년 후 LG사이언스파크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총괄할 때
Plug & Play의 공동창업자인 Saeed와 Jojo가 회사를 방문하였다.
이틀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석식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유쾌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타조고기 스타트업 이야기를 했더니 그들도 웃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어떻게 창업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두 사람 모두 기술 전문가는 아니었다.
Jojo는 필리핀에서 생수 사업을 하던 사람이었고
Saeed는 이란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생수 병입 및 포장재 사업을 했었는데
둘은 사업 파트너 관계를 맺으며 절친이 되었다.
둘은 생수 사업을 유럽으로 확대해 보자고 하면서 의기투합하였다.
실제로 우여곡절 끝에 유럽 8개국으로 사업을 확대하였고
네슬레 등과 같은 큰 회사에 공장 대부분을 매각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스페인 한 곳에만 사업을 남겨두었는데
스페인 생수 시장의 점유율 40%에 연간 20%씩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투자자, 엑셀러레이터이기 이전에 그냥 사업가였다.
두 사람은 어떻게 Plug & Play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Saeed는 물사업을 하면서 부동산 사업으로도 확장을 하기 위해
팔로알토에 있는 건물을 하나 매입하였는데, 그게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공교롭게도 그 건물에 구글, 페이팔, 로지텍 같은 스타트업이 입주한 것이다.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페이팔, 드롭박스, 렌딩클럽 등에 초기 에인절투자자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건물을 Lucky Building이라고 불렀다.
우연과도 같았던 Lucky Building 덕분에 그는 스타트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이후 그는 계속 스타트업을 머리에서 떨쳐 버릴 수 없었다.
Saeed는 할리우드에서 다른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는데
할리우드 세입자들의 독특한 특징을 발견했다.
할리우드 제작사나 관련자들은 과거 관례처럼 건물을 2년씩 리스하지 않았다.
몇 개월 단기로 리스하여 일단 Season 1을 제작하고
반응이 좋으면 추가 펀딩을 받아 Season 2 제작을 위해 리스를 연장했다.
이를 보면서 그는 할리우드의 프로젝트 기반 부동산 모델이
마치 스타트업 부동산과 유사하다는 데 착안을 했다.
스타트업이 단기로 몇 개월 리스하여 일단 사업을 시작하고
고객 반응에 따라 추가 투자를 받으면 회사 공간을 늘려가는 것이 유사하다고 본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 있는 만큼 들린다.
스타트업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다 보니
남들이 보지 못한 것들이 부동산에서 보인 것이다.
그는 유럽에서 함께 물장사를 하고 있던 Jojo를 불렀다.
그리고는 이제 다시 재미있는 걸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들은 Plug & Play를 시작하게 되었다.
창업을 준비하다가 Sunnyvale에 매물로 나왔던 Philips의 건물을 발견했고
찾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건물이라 처음엔 망설였다.
하지만 어차피 하기로 한 거 배팅을 해보자고 하고 계약을 했는데
그게 현재 Plug & Play 본사의 건물이라고 한다.
단기로 입주한 스타트업들에게 렌트비 대신 일부 지분을 받기도 하고
사업이 어려우면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투자자도 연결해 주고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스타트업들을 위한 특화 부동산 사업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엑셀러레이터라는 새로운 사업이 되어간 것이다.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도전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재미있는 건 Saeed도 그렇고 Jojo도 여전히 Tech. Person은 아니라는 것.
심지어 Saeed는 컴퓨터를 좋아하지 않아서
이메일도 비서가 프린트해서 주면 종이로 볼 정도라고 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느냐 포기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도 지금은 말을 쉽게 하지만 그 과정이 과연 어땠을까?
비록 엄청난 비전과 인사이트로 시작된 건 아니지만
기회를 포착하고 결단하여 몸으로 부딪치며 결국 해내는 것.
그게 사업의 핵심이 아닐까?
부동산사업이든,
물장사든,
기술스타트업이든,
엑셀러레이터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도전한다고 반드시 운이 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운은 반드시 도전해야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