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 22일(481일)
요즘 우리 아들이 육아 매운맛이다.
매일 해 떨어지기 한 시간 전에 아들과 산책을 다녀온다.
그래야 저녁도 잘 먹고 목욕하고 개운하게 푹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밖에 나가자고는 하는데 걷는 것은 싫고 안고 다니라고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안고 걷다가 이제 좀 걸을래?라고 하면 아니야라며 계속 안겨 있겠다고 한다.
아들이라 그런지 아이가 묵직해서 아빠도 무거운 건 매한가지라 이제 걸어라 하고 아이를 내려놓으면 한 두 발자국 걷다가 다시 안아달라고 떼를 쓴다.
하는 수 없이 아이를 안고 한 시간을 걷는다.
산책이 끝나면 아빠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그래도 산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만족스러워하는 아들을 보면 힘들지만 잘 다녀왔다 싶다.
그리고 아들 저녁을 준비한다.
부엌에서 이것저것 만지고 꺼내는 나이가 되어서 부엌에 펜스를 쳤는데 아이가 펜스 밖에서 안아달라고 떼를 쓴다.
조금만 기다려 맘마 다 됐어라는 아빠의 말이 무색할 만큼 울고불고 난리다.
밥을 후딱 차리고 기다려줘서 고맙다며 아들을 안아 올린다.
근데 아들이.. 자겠다고 한다.
밥은..
목욕은..
그렇게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졸려서 그랬구나.
침대에 눕히니까 또 울고불고 난리다.
다시 10분쯤 안고 재운다.
근데 이미 너무 안고 있어서 아빠는 너무 힘들다.
그래서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아빠가 힘드니까 같이 누워서 자자고 달랜다.
졸려서 짜증 부리다가 이내 잠이 든다.
오늘은 피곤했나 보다 하고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나와 아이밥을 아빠가 먹는다.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아이가 또 승질을 내며 운다.
여기서 아빠는 머리를 엄청 굴린다.
어떡하지..
배고파서 깻나..
목욕을 안 해서 찝찝한가..
목이 마른가..
그냥 보통의 잠꼬대인가..
대체 왜 저렇게 악을 쓰며 울지..
이제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밥을 먹일지 목욕을 시킬지 다시 재울지..
일단 아이를 안고 상태를 파악한다.
뭐가 문제일까.
너무 무겁다.
허리도 아프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배고픈가 싶어 떡뻥을 물려본다.
입에 물고는 있지만 안 먹는다.
빨대병에 물을 줘본다.
안 먹는다.
졸려서 그런가 싶어 안고는 있지만 아이가 눈을 뜨고 있다.
목욕을 선택했다.
잠결에 목욕해야 하는 아이가 승질이 났다.
악을 쓰는 울음을 들으며 후딱 목욕을 시켰다.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혀 침대에 눕혔다.
그래도 악을 쓰며 울다가 개운한지 이내 깊은 잠에 들었다.
아… 엄마들이 이렇게 살고 있겠지..
육아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너무 고되다.
나는 아빠니까 그나마 안아줄 수라도 있지 엄마들은 아들을 어떻게 안을까..
정말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을 엄마들이 참 안쓰러웠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이 정도는 흔한 일이라 대수롭게 넘길 수 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아침 7시면 일어나서 아빠를 깨운다.
나는 잠이 채 깨지도 못한 상태에서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온다.
몸이 쑤시고 비몽사몽에 아이를 안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안고 있다가 기저귀가 빵빵해서 기저귀를 간다.
기저귀를 벗기는 순간 아이가 그대로 오줌을 쌌다.
아이가 오줌 싸는 게 뭐가 대수라고..
근데 이날 아침은 내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누운 상태로 오줌 범벅이 되고 난리가 난 아이를 보고 난 절망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만 좀 해!!!
놀란 와이프가 자다 깨서 거실로 나왔다.
이내 정신을 차린 나는 아이를 안고 목욕을 시켰고 와이프가 뒷정리를 해줬다.
아이도 이런 아빠 모습에 놀라서 주눅이 들었다.
바로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이미 아빠의 모습에 엄마도 아이도 심히 놀란 눈치였다.
목욕을 한 후에 엄마도 옆에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다시 좋아진 아이는 금세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논다.
와이프가 자기가 아이를 볼 테니 좀 쉬고 오라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아침밥을 차린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다.
내 모습이 아이에게 공포를 심어주었을까.
나 때문에 애착형성이 잘못되는 건 아닐까.
아이가 소심해지고 주눅 들게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걱정이 되어 육아 관련 교육 영상을 찾아봤다.
공통된 결론을 얻었다.
한 번의 실수나 행동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하다.
평소에 부모와 좋은 애착이 형성이 되어있다면 부모가 크게 혼내거나 실수로 화를 내더라도 그것이 아이를 바꿀 만큼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평소에 부모와 애착형성이 좋지 않다면 한 두 번 잘해준다고 좋아지지 않는다고 한다.
휴..
한시름 놓았다.
내가 어떻게 키운 사랑하는 나의 아들인데..
마찬가지로 육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이럴 것 같다.
가족 간에 친구 간에 평소에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하지 한 두 번의 실수는 별일이 아닐 수 있다.
내가 나의 부모님의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원망을 한다면 그건 평소 부모와 나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게 아닐까.
친구가 약속을 안 지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 친구와 나는 평소에 좋은 관계였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는다면 그 말과 행동을 살펴보기 전에 서로의 관계가 어떤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육아를 하다 보니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에게 평소에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 혹시 모를 실수를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요즘 우리 아들이 육아 매운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