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한 화학의 세계.
5번째 책리뷰_
로얼드 호프만 -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 까치글방 / 이덕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한 화학의 세계.
세계적으로 저명한 화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로얼드 호프만 박사가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한’ 화학의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다. 호프만 박사는 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대립성’을 꼽으며 같은 것과 다른 것 사이의 긴박감이 화학의 발전을 추진해 왔다고 말한다. 호프만 박사는 화학에서 나타나는 대립성을 다양한 예시를 들어 풀어낸다.
그중 하나는 정체에 관한 것이다. 이를테면, 한 화학자가 실험실에서 하얀색 가루 모양의 시료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 시료는 그 이전에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던 백만 종류 이상의 하얀색 가루 모양의 시료와 같은 물질일까? 아니면 다른 물질일까? 화학자는 매번 이런 문제에 봉착한다. 또한 화학에는 키랄성(chira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화학 분자 중에는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가 서로의 거울상이 되는 분자들이 존재한다. 거울상 분자들은 같은 분자이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아주 다르다.
화학의 발전은 사회적으로도 대립되는 양상을 이끌어냈다. 화학의 활용을 통해 인류는 과거보다 더 위생적이고, 배부르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화학은 인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화학을 통해 만들어진 향상된 무기들은 더 많은 사람을 학살했고, 화학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물질들은 자연을 파괴하는 속도를 빠르게 하였기 때문이다. ‘화학물질’이란 말은 현대인들에게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이라는 뜻과 같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호프만 박사는 현대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모두 ‘화학물질’이며 과학의 발전은 곧 민주주의의 발전임을 강하게 역설한다.
현대 사회에서 화학은 일상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화학에 대한 지식은 필수 지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는 화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일반 화학과 유기 화학의 핵심 개념들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학과 사회의 관계와 그 발달사,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과학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화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화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호프만 박사의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민주 시민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양 과학 서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인상깊었던 구절✏
분자의 세계에는 다양한 복잡성이 있기 때문에 분자를 구별하는 문제도 즐거울 정도로 풍요롭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A와 B를 구별하고, 오른손과 왼손을 구별할까? 어떻게 친구와 적을 구별하고, 자신과 남을 구별할까? 분자의 세계에서는 분자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도적인 파괴와 속임도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독성물질이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방법이기도 하고, 의약물질이 우리를 도와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p. 74
나는 새로운 분자를 만드는 화학합성을 찬양하려고 한다. 합성은 화학의 핵심이 되는 멋진 활동으로서, 합성이 있기 때문에 화학은 예술에 가깝게 된다. 합성은 창조적이기도 하면서 분자를 만드는 전략을 찾아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논리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p. 145~146
우리가 모르더라도 다른 어떤 사람이 알 것이고, 우리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소박하고, 비과학적이고, 비민주적이다. 아는 것은 우리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시민으로서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화학자가 모른다면 도대체 누가 알 것인가? -p. 309
화학은 노력하고 있는 화학자들에게도 흥미로운 것이지만, 화학자가 아니면서 화학을 이용하거나 오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화학의 활동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의 길과 평행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은 유전과 경험과 우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경세포들의 가지 달린 나무가 아니라 완전히 서로 연결된 다차원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런 공간 속에서는 (분자나 한 줄의 시와 같은) 주어진 사실이 확실하게 역사와 의미를 가진다. -p. 363~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