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지루한 편집후기

by 이강석

지난 30여년 동안 언론과 관련한 일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 편집하고자 하는 생각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아왔는데 드디어 그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순서를 매기고 정리하면서 힘든 밤을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누구의 간섭없이 혼자서 마음대로 꾸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작은 희열과 혼자만의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책임감을 갖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한 권의 책을 편집하는 전권을 가졌다는 기쁨은 잠시 후에 어깨를 누르는 책무라는 새로운 부담의 절벽에 당도하게 합니다. 그래서 책이란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허락된 일이고 밤을 새워서 저자와 독자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정의해 보았습니다. 쉽게 시작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일도 아니라 마음 먹습니다.


공무원 8급때 선임으로 함께 근무한 이순찬, 이해운, 최진석 선배가 후배를 믿고 도장을 꾹꾹 눌러주시므로 이후에는 더더욱 책임감 있게 구매업무를 처리하고 회계 관리에도 더 힘을 기울였던 기억이 납니다. 강직·청렴한 선배를 배우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좌우를 살피는 긍정의 좋은 습관을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라디오 방송은 대부분 1:1로 청취자를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진행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에 트랜지스터 라디오 한 대로 온 동네 처녀와 아낙들이 저녁 연속극을 들었습니다. 20분 단위로 편성된 방송국 사이클을 잘도 맞춰서 열심히 성우들의 극 진행을 듣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책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주파수를 제대로 맞춰 세우는 일이고 다음에는 그 책을 주파수에 맞춰 읽고 있을 미래의 어느 독자를 상상해 봅니다. 책 한 권을 2인이 동시에 읽지 않습니다. 오로지 책 한 권은 한사람이 차분하게 조용한 방에서 나 홀로 봅니다. 입춘이 막 지난 봄날 조금은 차가운 벤취에 앉아서 자신과 코드가 맞는 듯 보이는 저자와 아지랑이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반성해 보면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만남의 장소가 공개되어 있고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손에 쥐고 연신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말은 대충 흘려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에서는 독자와 밀어를 나누는 느낌이 듭니다. 책을 읽으면서 스마트폰에 힐끔거리지는 않습니다.


독서는 그래서 대화의 수위가 ⑰에서 ⑱로 가고 다시 ⑲로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독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보면 ⑲인 것이고 대략 표지만 스치면 ⑰이하인 것 입니다. 지금 이 숫자를 말하는 것도 마음에 공감을 하면서 읽어야 이해가 되는 것이고 그냥 숫자가 뭐 자꾸 나오는가 생각하면 책과 멀어지고 대화는 단절되거나 끝나게 됩니다.


책의 시작은 악어와 악어새로 출발했지만 편집을 진행하면서 그 제목과 소제목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공무원이 기자에게 권하고 기자가 공무원과 기업의 홍보실에 전파해 달라는 의미의 제목을 달았습니다. 결국 공무원과 기자가 경쟁관계로 보이는 듯 하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 커튼을 열어보면 ‘악어와 악어새’관계에서 잘잘한 갈등이나 적정한 협업이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공무원이 공보실에 처음 발령을 받은 후 시행착오로 대형 사건이나 사태에 휘말리지 않도록 1988년부터 최근까지 언론의 골목길과 신문방송의 대로변에서 만난 일들을 순서 없이 편집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언론의 도움을 받아 졸필을 신문 활자로 미화시킨 글도 몇 편 끼워넣었습니다. 그리고 42년 공직 대부분을 함께하며 내조해온 아내의 모습을 담기 위해 쌍둥이 육아일기를 젊은이들에게 보너스로 보여준다면서 자랑했습니다. 신문에 나고 방송에도 출연한 쌍둥이 엄마입니다.


아내는 어느 모임에서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만 결코 회장은 하지 않고 총무를 자임하곤 합니다. 지인들이 아프거나 힘들면 전화를 걸어옵니다. 큰 병원, 작은 병원에서 진료받는 절차를 알려줍니다. 배가 아픈데 어느 과로 가야 하는가 묻는 이도 있습니다. 갑자기 몸이 아프면 응급실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내에게 묻습니다.


이는 마치 어느 부자의 대화와도 같습니다. 집안에 불이 나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119가 몇 번이냐 물었더니 아들이 114에 물어보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114 안내가 통화중이므로 인터넷으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조크를 하면, 『간첩신고는 113, 범죄신고는 112』라고 농담을 받아주는 아내입니다. 둘만의 은어(隱語)가 함께한 세월만큼 늘었답니다.


이제 자료편집을 마감하려 하니 자꾸만 망설여집니다. 이 책 속에 꼭 넣어야 할 보물이나 보석이나 중요한 그 무엇이 더 있을 것만 같습니다. 과거 신문사 교정부 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오탈자’가 꼭 있을 것입니다. 활자를 뽑아 신문을 만들던 시절에는 문가가 곰자로 뒤집히고 大자자리에 犬자가 자리를 잡아서 시말서, 전말서를 쓰곤 했다 합니다.


