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D
20301005
제 1 장 BD
7년 전이었다. 2014년 2월 6일, BD (생체 실험 인형, Biometrics Dummy) 임상 신약을 처음 먹던 날이었다. 임상실험체가 되던 그 날, 나는 그 약 때문에 꼬박 2박 3일 동안 맥을 거의 잃다시피 잠에 빠져 있었다. 자는 동안 약은 복합적 상승작용으로 무의식 속에서 떠다니는 내 의식을 잡아먹고 있었다.
먹히고 먹히며 3일이 지난 4일 째부터는 2~3시간만 남기고 오히려 잠의 대부분을 앗아가버렸다. 약은 주고 또 뺏아간다. 이기는 것보다 병과 약은 견디어 참아지는 거라고.. 병과 함께 내가 치료만큼 죽는 것이 약이라고..
이전 동물 임상 실험 결과를 통해서도 처음 견디어내는 시간, 즉 약에 대한 최초 적응 시간으로 쥐의 경우 2주일, 인간 대상으로는 4일은 잡았었다. 나는 실험 쥐보다 1/7의 시간으로도 잠을 약에 내주고도 고통을 반이나 줄일 수 있었으니,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인형으로써도 제격이었다.
그런데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되는 이유, 이와 머리카락이 끊어지거나 빠지는 등 묵과할 수 없는 신체적 부작용으로 인하여 먹던 임상약이 중단되어 식약안전청의 권고로 다른 임상약으로 바꾼 시점은 2019년 5월이었다. 대체되는 약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약은 이전 약처럼 신경의 고통의 반 이상을 줄여주면서도 피곤을 현저히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부작용은 몸이 이전보다 기분 나쁜 부대낌과 함께 신물처럼 넘어오는 꺼림직한 느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몸과 생각이 멍해진다는 것이었다. 걱정되는 건 이 부분이었는데, 나는 묻지만 의사는 실험약에 대해 여타 말이 없다.
신체가 병을 약에 의한 수치 대비 반복 실험에서 얼마나 견디어낼 수 있는지..의 하나의 실험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신약이 몸 안에 쌓이게 된다면의 가정이 기준이 된 실험에 약의 발현과 효과와 부작용과 그 증상들에 대한 데이타 축적과 과다투여량의 결과 까지도 산출 병행되었다. 이렇게 약에게 몸을 내주는 대신 인형이 되었다. 이로 신체유지 비용을 탕감받은 나는 몸을 걸고, 의사는 제출할 한줄의 결과를 얻는 일. Dummy는 질주중, 나는 희망중, 부모님은 기도중, 애들은 소망중, 나의 챠트엔 과다투여중이라 써 있다.
거울을 보면, 잔근육들과 날선 갑바, 골격과 머리가 작아 외소해 보이지만 옷맵시는 좀 나는, 나름 운동을 해서 잘빠진 고등 3학년 풋풋한 체형, 알몸은 이렇게 눈부신데 내 안의 알고리즘 하나가 무너져서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굽어 접히는 고통은 할 말마저 막는다. 버티는 수 밖에. 충격실험 자동차 속 그 더미들도 말이 없었는데.. 날고 싶다. 고통을 호소하는 내 자신, 그리고 근육과 뼈들.. 머리도 안되겠다 의식을 놓고, 몸은 스스로 웅크리고 망할 척추를 드러낸다.
심장을 무시한 고통이 한계를 넘나들 때 가끔 심장이 뛰지 않던 부정맥이 결국 생명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임상병리 과장 김중식 의사의 소견. 나에게 만큼은 비밀들을 공개하고 여러 편의를 봐주고 있음을 보여주겠다며 끄적거리던 챠트를 나에게 내민다. 두 번 밑줄 그어진 선명한 한줄.
"This case is reconciliation with the pain."
고통은 참을 수 있다. 약이 그 고통의 반절만 해결해 준다면.. 만약 약이 없었다면 난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란 것을 선택없이 실행할 것이었다. "고통과의 화해" 부작용을 무시한 투여는 계속되었으나 다행히 적응했고 변화들에 따른 면역 속도도 빨라졌다. 순탄치는 않지만 더미는 여전히 질주 중이다.
어쩌다 1~2초간 멈추었다 뛰다하는 부정맥 심장이 10분 이상 말하자면 영원히 멈추어야 끝나는 이 실험.. 아니 나에게는 완벽한 실전! 나는 가속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 벽과의 거리는 속도다. 그 속도 안에서 날던지 생체가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던지! 그런데 내 날개는 한번도 날아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백지 같은 흰색과 제일 싫어하는 노란색과 빨간색이 교차되는 실험실에서 50억 짜리 진단용실험장치가 로봇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면 비싼 장비도 나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INURI Secret top.. 왼손잡이 주치의 박준 과장의 오른팔조에 항상 걸쳐있는 챠트 첫장 윗부분 빨간색으로 선명히 적혀 있는 이니셜..BD! 나는 벽에 부딪힐 때 책임을 다하는 인형, 벽에 부딪혀 기록만 남기고 부서질 Dummy였다. 인간임상실험의 생체 더미(Biometrics Dummy). 그러나 누구보다도 사람이었다.
거슬러 올라간 7년이 흘러내렸다. 약은 여전히 축척 중이다. 그러고 어느 날..
제 2 장 역 류
또 거기서 거슬러 역류된 7년이 더해진 14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2007년 그 해 봄, 민중이 일어선 4~5월 쯤 마지막 항거를 마치고, 있던 안정제와 수면제를 먹고 얼마나 잤을까..
두 콧구멍으로 하얀 토사물이 콧물처럼 흘러나오고, 혀 뿌리에까지 위장의 역류가 쓴물과 함께 다셔왔다. 위벽이 녹아내리는가 싶더니 좀 더 안쪽 쓸개를 비틀고, 내장의 근육이 뭉치며 꼬이고 있었다. 바로 아래쪽 십이지장을 쥐어 짜는 듯한 고통에 이어 식은땀에 젖은 등줄기의 멍해진 근육은 굳어갔고, 명치는 오그라들며 점점 뭉쳐갔다.
다른 통증들은 각각의 오감을 거쳐 순식간에 뇌하수체로 모인 감각은 금새 피질과 수질에 여파되며 걸러지고 해석된 정보가 판단에 이르기까지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등 근육의 뭉침과 압박감에 못이겨 구부러지며 엎드렸다. 다행히 배와 등줄기의 고통은 엎어지는 것만으로 견딜만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기력(氣力)에 의한 은색의 단색 화면이었는데,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감은 눈꺼풀 위에 은색 판화처럼 장들이 영사되었다. 그것은 누군가 어디로부터 일까.. 눈을 뜨니 영상 스크린이 올라갔다. 다시 감으니 내렸다. 스크린의 은색 영상과 함께 느낌이 곧장 전해져 오는 것이다. 그 느낌은 오감에 육감까지 전해오고 있었다.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소리와 영상이 느낌을 실어올 수 있느냐는 거다. 이것이 그 디지털과 의지가 의식을 끌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불가능한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활 속으로 밀고 들어 왔다. 직접 맡고 보고 듣고 만지는 느낌처럼 그 영상 컷들이 보내오는 사람의 의식과 내 인식에 동시에 달라 붙는 것이다. 의식을 차릴 새도 없이 20시간을 자버렸다.
