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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소아과 Mar 21. 2024

내가 소아과 의사가 된 이유

요즘 나에게 별명이 생겼다. 낙수과 의사. 


정부에서 의대 2000명 증원을 화두로 내세우면서, 필수의료를 하려는 사람이 없으니, 2000명 뽑아놓으면 자기들끼리 경쟁하고 도태된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필수 의료를 할 것이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낙수효과'로 명명한 덕분에, 필수 의료 중에서 가장 저출산 및 고소리스크와 맞물려 기피과 1위 소아과 의사인 나를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내가 어쩌다 이런 존재가 되었을까?라는 씁쓸함과 함께 웃고 넘기지만,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내가 소아과 의사가 된 이유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할 때만 해도 소아과 전공의가 경쟁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때도 소아과 의사는 돈벌이가 안된다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거의 모든 진료가 보험 위주의 진료였고, 그때도 하루에 120명씩, 휴일까지 주 7일을 10년 동안 일해야 강남에 집 한 채 살 수 있다고 개원한 선배들이 말해주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강남에 집을 살 수 있었으니 희망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돈이랑은 상관없는 과였다. 돈을 벌겠다고 소아과 의사를 한 사람은 내가 장담컨대 2000년대 이후로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나는 훈육과 학대 그 어느 중간쯤에서 자랐다. 인턴 때 응급실에서 복통을 주소로 온 잔뜩 졸아있는 남아를 봤다. 세돌 남짓했는데 확장된 동공에 잔뜩 움츠려 있는 남자아이는 발길에 차인 강아지 같은데, 엄마라는 사람은 그 와중에 병원 편의점에서 장난감을 사 왔다.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소아과 전공의 선생님께 노티 드릴 때 아동학대 의심된다고 말씀드렸다. 아동학대가 맞았고 어떻게 알았냐고 되묻는 선생님 말에 차마 대답은 할 수 없었지만 그때 소아과를 해야겠다. 나는 소아과를 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아과 전공의 1년 차로 들어가서는 힘겨운 1년을 보냈다. 1년 동안 거의 병원 밖을 나가지 못했다. 1년 동안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던 뇌성마비 19세 남아가 그 해 겨울, 반복적인 흡인성 폐렴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뇌성마비로 19년 동안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했던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입으로 뭘 먹어 본 적 없던 그 아이의 어머니는 나와 같이 그 해 1년을 병원에 같이 있었다. 아마 내가 병원에 들어오기 전 18년 동안 어머니는 거의 모든 시간을 병원에 보내셨을 것이다. 19년이면 보호자가 지칠 만도 하지 않을까, 19년 동안 누군가의 병간호를 해야 된다는 삶의 무게를 내가 가늠도 하지 못하겠는데, 그 보호자의 울음은 어느 다른 소아의 죽음을 맞이한 보호자의 울음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처음 아이를 잃은 부모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은 응급실 인턴 때 6살 남자아이가 교통사고로 이미 숨을 거둔 채 구급차에 실려왔을 때였다. 보호자는 직장에 있다가 뒤늦게 왔다. 보호자가 올 때까지는 CRP을 지속해야 했기 때문에 난 심폐소생술실에서 CPR 중이었다. 그러나 보호자가 왔다는 것을 보고 받기도 전에 나는 알 수 있었다. 보호자가 도착함과 동시에 응급실 입구에서부터 짐승 울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저게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인가? 맨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살이 찢기는, 가슴이 천 길 만 길 찢어지는, 고통에 사로잡혀 울부짖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후에 소아과 의사로서 경험이 쌓이면서 자식을 잃은 모든 부모는 똑같은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았다. 19년 동안 아이의 병간호를 지속한 어머님의 울음소리도 다르지 않았다. 난 그때 깨달았다. 부모의 마음은 똑같다는 것을, 아이는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단 한 명의 죽어도 괜찮은 소아는 없다는 것을. 모든 소아는 반드시 살려야 한다. 기적을 만들어야 한다. 난 정말 대단한 과를 하고 있구나.


하나 이 자부심은 얼마 가지 않았다. 기적은 드라마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고,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부모님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내가 그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 죄스러움은 점점 누적되어 나에게 무력감을 주었으며, 소아과 의사로서 경력이 쌓일수록 담당하는 환자의 중증도는 높아지며, 그중 일부 부모님들은 그 죄스러운 마음에 법적인 책임을 물으시는 분들도 계셨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병원에 근무한 것이 아닌데, 갑작스러운 사고에 나름 최선을 다했으나 분, 초 단위, 모든 행위에 잘못을 따져 물으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분들을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살인자였다. 자식 잃은 부모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족해 보일 것이다. 실제 나도 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처음에는 사람 탓, 사회  탓, 제도 탓을 해보았다. 억울함도 있었다.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부모님께서는 기도 밖에 더하셨냐? 나는 잠도 안 자고, 나를 갈아 실제로 노력하고 행동한 사람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 세상에 그 아이를 살리고 싶었던 사람은 부모님 다음 나일 거라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에 직면하면, 내가 살아 숨 쉬는 것조차도 사치로 느껴졌다. 정신적으로 점점 피폐해지고,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 피해 의식에 점점 사로 잡혔다. 예민도와 불안도는 나날이 높아졌다. 그리고 어느 날 아 내가 사람 살리는 업을 하기에는 부족하구나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난 소아과를 떠났다. 


