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의 공감은 나만이 할 수 있다.

인생이라는 링 위에 헤드기어도 없이 내던져진 선수가 됐다.

by 루시드림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이른 독립을 원했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삶을 마음껏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없고 성에 차지 않는 용돈을 아끼고 아껴 옷 하나, 나이키 하나도 마음 놓고 턱턱 사고.


어른만 되면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라에서 정해둔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오고 나니 엄마의 공부 잔소리보다 더 한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링 위에 헤드기어도 없이 내던져진 선수가 됐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 받는 것도 모자라서 가족사와 연애사로 머릿 속이 복잡해지는 일들이 더러 생겼다.


부모님의 건강 문제로 병원으로 퇴근하는 일도 있었고 나를 거쳐간 개자식들과의 연애사로 스스로 땅굴을 파면서 시간을 죽이고 좀비처럼 허우적대는 날들도 지나왔다. 게다가 나이가 드니 이제는 내 몸도 예전 같지 않아 개인적인 일에 내 컨디션 문제까지 더해졌다. 인생이 참 팍팍하다.


언젠가 모 배우를 담당하며, 개인사의 감정을 회사로 끌고 오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배려를 바란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절절하게 깨닫는 일이있었다.


어느 주말. 우리집 셋 째 고양이에게 요로결석이 생겨서 병원에 있던 날이었다. 사소한 궁금증 하나를 물어보려 내게 연락했던 배우의 전화를 받지 못했었다.


"제가 지금 셋 째가 아파서 잠깐 병원에 와 있느라 전화를 못받았어요. 무슨 일이세요? 제가 이따가 전화 드릴게요."


이후로 계속해서 그 예민한 배우는 내가 전화 한 통 못 받은 일로 나를 고양이에 신경 쓰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매도했다. 본인도 우리 아이보다 열 살이나 많은 노령의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으면서. 반려동물 아픈 것이 집사에게 어떤 마음인지 안다며 나를 위로해놓고 뒤에서는 그렇게 나를 일에 집중 못하는, 정신 못차리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섭섭함을 표할 수가 없었다. 사회생활이란 그런 것이니까. 일터에 나와서는 내 개인사 따위 티를 내서도 안되고 나쁜 감정은 뒤에 숨겨야 되고 늘 포커페이스는 유지해야 하니까. 오랜 회사 생활로 단련되다 보니, 개인의 감정을 회사로 끌고 오는 것이 얼마나 내게 마이너스인지를 너무나 안다. 회사를 차리고 나니 더욱 그렇다.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인류애가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고 보듬을 수 있는 넓은 아량도 부족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감정의 공감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절절히 든다. 내 치부는 늘 누군가에게 약점이 되고 나중에는 그걸 잡고 나를 뒤흔들 수 있는 것이 되더라.


어른이 되는 것은 그렇게 멘탈이 단단해지는 것인 것 같다.

인생이라는 것이 참 녹록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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