얼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깰 만큼의 의식이 돌아와 눈을 떠 보니, 문득 모든 느낌에 있어 나는 내 자신이 생소해졌음을 감지했다. 공황이다. 깨어나기 무섭게 박동수가 오르고 체온이 오르며 신경이 예민해지는데 모든 감각은 둔해졌다. 극도의 멍함과 극도의 목마름은 나에게 초월의 상태를 원하고 있었다.
과다 투여되고 축적된 약의 부작용일 게다. 그리고 요소였다. 타들어가는 위와 내장, 배를 젓가락으로 꿰뚫어 후비는 것만 같았다. 내근들이 꼬이고 속이 울렁거리다 어지럼증에 도저히 가누지를 못했다. 뒷머리 뇌하수체를 타겟하고 뻗쳐 오르는 알 수 없는 독기가 뒷목을 치고 올라왔다. 왼손으로는 굳어가는 뒷목을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배를 움켜 잡은 채 일어서려다 허리까지 타고 내린 고통에 걸려 꼬꾸라졌다.
시간.. 바닥은 값어치만큼 차가운 이태리제 대리석, 안이 보이지 않는 이중 창호는 떨고 있었다. 왠만해선 바닥에 불을 넣지 않는데, 이제서야 난방이 시작된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뒷모습.. 진한 고동색 중절모와 그것보다 색이 좀 연한 바바리 코트를 입은 사내는 누구일까. 그는 내가 깨어나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깼나..?
김풍, 묻는 말에서조차 그의 외자 이름값만큼이나 차가웠다. 재갈이 아니더라도 나의 의지로는 입술을 뗄 수 없었다. 벽시계는 정오인지 자정인지 12를 두 침이 포겐 채 가리키고 있었고, 어둠도 빛도 들지 않았다. 회색과 흰색의 없는 색만이 주위를 두르고 있었다. 말없이 고요는 한참 흘렀다. 시침과 분침은 서서히 멀어져 갔다. 두 침이 직각을 이루고 나서야 나는 뻐근한 입술을 떼어 말을 뗐다.
뭡니까..
12시 15분.. 난방에 온도도 15℃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하일까.. 아직 냉랭한 기운이 실내 한랭전선을 타고 회오리 치고 있는, 방이라고 하기엔 높은 천장과 넓은바닥. 로비 상들리에가 달려 있어야 할 곳에 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빼고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12행*12열에 맞춰진 방석들, 교육 프로젝트의 영상 채널이 상영될 법한 하얀 벽면, 바로 앞 얇고 날씬한 교단과 교탁, 어떤 교리를 가르치고 단체 행동을 요구하는 사이비 교파의 한 무리를 양산해내는 교육장 아닐까..
어딜 보나..
이어지는 문장은 소음에 묻혀 한참을 기다린 그의 목소리가 제 톤을 찾아갈 때, 내 목은 역류를 삼키고 있었다. 코와 눈에까지 시큼한 맛을 느낄 때. 짤막한 멘트 안에서 중절모 아래로 직각의 턱과 날선 코에서 예리한 관상도 느껴왔다. 예삿놈은 아니었다.
그를 쳐다보지 않아도 그의 생각들이 내 의식에 와 닿았다. 그 의식을 분석하여 훔쳐낸 생각을 패턴화하여 다시 거짓말로 현실들을 왜곡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디지털 짓거리였다. 김풍이라는 사람, 그는 디지털들을 교육시키는 교육자들의 장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 자재였고, 나는 거기에 있었다.
제 3 장 구성과 정의
세상이 간과할 수 없는 비종교 이단 집단 이누리의디지털 교육을 짚어보자.
교육자들은 각 지방에 있었고, 특별한 교육자들은 일개 교구까지 돌며 몸이 갇혀 있거나 생활이 메여 있는 더미(dummy)들을 이용하여 디지털 특수기술들을 가르쳤다. 순회하는 교육자들은 이누리 교육장에서 교주 '이만'이와 함께 디지털들의 교육을 담당했고, 교구마다 교육장을 두어 근래 대량 생산해 내고 있다. 교육장이 대부분 그들의 교회의 지척에 있었으나, 어디든 그들의 범죄 현장이 곧 교육장이었고, 바쳐진 피해자 곧 더미는 일반 가족 중 하나가 바쳐져 교육용 더미(dummy)로 쓰였던 것이다. 그의 가족들의 디지털 교육 증진을 병행하면서..
이누리의 교주 이만이와 이누리의 이클립 의사 박준과 이누리의 실세 부장 이언, 지략가 강구와 트릭가 박인과 디지털 교육의 단장으로 불리던 김풍의 이누리 수장들의 큰 그림의 이누리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나를 괴롭혔던 가족 3명과 그의 배필들 3명과 두 아이와 할미, 이누리 실력가 3명으로 구성된, 3명이 짝을 이루는 시나리오 연극 사기단들과 프로그램과 율법과 그의 디지털들이 있었다.
디지털이란, 몰래 피해자의 귓속이나 두피에 넣어 붙이는 초소형의 스피커와 마이크를 이용한다. 디지털들도 그것을 붙이고 있어야 디지털로 대화가 가능하다. 디저털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들은 집적되고 증폭되는 고도화된 디지털 기계였고, 거짓깔 또한 그랬다. 이 디지털이라는 말은 핸드폰을 이용한 특수 스토커 범죄행위를 말하기도 하고, 그 범죄를 당하고 저지른 사람을 동시에 지칭하고 있다. 이것은 초창기의 디지털(Digital)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이비이자 이단 단체인 이누리 유사 종교 단체와 결탁하여 세력을 세상에 뿌렸다. 그 때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마스크가 필요 이상으로 팔려 나가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 디지털에 대하여, 당하고도 누구한테도 112에도 파출소에도 경찰서에도 청에도 관에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설명을 해주어야 되는데 설명을 한다는 것은 기회조차 불가능했다. 모르는 척 하는 그들에게 몇 줄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이누리와 디지털에 대하여 말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밖에 없고 이 지면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말문까지 막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언제 사라질지 모를 소설이다.
디지털들은 일단 상대에게 자기 목소리를 1dB 이하로 어떻게든 들리게 하여 협박하고 공갈하고 사기를 친다.
병원에서는 이 현상을 증상으로 보고 이명이나 조현병으로 진단해 버린다. 거짓과 거짓깔로 점철된 구조 속에서, 일상 생활 속의 각본이나 대략의 시나리오와 간략한 문장들을 녹음도 하여 핸드폰에 버튼 그룹이나 키보드에 넣어 사용키 위해 간간히 상황 연기들을 미리 해 놓는다. 반복적으로 말하는 대신 버튼이나 키보드를 눌러 녹음된 소리와 말과 스토리들이 상대에게만 들리게 주파수를 맞추고서 라디오처럼 트는 것이다. 스토리란 현실을 바탕으로 협박하기 위한 거짓말로 이루어진 간략한 대본 같은 것이다. 그 중 자세한 것도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프로그램이라 하였다.
