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일(15개월 26일)
나를 죽였더니 육아가 되더라.
아직은 육아 1년 차 초보 양육자이다.
그런데 나에게 그 1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데 나는 아이와 함께 붙어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아이의 인생속도에 맞춰진 것 같다.
하루가 너무도 길다.
한 살 되었다고 아이가 두 번 자던 낮잠을 한 번만 잔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늘었다.
아기 때는 누워만 있으니 나도 내 의지대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할 수 있었다.
단, 아기 옆에서 말이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해 먹고 핸드폰을 보거나 청소를 하거나 심지어는 누워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걷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사라졌다.
하루 중 내 시간은 아이가 밤잠을 잔 이후부터다.
그전에는 아빠와 아이는 한 몸이라 생각하면 된다.
엄마껌딱지라는 말이 있듯이 아빠껌딱지다.
웃긴 건 아빠 엄마가 다 집에 있으면 혼자서 잘 논다.
그래서 아내는 아이가 평소에도 그런 줄 안다.
억울한 나는 아내에게 하소연을 한다.
아빠랑 둘이 있으면 화장실도 못 가게 하고 눕기는커녕 앉아있지도 못하게 하고 계속 자기만 보고 있어야 하고 그러다 계속 안아 달라고 떼쓰고..
이렇게 하소연을 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남자 중에 남자, 사내 중에 사내였던 내가..
아내에게 아이를 이르다니..
그런 나를 아내가 우쭈쭈 해주면 이내 맘이 또 풀린다.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니 나도 아이가 되어가나 보다.
아무튼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 무. 것. 도.
육아가 처음인지라 처음에는 버텼다.
그저 하염없이 아이가 잘 때만 기다렸다.
우리 아들은 평균 7시-21시에 깨어있다.
따라서 난 아침 7시부터 21시까지 아이 옆에서 버텼다.
혹자는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어떻게 버틴다고 표현하느냐 할 수 있는데 아이가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심지어 가장 사랑하는 배우자와 하루종일 그것도 일 년 넘게 함께 한다고 생각해 보면 감이 올까 싶다.
아.. 물론 똥기저귀도 내가 갈아주고 밥도 먹여줘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너무도 행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립하지 못한 사람과 사는 것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전부 그에게 할애해야 한다.
그래서 내 시간 내 인생은 그동안은 없다.
거기에서 몰려오는 우울감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자대 배치받아 신병으로 들어간 그 순간이 일 년간 지속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취침 소등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쇼!하고 모포 위에 눕는 순간부터 기상 전까지 내 시간이다.
기억하는가 전우여..
그 시간이 일 년을 넘긴다고 생각하면 된다.
육아하는 엄마들은 군입대한 신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해가 지나도 여전히 이등병이란 말이다..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
아..
이제 보니 내가 재입대를 한 것이구나..
이제야 깨달았다.
깨달으니 다시 한번 마음이 편해진다.
아무튼 아이가 보통 9시에 자니까 그 후에 내 시간은 내가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다.
대신 내 시간이 많을수록 다음날은 피곤한 아침을 맞이한다.
그런데 내 시간이 생겼어도 딱히 할 게 없다.
어차피 나가지 못하니까 말이다.
참고로 아내는 자정에 퇴근을 해서 집에는 나 혼자다.
낮 동안 내 시간이 없었던 보상을 받고자 나는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영화를 보거나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정말 난 버티질 못할 것 같았다.
밤 9시 이후의 시간이 나에겐 정말 소중했다.
그런데 문제는 술 먹고 야식 먹고 늦게 자니까 다음날은 아침부터 너무 힘이 들었다.
그걸 매일 반복했다.
끊고 싶어도 끊질 못했다.
중독이라고 봐야 할까.
지금 생각해 보면 현실을 회피하는 수단이지 않았을까 싶다.
술기운에 잠시 현실의 나를 잊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술을 먹지 않고 아이가 잘 때 자본 적도 있다.
다음날은 정말 개운하게 일어난다.
근데 똑같이 반복되는 육아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게 더 힘들었다.
나는 뭐지.
나는 지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부정적인 생각과 우울감이 몰려온다.
그래서 다시 아이가 잔 후에 술을 먹었다.
다음날은 몸이 너무도 힘들지만 그래도 나를 조금이나마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런 시간이 나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었을까.
시간이 갈수록 내 시간이라 생각했던 그 시간이 점점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이대로 허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술을 먹지 않는 날을 늘려갔고 지금은 정말 힘든 날을 제외하고 평일에 술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취침 시간을 밤 10시에 맞추고 그 시간이면 잠이 안 와도 자려고 눕는다.
아이가 잔 후엔 정말이지 전혀 피곤하지 않고 밤도 새울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갑자기 넘치는데 그것에 속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잠이 오지 않고 쌩쌩한데도 무시하고 10시에 침대에 누우면 어느새 난 자고 있었다.
낮동안 얼마나 피곤했으면 말이다.
내 시간 내 인생이라고 생각한 시간을 버렸다.
나를 찾고자 했던 시간을 죽였다.
그랬더니 아이러니하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내 시간 내 인생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생즉필사 사즉필생이라 했던가.
우울했던 그 기간이 끝을 향해 가고 있는지 엄마다운 아빠로서 정체성이 재확립되고 있다.
삼십 대 후반에 아이를 육아하며 사회와 경력이 단절된 아빠로서 아직 우울감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육아가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나를 죽였더니 육아가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