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말이 참일까?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요즘 '거짓말' 때문에 혼란스럽다. 정치가 상당수 거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요즘처럼 누가 참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팩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때가 없었다. 유튜브 하나를 클릭해도 온갖 비슷한 서버들이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온다. AI의 짓거리인 줄 알지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문제다.
지난 2년 7개월 동안 거대 야당은 대통령을 헐뜯어 팔다리를 잘라 숨통을 조였다. 대통령이 12.3 계엄 선포라는 루비콘강을 건넜을 때, 너도나도 야수가 되어 43일 만에 대통령을 체포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 국민이 여기저기서 들어 알고 있는 다양한 지식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의심을 접을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그 옛날 대권주자였던 김영삼과 김대중 두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겠다, 고 공언하고 들어갔다가 해가 바뀌고 나와서 모두 대통령이 된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이를테면 자유 민주주의가 위태롭다. 그래서 더 가슴이 서늘하다.
대통령이 국민을 죽음 같은 공포의 세계로 이끈 12.3 선포는 분명 잘못했다. 그럼에도 정치할 수 없을 만큼 사사건건 반대하고 족쇄를 채운 거대 야당은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반대하고 돌을 던졌을까?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이었는가?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면 다수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그렇게까지 코너로 밀어붙여야 했을까?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유능할지라도 충분하게 통치할 수 없다. 잘 못한다고 느끼면 떡 하나 더 주면서라도 협조하는 것이 대의다. 그것이 자유 민주주의요, 나라를 살리는 일이다. 수렁으로 끌어내려서 감옥에 보내면 무엇이 남는가? 진실로 거대 야당은 나라와 민족과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서 두 손을 걷어붙였는가?
주가가 하락하고, 세계인들이 등을 돌리며, 관광객들조차 예약을 속속 취소하여 민생이 최악의 도탄에 빠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과연 이 결과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마치 역사에서 준엄하게 심판받고 있는, 과거 조선시대와 그 당쟁을 보는 것 같아서, 매우 두렵다.
김학준의 《조선 500년의 거짓말》(인문서원, 2024)을 들추어보았다.
"그들에게 애민이란 말은 '백성 위에 군림하며 다스리는 것이 지배계급의 타고난 본성이요 천직'이라는 거짓말을 합리화한 통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애민의 배경에는 백성들을 더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슬쩍 어루만져주는 그들의 속임수가 깔려 있었습니다. 군말 없이 시중드는 백성의 우직함과 선량함을 칭찬하면서 그런 백성을 사랑하노라고 반복해서 말한 것도 실은 일 하지 않고도 누리며 사는 세상이 영원하기를 바랐던 지배계급의 속내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리학을 추종한 양반 사대부들은 유교 성현의 가르침을 외워서 과거 시험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범속한 인간으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두 눈으로 보고도 뒷짐 지고 거들먹거렸으며, 그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라도 되는 양 백성 수탈에 골몰했습니다."
'거짓말'의 근원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그 근원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은 거짓말에 속은 사람의 비극까지도 정확하게 소개한다.
(창 2:16~17)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신은 처음 사람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는 다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지시했다. 신이 사람에게 모든 창조물을 누리게 하면서 금한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창 3:1)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사람이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거짓말은 완벽했다.
(창 3:4~5)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니, 솔깃했다. 사실처럼 보였다. 드디어 사람이 거짓말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이에 혹자들은 말한다.
'신은 왜 굳이 선악과를 만들어서 사람이 죄를 짓게 했을까?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다면 죄도 없고 아픔도 없을 텐데.'
과연 선악과가 함정이었을까? 아니다. 선악과는 축복이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독립된 인격체로 자율권을 행사할 기회였다. 그것이 신이 선악과를 거기 둔 이유였다. 동물들은 배고프면 무조건 사냥하러 나간다. 그것은 본능일 뿐이다. 동물에게는, '오늘 한가로운 날이니, 한 끼 굶어볼까?' 생각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없다. 만약 선악과가 없었다면, 사람은 그저 잘 발달한, 본능에 의해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동물일 뿐,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었다.
'거짓말'은 인류를 죄와 악이라는 파탄으로 몰아넣은 철천지 원수다. 문제는 현대의 거짓말과 정치적인 궤변의 근거도 거기라는 것이다. 사람은 거짓말쟁이는 아니지만, 남의 거짓말에 취약하다. 정치인 중에는 거짓의 아비들도 있다. 따라서 국민들은 그들이 바르게 정치할 수 있도록 기도할 것뿐, 다른 대안이 없다. 아울러 바르게 판단하고, 옳은 길을 따라야 하는 것도 국민의 몫이다. 국민이 들레면 정치 거짓말쟁이들은 더 기고만장해진다. 지금, 국민이 참과 거짓을 구별하면서 바로 서 있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