이것을 범죄에 이용하여 돈을 뜯고 사람의 마음을 갉아 먹는 것. 이것이 디지털 짓거리라고 해서 이것도 간단히 디지털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디지털은 사람인 범인과 행위인 범죄 그리고 당하는 피해자까지 셋 다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쓰이는 도구까지 다 디지털이고, 그 디지털 회사와 결탁을 하여 회사는 사용하는 국민을 볼모로 디지털 기계를 판다. 고가의 음향장치에서 중계기까지.. 디지털들은 소리가 무기다. 그 목시리만 들으면 치가 떨린다. 그들이 만드는 상황이 지옥이다. 그덜은 거짓깔로 보이지 않는 지옥을 만들어 그 이야기 속에 빠지게 한다. 디지털들의 중요한 것은 거짓깔이고, 그 스토리다.
범인들 중 소설을 잘 쓰는 스토리맨이 현실과의 접목된 스토리를 만들고, 나머지는 인디언이 되어 연극을 한다. 피해자가 그 스토리 속에 빠지게 되고, 1dB 속 가상 현장은 의식을 통하기도 하고, 그렇게 상황과 사건과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여 미궁 속으로 떨어뜨린다. 그 디지털들이 만든 스토리가 만든 거짓된 세계가 피해자들에겐 지옥인 것이다. 그 지옥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남들은 모르는 세상에서 홀로 디지털과의 전쟁을 치러내야 한다. 결국 내 몸까지 팔릴 고기로 바쳐야 하는 덩어리 신세가 되는 말도 안되는 세계. 이것이 또 디지털 세상이다.
디지털화된 세상은 사람이 디지털이 되어버린 세계이다. 그 세상이 지금 여기인 것이다. 디지털화는 생각의 게으름에서 시작되고 행동의 귀찮음으로, 마음의 메마름을 거쳐 차가운 가슴에서 나오는 말들에게서 나타난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입들만 무성하다. 이것이 인터넷이고 거기서 가짜가 판치고, 그것이 핸드폰이고 그것으로 거짓깔들이 오고 가고, 그게 악의 세상이다. 그 세상의 거짓말들이 프로그램화 되어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율법이 되고. 거기를 인터넷을 통해 구다보고 있는 내가 바로 디지털이다. 어떤 디지털이 되느냐가 문제일 뿐..
제 4 장 관 계
이누리와 디지털이 합체한 회오리의 중심에 교주 '이만'이가 있다.
디지털 범죄는 모든 디지털들이 출연하는 스토리 속 범죄 현장에서 가해지는 협박과 사기와 갈취와 강간과 살인과 대리 살인과 청부와 청탁과 장기매매와 인신매매가 이만이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철저히 거짓과 그 말과 가짜들로 이루어지는데 거기엔 사실도 진실도 없다. 그마저 거짓과 가짜가 되므로.. 가짜 이만이가 또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누리가 디지털들을 관리하고, 이들을 교회와 조직이 관리하고, 교회와 조직을 대기업들이 결탁하고, 정치인들이 사용하고 법조인들이 뒤를 봐주고 경찰들이 그들의 감투들을 차지하고 나서고, 정치인들이 이들을 또 관리하는데, 그들이 모두 이누리다. 이 디지털 왕국이 대한민국인 것이다. 속을 알수록 절망적이다. 그러나 그들도 국민이고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싫다. 그들을 용서하고 싶진 않다.
핵은 디지털이다. 아니다 이만이다. 아니다 이누리다. 아니다 조직과 정치가들이다. 아니다 피해자들이다.
아니다 모두가 다 가해자들이다. 피해자는 백성들이고, 지옥에서 오열하고 있는 분해되어 각 기관들과 고기 덩어리로 팔려 나갈 찢겨질 자들이다. 그리고 자궁 속에서 찢겨진 자들이다. 그들을 토막이라 할 것이다.
그 지옥들을 펑범한 우리가 갖고 있다.. 자궁도 원룸도 빈집도 빈 상가도 빈 사무실도 빈 창고도.. 빈 곳이라면 방치하는 곳이라면 주택에도 들어찰 지옥이다. 이젠 그 범위가 확대되어 일반 학생들까지, 초등 중등 고등 대학 일반 할 것 없이 생활(돈, 약, 의식주, 약점. 협박, 공포, 인질 등..)에 잡힌 사람들이 옴짝 달싹 못하고 이누리와 디지털들에게 잡혀 살게 되는 지옥이 디지털 세계다. 나까지 내 자신까지 잡아 먹히게끔 되어 있다. 이것을 디지털들과 이누리들이 수행하고 작업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도 조직체계의 비인간적인 명령들에 대하여 분노하고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그 마왕과 염라대왕 등 왕들이 백성을 지키는 국가기관의 장들에게 있고, 그들이 이누리에 중책으로 있다. 이누리의 수장들은 또 다른 모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누리를 통하고 이누리에서 신체 부위가 공급되고, 고기가 운운되며, 곁에 있는 디지털들이 제1차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 다음이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다. 고기가 연하다는 이유로.. 인신 매매와 식인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이 지옥 판국이다. 그 발원지가 다른 종교에 있고, 그 종교 아닌 종교의 본체가 다른 나라 강국에 있으며, 그들조차 이누리에 먹혀버렸다. 문제는 디지털이든 이누리이든 조직이든 대기업이든 정치가이든지 간에 가해와 피해를 병행하고 또 병행되고 있다는 것이 회귀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아주 너무나 간단하다. 디지털 이누리 짓거리를 안하면 된다. 나 안한다..하고 디지털과 이누리를 탈퇴하면 끝이다. 그러면 사회 질서도 잡혀갈 것이다. 놓아라! 놓자! 욕심과 게으름을 놓자! 이것으로 지옥을 면할 수 있는 세상은 올 것이다. 곧 올 것이다. 저로서도 이제는 확신한다. 그만큼 알리고 알게 되었고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 디지털들과 이누리들이 목슴을 걸고 뛰어 다녔다. 이 아이러니는 아이러니가 아니다. 짓거리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계몽과 병행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실제인 것이다. 디지털들과 이누리들도 여전히 실전이다. 그러나 국가는 계몽이다. 국가도 선한 쪽과 악한 쪽으로 편이 갈려져 있지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 해결방법으로 기긴에게도 계몽의 대상이고, 모두에게 계몽밖에 없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쉽다. 이것이 이 소설의 실상이다.
중요한 것은 실마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국민들도 그 끝을 알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들은 디지털이고 이누리는 이누리다..라는 결론과 그 안에 피해자와 지옥 백성들이 있는 것. 그들의 체계까지 양분되어 버렸다는 것 외에는 그들에게 아직 큰 변화는 없다.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리라. 갑자기 터진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대부분이 체계의 비인간적인 명령과 그 비인간성으로 곪아 왔다는 것이다! 터질 때도 되었다. 디지털도 이누리도 조직도 체계도 백성도 정치도 지옥도..
목적은 돈이다. 수행하는 것도 목숨을 빼앗는 것도 돈이다. 디지털들은 깡패 조직들에게 신상 관리를 받는다. 거짓깔들은 힘으로 제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고, 깡패 조직은 디지털들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런데 깡패 조직에 대한 디지털들은 두려움이다. 이만이가 법이 되었고, 깡패 조직도 법이 되고 말 것이다. 안아무인 격이라고 할까. 이누리 사람들은 대개 그랬다. 자기 마당이라고 멍석을 깔아 놓고, 자기 자랑을 했쌌는다.
살아보려고 이들에게도 다른 면이 있다. 버리지 못한 자기 얼굴이 있었다. 인간성은 남아 있나 보다. 그게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얼굴마저 가면인 사람들이 있더라. 거짓인 사람들이 있더라.
