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Losses loom larger than gains.” (Daniel Kahneman & Amos Tversky)
다운로드한 음악을 듣다가 중간에 섞여 나온 굉음에 이어폰을 던져버릴 뻔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플레이리스트』를 보았다.
스포티파이(Spotify)의 창업 초창기를 사실적으로 다룬 드라마인데 흥미로웠다.
나는 이런 류의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한다.
맥도널드 이야기인 『파운더』, 블랙베리 이야기인 『블랙베리』,
나이키 에어 조던 이야기인 『에어』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 최고의 서비스가 초창기엔 어떻게 좌충우돌했는지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처음엔 파이럿베이(The Pirate Bay)가 공짜 MP3를 뿌리면서 스포티파이도 같은 취급을 당했고
소니 같은 대형 음반사와의 협상 테이블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큰 꿈을 품은 천재 개발자 창업가, 낙천적인 투자자, 그리고 당찬 법무 담당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들의 조합은 최고였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우여곡절 끝에 해내는 모습을 보며 희열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내내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냅스터’와 ‘소리바다’였다.
오래전 미국 유학 시절, MP3 음원이라는 걸 처음 접했다.
CD 음악에 익숙해졌을 때, CD 없이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MP3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미국에서 한국의 최신 노래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는 건 놀라웠다.
한국 최신곡들을 밤새 내려받아 공 CD에 굽고, 다음 날 차에서 틀었다.
친구들에게도 선물로 나눠주며 뿌듯해했다.
얼마 후 MP3 저작권 논란이 번졌지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너무 편하다 보니 한 곡쯤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합리화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소리바다’라는 P2P 사이트가 있었다.
거의 모든 노래를 찾을 수 있는 MP3의 천국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좀 이상했다.
원하는 곡을 찾으려고 검색하니 결과가 끝도 없이 늘어났다.
그중 하나를 받아 재생하면 전혀 다른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우고 다시 받았다.
그 노래가 맞긴 했지만 중간에 뚝 끊겼다. 또 받았다. 또 실패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온전해 보이는 파일을 찾아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중간에 고막이 찢길 듯한 날카로운 굉음이 섞여 나왔다.
온전한 곡 하나를 찾기 위해 수도 없이 다운로드하고, 끝까지 들으며 확인해야 했다.
CD를 완성하려고 마지막 곡을 받느라 밤을 꼴딱 새운 적도 있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피곤했다. 불쾌했고 짜증이 났다.
돈을 조금 아껴보자고 자존심을 갉아먹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제야 “불법이니까 그만해야지”라는 명분이 고개를 들었다.
명분은 원칙에서 오지 않았다. 체감된 불편에서 자라났다.
불편은 나를 멈춰 세웠고, 멈춤은 선택을 바꿨다.
그날 밤, 나는 ‘불법’보다 ‘불편’을 더 먼저 미워하게 됐다.
아마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애플 iTunes가 나와 곡당 결제 모델을 내놨다.
한국에서도 벅스가 유료 서비스를 하고 있었고, 멜론 서비스도 탄생했다.
심지어 소리바다까지 합법 유료화를 시작했다.
고객의 지갑을 여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제대로 된 파일”을 쉽게 제공해 주자 곡당 500원, 1,000원은 아깝지 않았다.
MP3를 공짜 음악이라 여길 땐 비싸게 느껴지던 것이
내 수고를 덜어주는 비용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싸게 느껴졌다.
돌아보면 기술의 역사는 ‘신기함’으로 시작해 ‘불편의 제거’로 완성된다.
냅스터와 소리바다는 음악을 공짜로, 빠르게, 널리 퍼뜨렸다.
쉽고 편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후엔 숙명을 다하고 사라져 갔다.
불법이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편리하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불법 MP3를 사라지게 만든 건 엄중한 법 집행이나 도덕적 자각이 아니었다.
불편함이라는 가격을 붙여 공짜의 가치를 상쇄했기 때문이다.
서비스의 가치는 기능 목록이 아니라 체감하는 마찰의 총량으로 정의된다.
나쁜 선택엔 마찰을 더하고, 좋은 선택엔 마찰을 걷어 내라.
사람은 마찰을 줄이는 방향으로 스스로 움직인다.
한 번 편해지면 발걸음을 쉽게 거두지 않는다.
불법은 불편하게, 합법은 편하게,
잘못된 건 어렵게, 바른 건 쉽게 설계하라.
그렇게 만든 서비스가 오래 산다.
끝까지 살아남는 서비스가 좋은 서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