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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Aug 03. 2024

교과들이 너무 많다

- 교사가 보는 학교


'다음 시간이 머여?'

'교육학'

'아씨, *짜증나. 교육학은 도대체 왜 배우는 거야?'


아이들이 내 수업 시간을 끝내고 나가면서 내뱉는 소리입니다. 어찌하여, 그리고 왜 본인들이 원하지 않은 과목을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로 들어가면서 학생들의 교과 선택권은 다양해졌지만, 배워야 할 과목 수는 줄지 않습니다. 내가 알기로 현 교육과정에 의하면 기본 교과군에 생활·교양 교과군까지 더해서 8개 교과군이 넘고 이들 교과군에 일반선택, 진로선택 과목들이 30개 이상의 교과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한 학년에서 최소한 10개 이상의 교과들을 배우는가 봅니다. 


영국처럼 고등학교 2년 과정에서 원하는 세 과목만 선택하고, 제대로 깊게 배워서 세 과목 시험(A-levle Test)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들에 지원할 수 있는 제도와 비교하면 실로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현재 수능에서 선택과목 경우의 수만 816가지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2025년에는 모든 고교에서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됩니다. 다양한 학생들의 니즈를 반영해서 교과목을 대폭 늘렸다는 것이 학점 이수제 선택과목들입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표현처럼 꼭 배워야 하는 과목인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그런 교과들을 전공한 교사들도 없는 실정이니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결과적으로 겉도는 교실 풍경이 연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과목만 많지 배워야 할 과목 수는 줄지 않으니 제대로 깊게 배우는 실속있는 접근은 엄두도 못냅니다. 


시험 시간에는 무의미한 선택과목들의 실상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시험 시작 10분 만에 학생들 절반이 반번호 이름만 표시하고 엎어집니다. 소위 말하는 선택과목 시험 시간입니다. 즉 학생들이 원해서 선택했다는 과목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저 그런 과목들 중에 필히 선택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 교과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너무 많은 교과목들, 과연 이들 과목들이 필요성, 더나아가 당위성을 갖춘 과목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생활과 윤리’ 교과도 교과 이기주의의 결과로 생겨난, 하지만 없어도 될 교과목에 해당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원래 수능 시험 교과에 ‘윤리와 사상’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중학교 때 가르치던 도덕 교과와 비슷한 내용을 실은 ‘생활과 윤리’ 과목이 생겨나더니 수능 선택 과목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선택지가 더 늘어난 경우라고 하겠지만, 과연 이 교과를 굳이 만들어내고, 수능 선택과목으로 집어넣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교과 탄생 과정을 감히 추론해 보자면, 앞에서 언급한대로 동·서양의 모든 사상가들을 섭렵해야 하는 ‘윤리와 사상’ 교과의 내용이 어렵다 보니 아이들이 수능 사회탐구에서 선택하는 아이들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목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수가 감소한다는 것은 윤리교사 수급 면에서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각 고등학교들에서 윤리 교과 담당교사들 수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되고, 실제로 같이 근무하던 윤리교사도 자리 지키기가 너무 힘들어지다 보니 국어과로 일정 시간 연수를 받고 전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의 이런 결과는 윤리 교사들 배출과 관련된 대학의 전공학과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인식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윤리교사 수급을 늘릴 수 있는 대안으로 교과 내용을 좀 더 쉽게 만들어 아이들의 선택을 유도할 수 있는 ‘생활과 윤리’ 교과를 하나 더 만들었고, 교과 개설만으로는 영향력이 없으니 당당히 수능 선택과목으로 등장을 시킨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는 1정 연수 때 강의하던 교수가 ‘윤리과가 살기 위해서는 연수를 받는 윤리과 교사들이 무슨 학회 회원에 가입해야 하고, 그래야지 이를 바탕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학회 가입 종용을 역설하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가능한 추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 교과 교사 양성에서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타파하고자 하는 애틋한 노력 일수 있습니다. 결국 자기 교과 생존을 위한 교과 이기주의적 노력들이 발현되어질 수 있으며, 이는 타 교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영어 교과만 해도 그렇습니다. 영어, 영어 독해와 작문, 영미 문학 읽기, 진로 영어... 마치 대학교 영문학 전공 과목 나열 같습니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외국어로서 영어를 공부하는데 영미문학까지 공부해야 하는지, 과연 영어를 공부해서 영미문학을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머가 그리 수준이 높은 영어를 배우는지.. 하다못해 진로 영어도 있습니다. 쓸데없이 많은 교과목들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교수들이나 이론적 연구가들이 자기 교과목을 번드르르하게 꾸미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결과일  것입니다.  미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초지식과 범용적 역량을 키우는 보편교육이 타당한 시기에 무슨 진로에 관한 영어, 문학적 영어까지 배운다는 것인지 내 입장에서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외국인 만나면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영어교육이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교과들을, 많은 내용들을, 이렇게 깊게 배워야 하는 거지?'


교사로 근무하면서 항상 뇌리에 박혀있던 의문입니다. 인성교육, 환경교육 모두 중요하다는 것 교사들도 압니다. 수학이나 영어 한 시간 더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 아닙니다. 하지만 갓길로 빠져나가 잠깐 둘러볼 여유가 없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길러줄 수 있는 교양 정도만 쌓으면 충분합니다. 프랑스도 이미 1998년에 현재 진행 중인 고교 교육이 명료한 시민 의식을 갖도록 이끌지도, 인격적 성숙을 이루지도 못하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교육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의 프랑스 교육문제가 지금의 우리 교육문제입니다. 지금이라도 입시가 목표가 아닌 성숙한 시민의식 교육, 인격적 성숙 등이 우리 교육의 목표로 재정립되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교과목과 교육내용을 반 이상으로 줄여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쉬운 내용, 원리 위주로, 그리고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 위주로 학습 의욕을 자극하고, 지속시킬 수 있는 수준의 학습량과 교과목의 대폭 감소라는 개혁이 필요합니다. 특히 고등학교는 더욱 그렇습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대부분 상위권 아이들에게 해당할 뿐 2/3의 아이들은 그렇게 많은 양의 교과 수업에 별 관심도 없습니다. 정 자신의 진로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전공과목이나 심화과목이 필요하면 대학 가서 전공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영국처럼 고등학교 2년과정에서 3과목만 선택하여 대학가서 전공할 영역을 미리 심화 학습까지 제대로 할수있게 하던지요. 이제라도 과연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선택하는 교과들이 꼭 필요한 교과들인가, 아니면 교과 이기주의에 탄생된 억지 교과들을 아이들에게 꾸겨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아니 어른들의 교과 이기주의에 의해, 더 심하게 말하면 어른들의 밥그릇 싸움에 아이들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운동에서 기본기를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것처럼 중·고등학교에서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길러줄 수 있는 교양 정도만, 그리고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 위주로만 제대로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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