자신이 스스로 고통스럽다는 것은 남을 생각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절망이 희망으로 희망이 소망으로 바뀐다. 그리고 소망이면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여기까지는 아직 오지 못했다. 희망을 확인했을 뿐, 서로에게 사람에 대한 보루는 남아 있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서로 믿음이 부족하고, 그 입장을 모르고 이해가 얕은데..
그것을 안다. 우리는.. 그래서 함께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이다. 숨기지 말고.. 솔직해지는 것에서 시작해서 솔직한 것에서 결론 짓는 그 사실이 진짜이기 때문에.. 서로 부르튼 그 입으로 진실과 진심을 말하면 되는데, 거짓깔쟁이들이라 그게 어렵겠다. 이 문제가 현실이다.
그러나 악하기만 한 자들이 있다. 마지막 얼굴도 가면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진짜 디지털이고 이누리다. 자기가 악마인 줄 아는 자들이다. 싸이코인 것이다.
이것을 재차 말하는 것은 그 사이코들이 누군가 죽인다는 것이다. 그 사이코들 때문에 누군가 죽는다는 것이다. 종교의식이라는 미명 아래, 재물밥으로ㅡ!
제 5 장 경 과
일상에 침투한 이누리와 디지털을 파헤치며 생활 요원이 되어 가고, 절망 속으로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영혼과 함께 빠져 나간 생활은 빈곤해져 날아다녔다. 생각도 판단도 의욕도 행동도 눈빛도 말도 모두 힘을 잃었다. 좀비처럼 꿈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협박하는 디지털들은 사는 것 그대로 방송되는 라이브 방송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럴 수 있다. 비슷할 수도 있고, 부분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역시 내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고, 사실도 아니었다. 그들의 라이브 방송은 문자였다. 그리고 그들의 전문성은 뛰어난 소리들이었다. 이 소리들, 실제에서 녹음한 내용을 바꾸고 왜곡하고 변형하여 내보냈다. 그렇게 방송되는 문자도 실제와 달랐다. 어쩌다 이런 저런 라방 영상도 방송되었다. 이 디지털들은 습성이 돈을 위해 사람을 갉아먹다보니 라방을 운영하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악들의 출처도 만남도 같은 곳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라방보다는 과장된 더미였고, 아닌 재물밥이었고, 그 보다는 그들이 원한 것은 내 시였고, 그둘에게 내 시는 돈이었다. 결국 나는 이누리와 디지털들에게 돈일 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걸려 있는 목숨이었다.
같은 이누리의 뿌리를 보면, 교회 이누리와 이만이의 이누리가 있다. 이만이는 원래 이누리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그러던 중 생각과 교리와 그 내용을 달리하여 탈하게 되고 독자노선을 탔다. 그것이 같은 이름인 이누리라 불리면서 이만이가 위시하는 디지털 이누리가 이누리라는 이름을 더럽히게 되었다. 이누리 교회들은 근래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아니다. 오래 전 백성들이 디지털들에게 당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이누리에 대한 명칭 사용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만이는 이누리라는 명칭을 고수했고, 이누리 교회들에게서 이누리 명칭 사용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이만이 이누리는 자기가 이누리라 떠들고 다녀쌌는다. 지금 이누리 교회들은 이누리라는 명칭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누리는 이누리다. 이만이의 이누리의 상부 조직과 이누리 교회들의 상부 조직의 체계가 한 줄로 만난다는 것이다. 이누리 교회들은 이것을 모르고, 부인하고 거부하고 있으며, 부당하다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누리라는 이름은 이미 더럽혀진 이름이라기보다는 더러운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애환은 그 더러움 속에 있었고, 그들에게서 이누리가 싫어 탈한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 탈하겠다면 탈이 되는 곳이 이누리였지만, 이젠 마음대로 안되어 내개 이누리인가 아닌가는 의미가 없어졌다. 나도 이누리다..라는 말은 이제 공방 모두에게 의미가 없어졌다.
그들의 언어를 스스로 흩은 이유가 율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과 그들의 철칙인 위시와 그들만의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도 언어도 관계도 흩어져 있다. 그들은 결국 흩어진다. 그들을 묶는 것은 디지털도 이누리도 아니다. 돈이겠지만 그들도 사람이어서 그들끼리라도 아직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제 6 장 시스템 1 - 데이타들과 이야기꾼과 의식과 의식자들 그리고 프로그램과 율법
제 7 장 시스템 2 - 내부 시스템과 외부 시스템과 시스템 거짓말들
제 8 장 개인의 현실과 대처, 국민의 현실과 계몽
하는 행위와 공격 하는 자와 당하는 자 모두 digital이라 하니 헷갈릴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공격하는 자를 디지털(털)이라 하고, 당하는 자를 디지탈(탈)이라 하며, 그 행위를 디지팃(팃)이라고 하자.
다 디지털이다. 디지털을 사용하고, 디지털이 돼서 디지털이 되게 한다. 미친 기계를 사용해 미친 짓을 배우고 미치게 하고 미치게 된다. 이것이 digital이다. 이 모두를 digital 이라 하고, 그 세상과 세계를 Digital 이라 하자.
디지털들은 거짓말로만 거짓깔로만이다. 대처 방법은 하나다. 끝까지 하는 거짓말과 거짓깔들 그 협박과 두려움을 끝까지 무시하는 것이다. 문은 잠그고 창문은 열고서! 그들이 확언을 시켜주어도 믿지 마라. 감동도 확신도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철저히 무시하라!! 인질극을 벌여도 죽는 비명 소리가 들려도 완전 무시하라!
꼬셔도 유인해도 말장난 하지 말라! 나오라는 말하고 만나자는 말하고 돈에 관한한 100%거짓말이다. 꾸준히 말해온 것이라 해도 믿으라해도 정말이라해도 이것만은 해도 다 이들의 말은 거짓말이다. 무시하라!!! 잔인하게. 그들은 만나지 않는다. 주둥아리다! 철저히 주둥아리다. 그들이 말한 것에 반대가 맞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무시하라! 분석하자 마라! 무시하라! 음악은 그냥 들어라! 그러나 자신에게 해가 될 정도로는 듣지마라! 위험한 경우는 크게 들으라! 시끄러운 곳에서는 디지털들의 주둥이짓이 어렵다.
문제는 이들의 이야기다. 안빠져들 수가 없는 것이다. 무시할 수가 없다. 무시가 안되나 곧 스토리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습관을 길러라! 이들의 숴토리는 감동적이고 논리적이뫠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빠져든다.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다시 문제가 된다! 들리면 그냥 듣고 있지만 말고 내 일에 집중하라. 내 생할을 하라!
이렇게 해도 이 말을 해도 이것을 안다해도 또 무시가 안될 것이고, 또 무시가 안될 것이다. 방편을 생각하라 각자 생활 속에 침투한 스티커 껄떡쇠들이니 그렇다. 탈들에겐 두려움이나 털들에겐 장난이고 노는 것이다. 일단 알로고 신고하라! 이젠 경팔이나 사람들이 알만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거까저 오기가 그렇게 그토록 힘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밤이 찢겨져 나가야 했는지..
