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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Aug 23. 2024

교사의 전문성, 끝이 없다 1

- 교사부터 변하자 

'샘, 어제 그 학생이 .....'


출근하니 같은 교무실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울상이 되어 입을 띱니다. 어제 그 학생이란 내가 있던 3학년부 교무실에서 난동을 부리며 울분을 토하다 돌아간 남학생입니다. 그 학생이 자기 집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입니다. 


전날 내가 근무하는 3학년 교무실에 수업을 끝내고 들어와 보니 한 남학생이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울부짖으면서, 교사들 회의용 의자와 책상을 뒤엎으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수업이 없어 자리에 있었던 여교사들 몇 명이 무서워하며 한쪽 구석에서 몸을 사리고 있었습니다. 이과 아이라 내가 수업 시간에 본 적이 없었지만 평소에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으로 기억되지 않았던 걸 보니, 억눌렸던 학업 스트레스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울분을 토하는 불쌍한 학생으로 인식되어 움츠리지 않고 편하게 불러보았습니다. 

‘아가야, 이리 와 봐라.’

남 교사가 불러서 그런지, 아니면 자신의 난동(?)에 상관없이 의외의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교사에게 어쩌질 못하겠는지 순순히 나한테 다가옵니다. 그렇게 다가온 아이를 휴지 건네며 눈물, 콧물 닦으라 하고 의자에 앉혔습니다. 다시 따듯한 물 한 잔을 건넸습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시간이 흘렀습니다. 잠시 후 진정된 듯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어려운 점 있니? 천천히 얘기해봐. ’ 

대답 없이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있는 아이를 지켜보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어깨를 툭툭 쳐주며 ‘힘들면 언제든지 샘에게 와서 얘기하라’며 가고 싶으면 가도 된다고 돌려보냈습니다. 다행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죄송하다고 인사까지 하고 나간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돌아간  아이가 그 아까운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합니다. 돌아가는 도중에, 아니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거나, 무엇을 놓친 것은 아닌지 지금까지도 계속 반문하게 됩니다.


 처음 교직에 들어섰을 때 교사만큼 편하고 즐거운 직업이 없는 듯했습니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가르치는 것 정도야 웬만한 전문성만 갖추고 있으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면서 교직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아이들이 원하는 대부분의 요구나 교육 활동들은 무난히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의 사건 이후 혼란스러워집니다. 나름 배울 만큼 배웠다는 교사가, 나름 한다고 했던 교사가 살려달라고 온몸으로 울부짖었던 아이를 감지조차 하지 못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보이고 , 평상시에도 정상적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교사들도 이런 아이들이 정상이고, 이런 아이들을 기준으로 다른 아이들을 판단합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역으로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힘든 학교생활을 겨우 버티고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명절은 잘 쇠셨나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오늘 원서 접수를 했는데 제시문 면접까지 한 달 조금 안 남았는데 준비 방법 같은 거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학교에서는 일주일 정도 뒤에 00시에서 하는 모의면접을 가보라고 하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요…


이미 떠나온 학교에서 입시를 앞둔 3학년 아이가 도움을 청합니다. 상위권 대학을 진학하고자 하는데 구술면접에 대한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메시지를 받으면서 갑갑하고 안타까움이 밀려듭니다. 대학의 입시전형에는 있는데 학교가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탓해야 하거나,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입시전형을 대학이 밀어붙이거나 둘 중 하나에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논술 및 구술 지도 능력은 학교 현장의 모든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보편적인 자질에 포함되는 능력이 아닐 수 있기에 교사들 탓만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교과 교사들이 논술이나 구술면접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는 없다는 점에서 당연히 학교 현장의 실태와 부합되지 않는 입시제도, 그리고 그 어려운 시험을 아이들에게 끝내 요구하는 대학들의 책임이 큽니다. 그러니 입시제도가, 대학들이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실정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긴 우리 교육이 항상 엇박자로 진행되어 왔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요. 


결국 학교에서 겨우 해줄 수 있는 것은 일요일에 2시간이나 걸리는 더 큰 도시에서 제공하고 있는 교육청 주관 면접 지원 행사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거리와 시간도 문제이지만, 구술면접이 결국은 논술과 같은 유형인지라 최소한 10시간 이상의 집중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고, 가봤자 수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청하고 있을진데 이 아이가 거기를 간다고 한들 얼마나 제대로 된 지도를 받을 수 있을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서울은 그런대로 입시에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교사들이 3학년 부에 포진되어 아이들의 요구를 웬만큼 커버하고 있지만 (사실상 서울 학교들도 상위권 대학의 중요한 입시전형 중 하나인 논술 관련 영역에서 그렇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지방 학교들은 더욱 심각합니다. 


지방학교의 실정을, 그리고 교사들의 한계를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안타깝기도 합니다. 아무리 일부 대학의 왜곡된 입시 전형이라고 할지라도 매년 특정 아이들이 반복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영역입니다. 현 입시제도가 학교 현실과 부합되지 않을지라도 불가피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면 결국 학교가 어찌어찌하든 감당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한 학교에 50명 정도되는 교사들 중 아이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음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학교가, 그리고 교사들이 행정적 업무에는, 서류작성에는 그렇게 철저하게 완벽을 기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어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아이들의 요구에 대한 도움 시스템은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아이들에 대한 지원에는 기를 쓰고 완벽을 기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아이러니합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아주 극단적인 경우들로서, 아주 드문 일부 아이들에 한정된 경우까지 교사들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 다만 교사들이 이런 아이들도,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유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언급한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 지도에 필요한, 또는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한 교사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전문적 능력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핀란드에서 교육실습생들때부터 아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나 요구를 조기에 발견하고 확실하게 보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실습을 통해 확실히 몸에 익히도록 훈련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샘, 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축제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회 아이가 방과후 내가 있는 방에 올라와 투덜거리며 하소연을 합니다. 축제 담당교사와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방향성 제시나 지도 없이 아이들에게 결과만을 요청하고 있어, 진도가 안 나가고 아이들만 답답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담임 샘에게 지각 한번 했다고 엄청 혼나고 밤늦게까지 강제 자습했다는 아이도 자퇴를 고민한다고 장난 반 진담 반 얘기합니다. 학생회를 맡다 보니 친숙해진 아이들이 교사들에 대한 불만을 자주, 아주 편하게 전달해 줍니다. 물론 아이들만의 관점에서 일방적인 불만이기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교사의 잘못, 부족한 점이 없다고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교사의 지도 역량에 관한 불만이거나 아이들과 공감 능력이 요구되는 생활지도에 동떨어진 교사의 감각에 대한 불만입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교사의 능력을 수업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서 교사들의 역량을 판단합니다. 


요는, 가르침에 한정된 인식에서 벗어나 교사가 갖추어야 할 전문성의 범위를 최대한 확장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물론, 나도 교사가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를 갖춰야 하는지 모르는지라 이론가들처럼 무슨 무슨 능력들을 갖춰야 한다고 자신 있게 언급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이론과 학교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인하여 교사의 전문성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교사직을 수행하면 할수록 나도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 현장에 있는 교사들 스스로 ‘내가 과연 아이들의 요구와 필요를 확실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충분하고, 제대로 된 능력을 갖추고는 있는가?’라고 수시로 반문하고 노력하는 자세는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시험만을 위한 교과서의 지식 전달에 만족하고, 서류상으로만 번드르르하게 꾸미는 일에 주력하는 일에서 벗어나 아이들에 대해서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살펴보고 보살피는데 주력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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