지금 다시 소아과로 돌아와, 동네 소아과 원장으로 지내고 있다. 대단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경증 환자들을 적시에 치료하고 케어함으로써 중환으로 이환할 확률을 낮추며 지역사회 보건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느끼고 있다.


소아과는 예부터 마니아 층이 있었다. 아이만 보면 좋아죽던 친구, 귀요미 보겠다고 회진 하루에 5번씩 돌던 친구, 오프 때마다 어디서 귀여운 아템은 다 사 와서 병동에 뿌리던 친구, 모두 본투비 소아과였는데 다 과를 버렸다. 그 친구들 다 돈이 중요한 애들이 아니었다. 건담 살 돈만 있으면 자긴 충분하다는 친구도 있었다. 다 나보다 능력 면에서, 인성 면에서 훌륭했던 친구들이었다. 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떠났다. 오히려 소아과에 애정이 덜했던 가장 좋지 않았던 씨앗인 나만 다시 돌아왔다. 


전공의 선생님들이 떠나는 것, 비슷한 이유일 거다. 대부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정부에서 살인자 프레임으로 몰고 가고 있는 대부분의 전공의 선생님들은 수련받지 않고 바로 필드에 나가면 피부미용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그래도 필수 의료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손을 들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필수의료를 떠났다. 보건복지부 고위공무원들이 전공의들을 하나의 인권으로 생각하지 않고 생산성 좋은 노예로 보는 걸 드러내는걸 거리 끼지 않는 협박성 발언에서, 할 수 없는 걸 할 수 없다고 하는데, 검은 머리 짐승은 먹고살 만하면 기어오르고, 배때기가 쳐 부르면 똥만 싼다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연세대 소아청소년과 의국장 글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은 지속적인 폭력과 가스라이팅에 굴복한 내 어린 날 일기장과 닮았다. 썩은 땅에 아무리 씨앗을 뿌려도 수확을 거둘 수 없다. 땅이 썩어서 좋은 씨앗부터 썩어 나가는데, 더 많은 씨앗을 뿌리면 그중에 몇은 싹을 틔우지 않겠냐는 정부 정책 기조를 보고 있으려면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인가? 


내가 다시 대학병원으로 돌아가기엔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응급실촉탁의 계약 조건은 문제가 발생 시 바로 계약이 거부될 수 있는 1년짜리 비정규직 계약이다. 1년 뒤도 모르는 직장에 가정의 생계를 걸 수도 없다. 높은 연봉이 걸려있지만 그 계약 조건은 밤샘 24시간 근무, 지역거점 응급의료기관이지만 그 밤에 근무하는 소아과 의사는 오직 한 명, 단독근무. 법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의사가 올곧이 책임진다. 그 연봉의 5배 이상을 배상금으로 토해낼 확률이 있는 직장이다. 절대 가정이 있는 소아과 의사가 생계를 걸고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개선안은 단 한 개도 없고 의사 증원만 늘리면 이것이 해결될 것이라 한다. 


온 세상에 보건복지부의 의료개혁 광고가 판을 친다. 영화관에서, 동네 엘리베이터에서, 9시 뉴스 황금 광고시간대에서. 그 예산을 정부 전산망을 통해 각 병원의 병실, 수술실 가능여부를 전산화하는 프로그램만 만든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헬기로 1시간도 안 걸리는 이 좁은 나라에 응급실 뺑뺑이 해결은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는 그것보다는 의사 2000명 증원에 더 힘을 쏟는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는 무시하고, 까라면 까야지 우겨대는 정부를 보고 있으면 탁상행정 + 권위주의의 폐해를 보는 것 같아 너무 씁쓸하고 무기력하다.


정부는 환자 1명이 죽어도 별로 타격이 없다. 왜냐면 그저 숫자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는 다르다. 내가 담당한 환자의 죽음은 내 인생에 평생 트라우마다. 정부에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999명이 이득이고 1명의 억울한 죽음을 야기할 수 있는 정책은, 통계적으로 정책적으로 옳은 결정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 1명의 죽어도 되지 않은 삶이 눈앞에 무기력하게 사그라지는 것을 볼 때, 그 의사도 남은 생을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 사람이라면. 그러니 정부와 의사의 정책 논조 기조가 다른 것이다. 정부가 까라면 까라고 의사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기도 하다. 왜냐면 우리는 현장에서 실제로 발로 뛰는 실무자들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건 특권의식이 아니다. 실제 모든 정책들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아직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을 뿐. 


일개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나 다음 뿌려지는 씨앗이 그래도 숨은 쉴 수 있게 비옥한 의료시스템이 정착되기를, 그래서 씨앗들이 싹을 틔워 나무가 되어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그 나무 그늘 밑에서 제대로 뛰어놀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건 오직 정부만이 할 수 있다. 정부가 제대로 일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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