다른 방펀이라면, 무시하고 차라리 여행을 가라! 기차 속에서 자라! 확실한 곳에서 자되 하루 이틀 대충 자도 대부분 괜찮다. 그러나 시스템화 된 곳이 많으니 그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결국 이렇게 경험하게 되는 디지털 세상이다. 세상이 지옥인 것이나 무시하는 수 밖에 없다. 음악을 듣고 여행을 가라. 강력한 단체에 들거나 강한 가정이거나 권력이 있는 가정이 있다. 강해야 사는 세상이다.
이 방편은 말하고 싶진 않지만, 차라리 디지털을 배워라. 디자털이 돼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인간 말종이 되고, 인생 막장이 된다.
자, 다시 돌아가서 살펴 보자.
하나의 꽁트를 가진 것을 프로그램이라 하고, 이야기를 가진 것을 스토리라 하며, 스토로가 이어지고 역할과 대역을 가진 것이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즉흥적이다. 그만큼 거짓말에 능숙하고 거짓깔에 강하다. 각본 대본 시나리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한다!'하면 그 멘트와 대사와 문장과 상황과 분위기와 스토리가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할은 눈치껏 자동 분배되나 해보겠다고 하면 그 역할을 맡는 것이고, 그 목소리로 출력하게 되면 그 자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그 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이만이도 이억도 김풍도 박단도 박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이들이 일당을 주어 보낸 디지털들이 대신하기도 한다.
디지탈들은 여기서 우왕좌왕하게 되며 구별과 분별력 없이는 그 스토리에 말려들게 된다. 말려들게 되면 말려 버린다. 사람이 말라 간다. 입이 타고 심장이 타들어 간다. 뜨거운 지옥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두려움에 떨게 되고, 모든 상처를 입는다. 하소연이나 호소할 곳도 받아줄 사람도 없다. 하자니 막연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경우가 많아서 돈을 뜯기고, 강간을 당하고, 자살을 하게 되고, 사람을 죽이게 되고, 일을 스르치기도 하고, 결근을 하게 되고, 아프게 되고, 화를 내게 되는 등 한 개인의 삶이 부서지고 엉망이 된다. 이것이 디지탈이 겪는 현실이다.
디지털들은 거짓말로만 거짓깔로만이다. 하나의 꽁트를 가진 것을 프로그램이라 하고, 이야기를 가진 것을 스토리라 하며, 스토로가 이어지고 역할과 대역을 가진 것이 시나리오이다. 구러나 이것들은 즉흥적이다. 그만큼 거짓말에 능숙하고 거짓깔에 강하다. 각본 대본 시나리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한다!'하면 그 멘트와 대사와 문장과 상황과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할은 자동 분배되나 해보겠다고 하면 그 역할을 맡는 것이고, 그 목소리로 출력하게 되면 그 자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그 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이만이도 이억도 김풍도 박단도 박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이들이 보낸 디지털들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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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결 탁
국방 공안 경찰 검찰 법원 국회 공공 정부 국가 기관 할 것 없이 별마다 장급마다 자리의 요소마다 실무마다 청탁에 의한 결탁이 이루어졌다. 이누리 봐주기식 일처리는 교묘했고, 그들의 위시는 하늘을 찔렀다. 다른 내용이지만, 운전시 낮에도 헤트라이트를 켠 채 달리는 위시는 꼴보기에도 멋쩍다. 그것을 국만의 반 이상이 그러고 있다. 어린아이들처럼 떼거지로 도심 도로마다 낮에도 눈에 불을 켠 채 다닌다.
제 12 장 결에 부쳐
D와 D의 전쟁이었다.
더미와 디지털.. 가난한 국민들이다.
그들이 이용하는 하위 계급인 것이다.
더미는 일반 백성이다. 누구나 될 수 있다.
디지털.. 졸, 이들도 역시 누구나다.
이들이 가해자이고 계몽과 개혁의 대상이지만
이들이 피해자와 함께 애환에 중심에 서 있다.
그들은 초딩이고! 중딩이고! 고딩이고!..
내 아들들이고 내 딸들이다.
조직도 정치가도 대기업도 대통들도
국가 정부기관 수장들이 그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와 왜 쌔워야 하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인 급한 사리사욕 때문에?
시기와 질투 때문에?
재물밥 때문에?
권위와 위시 때문에?
교만을 채우기 위하여?
알량한 돈 때문에?
조직 체계 때문에?
악한 마음 때문에?
이 모든 사람들이 이 모두인 것 같다.
그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이제 졸과 더미들이 울부짖고 있다!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뭐 먹을 게 있다고..!
서로 가난한 줄 알면서..
그들까지 그들의 이해를 내놨었다.
왜 다시 우리가 우리를 갉아먹는 것이냐.
가만히 지켜보는 자들이 무서운 것이다.
그들은 뺏어 먹는 게 아니라
내 자체를 먹으려고 한다는 것을..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졸이 더미이고, 더미가 결국 졸이 된다.
이누리가 그렇게 만든다.
그리고 이누리도 deWar를 겪는다.
그들도 착한 쪽과 나쁜 쪽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선과 악의 씨움이다.
이렇게..
지옥을 면하려면
모두 착해지는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은 쉽다.
디지털과 이누리를
내려 놓으면 되는 것을..
우리 모두!
대한민국이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이 있다.
그깃은...
이누리는 이누리고
디지털은 디지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조심해야 할 대상은
악하기만 한 싸이코들이다.
처벌은 처벌이고 습관과 버릇과 그 악함은
그 사람에게 달려 있으므로.
그러나 두려움과 억눌림은 법도 사랑으로 대할 것이다.
이누리와 디지털이 해결됐을 때
걱정인 것은
민생 범죄가 늘어날 것이머
일반 범죄들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비인간적인 사건들과 이누리와와 관계된 많은 희생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려하고 있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고 문제다!
[ 프롤로그 ]
이누리는 민심당에도 있고, 함께당에도 있다. 같은 이누리다. 그런데 이누리가 거짓깔 부대 디지털로 이 나라를 좀먹고 있고,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고 있다.
이누리 수뇌부를 제외하고는 돈과 자리와 권위와 청탁에 눈이 먼 자들이 이들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백성들을 잡고 잡들이를 하고 있다 . 인육을 먹는다는 것으로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도 그렇고, 더미이자 재물밥을 강제로 만들어 놓고 그 피해자인 박단을 북송해서 십자가에 메단다는 것도 그렇고 북한에 관계된 말들이 떠다니고 있다.
이누리의 대국민침투 방법 또한 그렇다. 북한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누리 조직과 그 체계와 그 아래 극성분자들이다. 우리 백성이기도 한 그들이 북한 조직의 일원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누리의 실질적인 회원이 백만을 넘었지만, 진짜 이누리는 수천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극성분자들까지 수천에 불과하지만 이들도 다시 회귀되고 있다. 이들까지 제외한다면 그들은 수십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누리의 디지털 교육은 계속되고 있고, 지옥의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이것은 Dummy와 Digital 과의 전쟁을 넘어선 국가의 운명이 달린 문제다! 이것은 Department 와 Digital 과의 싸움으로 번질 것이다. 나라는 대한민국 부대에 거짓깔부대를 창설한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수많은 거짓깔을 부대에도 둘 것인가! 그 거짓깔은 어디서 배울 것인가! 거짓깔 부대를 키우는데는 이누리 밖에 더 있는가.