지난번에 겁 없이 편집한 <공무원의 길 차마고도> 여기저기에 참으로 많은 자료를 넣었습니다. 그래서 출판계의 달인 한누리미디어 출판사 김재엽 사장이 1권+2권으로 편집을 고민하다가, 분권하면 늘 2권은 실패한다는 속설로 인해 글씨를 빼곡하게 한 권으로 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글자 간격도 넓게하고 문장 사이도 시원하게 못줄을 넓게 잡자고 했습니다. 모내기할 때 5번째 쯤에 조금 넓게 심어주는 공간을 ‘방제로’라 해서 농기계와 사람이 다니는 통로가 된다고 합니다.


아파트단지를 설계할때 바람길을 고려합니다. 책속에도 시원한 통로를 만들어서 독자들의 눈이 피로할 때 잠시 쉬실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는 마치 PPT보고서에 글씨만 가득 담아서 시·청·각 중 視覺(시각)을 방해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넓은 종이위에 생각을 적고 표현하고 사진과 함께 편집하는 독립적 ‘야단법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그 폭을 넓혀 보았습니다. 이 책의 시작은 기자실과 공보실인데 그 언저리에 신문기고문, 부시장의 역할, 동장과 과장의 기능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의견을 들어 아들 논산 훈련소 면회간 이야기도 추가했습니다.


이제 출판사는 책을 읽는 시대에서 책을 하나의 화면처럼 보는 젊은이들의 변화된 상황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씨를 읽는 것보다는 문장으로 이해하고 키워드로 속독하게 하는 전략을 생각한 것입니다. 형식을 맞추려 노력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과 구성을 하고자 특별한 여분의 생각을 담아 보았습니다.


중국의 천자문은 한 글자도 겹치지 않는 4언시인데 이를 하룻밤에 완성했습니다. 천자문을 쓴 선비의 검은 머리위에 다음날 아침에 흰 서리가 내렸다합니다. 정말로 멋진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이지요..


자료를 찾아보니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 주흥사가 지은 책으로 사언고시 250구로 모두 1,000자로 되어 있으며, 자연 현상으로부터 인륜 도덕에 이르는 지식 용어를 수록하였고, 한문 학습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고 합니다. 천자문을 짓고 나서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해서 백수문이라고도 합니다.


저도 몇일 밤을 밝히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다음까페에 담아둔 사이버 공간의 글을 한글로 받아 종이 위에 인쇄, 정착시키는 과정입니다. 상상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만 2,000권 인쇄를 하게 되었으므로 사이버 공간의 글이 다 사라질까 하는 杞憂(기우)와 걱정은 덜게 되었습니다.


과거 1930년대에는 이 모든 일을 원고지에 적고 교정을 보고 활자를 뽑아서 동판을 뜨고 인쇄기를 돌렸습니다. 그런데도 고서, 교양도서가 도서관을 채우고 있으니 참으로 많은 분이 이 분야에서 밤을 새워가며 돋보기 초점을 맞추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男兒須讀五車書(남아수독오거서), 汗牛充棟(한우충동)을 이야기하시나 봅니다. 우리는 모름지기 수레 다섯에 실을 만한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男·女兒須讀五車書(남·여아수독오거서)라 수정해야 하겠습니다.


한우충동은 수레에 실어 운반(運搬)하면 소가 땀을 흘리게 되고, 쌓아 올리면 들보에 닿을 정도의 양이라는 뜻으로 장서(藏書)가 많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인터넷상의 정보가 파도처 름 넘나드는 시대라 합니다만, 까끌거리는 종이위에 인쇄된 책은 우리의 가슴속 글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 글, 모바일 액정화면보다 冊(책)이라는 말을 하고자 합니다.


졸저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열정을 다해 기획해주신 청룡초등학교와 비봉중학교 동창생 김재엽 한누리미디어 사장님, 김재엽 친구의 동반자 김영란 사장님, 한누리미디어 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경기도내 언론인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시각 행정의 일선에서 勞心焦思(노심초사), 首丘初心(수구초심)의 심정으로 정려하시는 공직자 여러분 수고 하십니다. 공직은 운명적 천직이고 자신과의 행복한 갈등이며 한 걸음 두 걸음 담백하게 좌고우면하며 앞으로 나가는 차마고도의 수행입니다. 공직자의 좌고우면은 복지부동이 아니고 철밥통은 더더욱 아닙니다.


언론인의 어휘인‘행간의 의미’가 그 속에 있습니다. 공직을 마치는 그날에 공직자에게 큰 어르신인 다산 정약용 선생님 ‘해관’의 철학을 공감하실 것입니다.


돋보기를 쓰고 원고교정을 自願(자원)한 아내 최경화 여사에게 사랑하는 마음, 고마움을 전합니다. 공직 500개월을 대과없이 마치도록 술 좋아하는 남편 대신 노심초사로 살아온 아내입니다.


늘, 항상, 언제나 아빠를 응원하는 이 책 육아일기에 다시 한번 출연한 딸 현아, 아들 현재야, 사랑한다 아빠와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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