디지털을 상대할 원천가술을 가지고 있는 경찰부대를 만들어야 될 것이다. 나라와 나라의 싸움으로 같은 거짓깔부대를 만들 것이냐. 디지털은 경찰이 때려잡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정치는 왜 경찰력을 축소하였는가! 그 장비들은 왜 낡아빠졌는가! 경찰이 디지털들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원과 장비와 교육이 문제다. 그리고 디지털을 어디서 교육이 이루어졌고, 누구한테서 배웠는가! 이누리다!! 국가기관 정부기관에도 이누리와 디지털이 많다.
그러나 북한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백성들이 디지털이 되고 있다! 북한 주민이 되고 있다! 나라는 공산화가 되고 있다. 북한이 되고 있다! 그리고 내부로 침투하여 함께당이나 민심당의 분열을 조장하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지만 국회의원들 중 이누리가 많고, 디지털을 거느리는 자들이 많다. 국민 생활의 전면전이다!!!
초등생 디지털들이 울부짖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아냐고!! 이를 어쩔셈인가!!!
제 1 장 BD
7년 전이었다. 2014년 2월 6일, BD (생체 실험 인형, Biometrics Dummy) 임상 신약을 처음 먹던 날이었다. 임상실험체가 되던 그 날, 나는 그 약 때문에 꼬박 2박 3일 동안 맥을 거의 잃다시피 잠에 빠져 있었다. 자는 동안 약은 복합적 상승작용으로 무의식 속에서 떠다니는 내 의식을 잡아먹고 있었다.
먹히고 먹히며 3일이 지난 4일 째부터는 2~3시간만 남기고 오히려 잠의 대부분을 앗아가버렸다. 약은 주고 또 뺏아간다. 이기는 것보다 병과 약은 견디어 참아지는 거라고.. 병과 함께 내가 치료만큼 죽는 것이 약이라고..
이전 동물 임상 실험 결과를 통해서도 처음 견디어내는 시간, 즉 약에 대한 최초 적응 시간으로 쥐의 경우 2주일, 인간 대상으로는 4일은 잡았었다. 나는 실험 쥐보다 1/7의 시간으로도 잠을 약에 내주고도 고통을 반이나 줄일 수 있었으니,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인형으로써도 제격이었다.
그런데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되는 이유, 이와 머리카락이 끊어지거나 빠지는 등 묵과할 수 없는 신체적 부작용으로 인하여 먹던 임상약이 중단되어 식약안전청의 권고로 다른 임상약으로 바꾼 시점은 2019년 5월이었다. 대체되는 약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약은 이전 약처럼 신경의 고통의 반 이상을 줄여주면서도 피곤을 현저히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부작용은 몸이 이전보다 기분 나쁜 부대낌과 함께 신물처럼 넘어오는 꺼림직한 느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몸과 생각이 멍해진다는 것이었다. 걱정되는 건 이 부분이었는데, 나는 묻지만 의사는 실험약에 대해 여타 말이 없다.
신체가 병을 약에 의한 수치 대비 반복 실험에서 얼마나 견디어낼 수 있는지..의 하나의 실험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신약이 몸 안에 쌓이게 된다면의 가정이 기준이 된 실험에 약의 발현과 효과와 부작용과 그 증상들에 대한 데이타 축적과 과다투여량의 결과 까지도 산출 병행되었다. 이렇게 약에게 몸을 내주는 대신 인형이 되었다. 이로 신체유지 비용을 탕감받은 나는 몸을 걸고, 의사는 제출할 한줄의 결과를 얻는 일. Dummy는 질주중, 나는 희망중, 부모님은 기도중, 애들은 소망중, 나의 챠트엔 과다투여중이라 써 있다.
거울을 보면, 잔근육들과 날선 갑바, 골격과 머리가 작아 외소해 보이지만 옷맵시는 좀 나는, 나름 운동을 해서 잘빠진 고등 3학년 풋풋한 체형, 알몸은 이렇게 눈부신데 내 안의 알고리즘 하나가 무너져서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굽어 접히는 고통은 할 말마저 막는다. 버티는 수 밖에. 충격실험 자동차 속 그 더미들도 말이 없었는데.. 날고 싶다. 고통을 호소하는 내 자신, 그리고 근육과 뼈들.. 머리도 안되겠다 의식을 놓고, 몸은 스스로 웅크리고 망할 척추를 드러낸다.
심장을 무시한 고통이 한계를 넘나들 때 가끔 심장이 뛰지 않던 부정맥이 결국 생명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임상병리 과장 김중식 의사의 소견. 나에게 만큼은 비밀들을 공개하고 여러 편의를 봐주고 있음을 보여주겠다며 끄적거리던 챠트를 나에게 내민다. 두 번 밑줄 그어진 선명한 한줄.
"This case is reconciliation with the pain."
고통은 참을 수 있다. 약이 그 고통의 반절만 해결해 준다면.. 만약 약이 없었다면 난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란 것을 선택없이 실행할 것이었다. "고통과의 화해" 부작용을 무시한 투여는 계속되었으나 다행히 적응했고 변화들에 따른 면역 속도도 빨라졌다. 순탄치는 않지만 더미는 여전히 질주 중이다.
어쩌다 1~2초간 멈추었다 뛰다하는 부정맥 심장이 10분 이상 말하자면 영원히 멈추어야 끝나는 이 실험.. 아니 나에게는 완벽한 실전! 나는 가속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 벽과의 거리는 속도다. 그 속도 안에서 날던지 생체가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던지! 그런데 내 날개는 한번도 날아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백지 같은 흰색과 제일 싫어하는 노란색과 빨간색이 교차되는 실험실에서 50억 짜리 진단용실험장치가 로봇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면 비싼 장비도 나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INURI Secret top.. 왼손잡이 주치의 박준 과장의 오른팔조에 항상 걸쳐있는 챠트 첫장 윗부분 빨간색으로 선명히 적혀 있는 이니셜..BD! 나는 벽에 부딪힐 때 책임을 다하는 인형, 벽에 부딪혀 기록만 남기고 부서질 Dummy였다. 인간임상실험의 생체 더미(Biometrics Dummy). 그러나 누구보다도 사람이었다.
거슬러 올라간 7년이 흘러내렸다. 약은 여전히 축척 중이다. 그러고 어느 날..
제 2 장 역 류
또 거기서 거슬러 역류된 7년이 더해진 14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2007년 그 해 봄, 민중이 일어선 4~5월 쯤 마지막 항거를 마치고, 있던 안정제와 수면제를 먹고 얼마나 잤을까..
두 콧구멍으로 하얀 토사물이 콧물처럼 흘러나오고, 혀 뿌리에까지 위장의 역류가 쓴물과 함께 다셔왔다. 위벽이 녹아내리는가 싶더니 좀 더 안쪽 쓸개를 비틀고, 내장의 근육이 뭉치며 꼬이고 있었다. 바로 아래쪽 십이지장을 쥐어 짜는 듯한 고통에 이어 식은땀에 젖은 등줄기의 멍해진 근육은 굳어갔고, 명치는 오그라들며 점점 뭉쳐갔다.
다른 통증들은 각각의 오감을 거쳐 순식간에 뇌하수체로 모인 감각은 금새 피질과 수질에 여파되며 걸러지고 해석된 정보가 판단에 이르기까지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등 근육의 뭉침과 압박감에 못이겨 구부러지며 엎드렸다. 다행히 배와 등줄기의 고통은 엎어지는 것만으로 견딜만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기력(氣力)에 의한 은색의 단색 화면이었는데,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감은 눈꺼풀 위에 은색 판화처럼 장들이 영사되었다. 그것은 누군가 어디로부터 일까.. 눈을 뜨니 영상 스크린이 올라갔다. 다시 감으니 내렸다. 스크린의 은색 영상과 함께 느낌이 곧장 전해져 오는 것이다. 그 느낌은 오감에 육감까지 전해오고 있었다.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소리와 영상이 느낌을 실어올 수 있느냐는 거다. 이것이 그 디지털과 의지가 의식을 끌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불가능한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활 속으로 밀고 들어 왔다. 직접 맡고 보고 듣고 만지는 느낌처럼 그 영상 컷들이 보내오는 사람의 의식과 내 인식에 동시에 달라 붙는 것이다. 의식을 차릴 새도 없이 20시간을 자버렸다.
얼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깰 만큼의 의식이 돌아와 눈을 떠 보니, 문득 모든 느낌에 있어 나는 내 자신이 생소해졌음을 감지했다. 공황이다. 깨어나기 무섭게 박동수가 오르고 체온이 오르며 신경이 예민해지는데 모든 감각은 둔해졌다. 극도의 멍함과 극도의 목마름은 나에게 초월의 상태를 원하고 있었다.
과다 투여되고 축적된 약의 부작용일 게다. 그리고 요소였다. 타들어가는 위와 내장, 배를 젓가락으로 꿰뚫어 후비는 것만 같았다. 내근들이 꼬이고 속이 울렁거리다 어지럼증에 도저히 가누지를 못했다. 뒷머리 뇌하수체를 타겟하고 뻗쳐 오르는 알 수 없는 독기가 뒷목을 치고 올라왔다. 왼손으로는 굳어가는 뒷목을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배를 움켜 잡은 채 일어서려다 허리까지 타고 내린 고통에 걸려 꼬꾸라졌다.
시간.. 바닥은 값어치만큼 차가운 이태리제 대리석, 안이 보이지 않는 이중 창호는 떨고 있었다. 왠만해선 바닥에 불을 넣지 않는데, 이제서야 난방이 시작된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뒷모습.. 진한 고동색 중절모와 그것보다 색이 좀 연한 바바리 코트를 입은 사내는 누구일까. 그는 내가 깨어나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깼나..?
김풍, 묻는 말에서조차 그의 외자 이름값만큼이나 차가웠다. 재갈이 아니더라도 나의 의지로는 입술을 뗄 수 없었다. 벽시계는 정오인지 자정인지 12를 두 침이 포겐 채 가리키고 있었고, 어둠도 빛도 들지 않았다. 회색과 흰색의 없는 색만이 주위를 두르고 있었다. 말없이 고요는 한참 흘렀다. 시침과 분침은 서서히 멀어져 갔다. 두 침이 직각을 이루고 나서야 나는 뻐근한 입술을 떼어 말을 뗐다.
뭡니까..
12시 15분.. 난방에 온도도 15℃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하일까.. 아직 냉랭한 기운이 실내 한랭전선을 타고 회오리 치고 있는, 방이라고 하기엔 높은 천장과 넓은바닥. 로비 상들리에가 달려 있어야 할 곳에 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빼고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12행*12열에 맞춰진 방석들, 교육 프로젝트의 영상 채널이 상영될 법한 하얀 벽면, 바로 앞 얇고 날씬한 교단과 교탁, 어떤 교리를 가르치고 단체 행동을 요구하는 사이비 교파의 한 무리를 양산해내는 교육장 아닐까..
어딜 보나..
이어지는 문장은 소음에 묻혀 한참을 기다린 그의 목소리가 제 톤을 찾아갈 때, 내 목은 역류를 삼키고 있었다. 코와 눈에까지 시큼한 맛을 느낄 때. 짤막한 멘트 안에서 중절모 아래로 직각의 턱과 날선 코에서 예리한 관상도 느껴왔다. 예삿놈은 아니었다.
그를 쳐다보지 않아도 그의 생각들이 내 의식에 와 닿았다. 그 의식을 분석하여 훔쳐낸 생각을 패턴화하여 다시 거짓말로 현실들을 왜곡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디지털 짓거리였다. 김풍이라는 사람, 그는 디지털들을 교육시키는 교육자들의 장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 자재였고, 나는 거기에 있었다.
제 3 장 구성과 정의
세상이 간과할 수 없는 비종교 이단 집단 이누리의디지털 교육을 짚어보자.
교육자들은 각 지방에 있었고, 특별한 교육자들은 일개 교구까지 돌며 몸이 갇혀 있거나 생활이 메여 있는 더미(dummy)들을 이용하여 디지털 특수기술들을 가르쳤다. 순회하는 교육자들은 이누리 교육장에서 교주 '이만'이와 함께 디지털들의 교육을 담당했고, 교구마다 교육장을 두어 근래 대량 생산해 내고 있다. 교육장이 대부분 그들의 교회의 지척에 있었으나, 어디든 그들의 범죄 현장이 곧 교육장이었고, 바쳐진 피해자 곧 더미는 일반 가족 중 하나가 바쳐져 교육용 더미(dummy)로 쓰였던 것이다. 그의 가족들의 디지털 교육 증진을 병행하면서..
이누리의 교주 이만이와 이누리의 이클립 의사 박준과 이누리의 실세 부장 이언, 지략가 강구와 트릭가 박인과 디지털 교육의 단장으로 불리던 김풍의 이누리 수장들의 큰 그림의 이누리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나를 괴롭혔던 가족 3명과 그의 배필들 3명과 두 아이와 할미, 이누리 실력가 3명으로 구성된, 3명이 짝을 이루는 시나리오 연극 사기단들과 프로그램과 율법과 그의 디지털들이 있었다.
디지털이란, 몰래 피해자의 귓속이나 두피에 넣어 붙이는 초소형의 스피커와 마이크를 이용한다. 디지털들도 그것을 붙이고 있어야 디지털로 대화가 가능하다. 디저털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들은 집적되고 증폭되는 고도화된 디지털 기계였고, 거짓깔 또한 그랬다. 이 디지털이라는 말은 핸드폰을 이용한 특수 스토커 범죄행위를 말하기도 하고, 그 범죄를 당하고 저지른 사람을 동시에 지칭하고 있다. 이것은 초창기의 디지털(Digital)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이비이자 이단 단체인 이누리 유사 종교 단체와 결탁하여 세력을 세상에 뿌렸다. 그 때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마스크가 필요 이상으로 팔려 나가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 디지털에 대하여, 당하고도 누구한테도 112에도 파출소에도 경찰서에도 청에도 관에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설명을 해주어야 되는데 설명을 한다는 것은 기회조차 불가능했다. 모르는 척 하는 그들에게 몇 줄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이누리와 디지털에 대하여 말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밖에 없고 이 지면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말문까지 막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언제 사라질지 모를 소설이다.
디지털들은 일단 상대에게 자기 목소리를 1dB 이하로 어떻게든 들리게 하여 협박하고 공갈하고 사기를 친다.
병원에서는 이 현상을 증상으로 보고 이명이나 조현병으로 진단해 버린다. 거짓과 거짓깔로 점철된 구조 속에서, 일상 생활 속의 각본이나 대략의 시나리오와 간략한 문장들을 녹음도 하여 핸드폰에 버튼 그룹이나 키보드에 넣어 사용키 위해 간간히 상황 연기들을 미리 해 놓는다. 반복적으로 말하는 대신 버튼이나 키보드를 눌러 녹음된 소리와 말과 스토리들이 상대에게만 들리게 주파수를 맞추고서 라디오처럼 트는 것이다. 스토리란 현실을 바탕으로 협박하기 위한 거짓말로 이루어진 간략한 대본 같은 것이다. 그 중 자세한 것도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프로그램이라 하였다.
이것을 범죄에 이용하여 돈을 뜯고 사람의 마음을 갉아 먹는 것. 이것이 디지털 짓거리라고 해서 이것도 간단히 디지털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디지털은 사람인 범인과 행위인 범죄 그리고 당하는 피해자까지 셋 다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쓰이는 도구까지 다 디지털이고, 그 디지털 회사와 결탁을 하여 회사는 사용하는 국민을 볼모로 디지털 기계를 판다. 고가의 음향장치에서 중계기까지.. 디지털들은 소리가 무기다. 그 목시리만 들으면 치가 떨린다. 그들이 만드는 상황이 지옥이다. 그덜은 거짓깔로 보이지 않는 지옥을 만들어 그 이야기 속에 빠지게 한다. 디지털들의 중요한 것은 거짓깔이고, 그 스토리다.
범인들 중 소설을 잘 쓰는 스토리맨이 현실과의 접목된 스토리를 만들고, 나머지는 인디언이 되어 연극을 한다. 피해자가 그 스토리 속에 빠지게 되고, 1dB 속 가상 현장은 의식을 통하기도 하고, 그렇게 상황과 사건과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여 미궁 속으로 떨어뜨린다. 그 디지털들이 만든 스토리가 만든 거짓된 세계가 피해자들에겐 지옥인 것이다. 그 지옥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남들은 모르는 세상에서 홀로 디지털과의 전쟁을 치러내야 한다. 결국 내 몸까지 팔릴 고기로 바쳐야 하는 덩어리 신세가 되는 말도 안되는 세계. 이것이 또 디지털 세상이다.
디지털화된 세상은 사람이 디지털이 되어버린 세계이다. 그 세상이 지금 여기인 것이다. 디지털화는 생각의 게으름에서 시작되고 행동의 귀찮음으로, 마음의 메마름을 거쳐 차가운 가슴에서 나오는 말들에게서 나타난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입들만 무성하다. 이것이 인터넷이고 거기서 가짜가 판치고, 그것이 핸드폰이고 그것으로 거짓깔들이 오고 가고, 그게 악의 세상이다. 그 세상의 거짓말들이 프로그램화 되어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율법이 되고. 거기를 인터넷을 통해 구다보고 있는 내가 바로 디지털이다. 어떤 디지털이 되느냐가 문제일 뿐..
제 4 장 관 계
이누리와 디지털이 합체한 회오리의 중심에 교주 '이만'이가 있다.
디지털 범죄는 모든 디지털들이 출연하는 스토리 속 범죄 현장에서 가해지는 협박과 사기와 갈취와 강간과 살인과 대리 살인과 청부와 청탁과 장기매매와 인신매매가 이만이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철저히 거짓과 그 말과 가짜들로 이루어지는데 거기엔 사실도 진실도 없다. 그마저 거짓과 가짜가 되므로.. 가짜 이만이가 또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누리가 디지털들을 관리하고, 이들을 교회와 조직이 관리하고, 교회와 조직을 대기업들이 결탁하고, 정치인들이 사용하고 법조인들이 뒤를 봐주고 경찰들이 그들의 감투들을 차지하고 나서고, 정치인들이 이들을 또 관리하는데, 그들이 모두 이누리다. 이 디지털 왕국이 대한민국인 것이다. 속을 알수록 절망적이다. 그러나 그들도 국민이고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싫다. 그들을 용서하고 싶진 않다.
핵은 디지털이다. 아니다 이만이다. 아니다 이누리다. 아니다 조직과 정치가들이다. 아니다 피해자들이다.
아니다 모두가 다 가해자들이다. 피해자는 백성들이고, 지옥에서 오열하고 있는 분해되어 각 기관들과 고기 덩어리로 팔려 나갈 찢겨질 자들이다. 그리고 자궁 속에서 찢겨진 자들이다. 그들을 토막이라 할 것이다.
그 지옥들을 펑범한 우리가 갖고 있다.. 자궁도 원룸도 빈집도 빈 상가도 빈 사무실도 빈 창고도.. 빈 곳이라면 방치하는 곳이라면 주택에도 들어찰 지옥이다. 이젠 그 범위가 확대되어 일반 학생들까지, 초등 중등 고등 대학 일반 할 것 없이 생활(돈, 약, 의식주, 약점. 협박, 공포, 인질 등..)에 잡힌 사람들이 옴짝 달싹 못하고 이누리와 디지털들에게 잡혀 살게 되는 지옥이 디지털 세계다. 나까지 내 자신까지 잡아 먹히게끔 되어 있다. 이것을 디지털들과 이누리들이 수행하고 작업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도 조직체계의 비인간적인 명령들에 대하여 분노하고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그 마왕과 염라대왕 등 왕들이 백성을 지키는 국가기관의 장들에게 있고, 그들이 이누리에 중책으로 있다. 이누리의 수장들은 또 다른 모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누리를 통하고 이누리에서 신체 부위가 공급되고, 고기가 운운되며, 곁에 있는 디지털들이 제1차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 다음이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다. 고기가 연하다는 이유로.. 인신 매매와 식인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이 지옥 판국이다. 그 발원지가 다른 종교에 있고, 그 종교 아닌 종교의 본체가 다른 나라 강국에 있으며, 그들조차 이누리에 먹혀버렸다. 문제는 디지털이든 이누리이든 조직이든 대기업이든 정치가이든지 간에 가해와 피해를 병행하고 또 병행되고 있다는 것이 회귀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아주 너무나 간단하다. 디지털 이누리 짓거리를 안하면 된다. 나 안한다..하고 디지털과 이누리를 탈퇴하면 끝이다. 그러면 사회 질서도 잡혀갈 것이다. 놓아라! 놓자! 욕심과 게으름을 놓자! 이것으로 지옥을 면할 수 있는 세상은 올 것이다. 곧 올 것이다. 저로서도 이제는 확신한다. 그만큼 알리고 알게 되었고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 디지털들과 이누리들이 목슴을 걸고 뛰어 다녔다. 이 아이러니는 아이러니가 아니다. 짓거리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계몽과 병행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실제인 것이다. 디지털들과 이누리들도 여전히 실전이다. 그러나 국가는 계몽이다. 국가도 선한 쪽과 악한 쪽으로 편이 갈려져 있지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 해결방법으로 기긴에게도 계몽의 대상이고, 모두에게 계몽밖에 없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쉽다. 이것이 이 소설의 실상이다.
중요한 것은 실마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국민들도 그 끝을 알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들은 디지털이고 이누리는 이누리다..라는 결론과 그 안에 피해자와 지옥 백성들이 있는 것. 그들의 체계까지 양분되어 버렸다는 것 외에는 그들에게 아직 큰 변화는 없다.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리라. 갑자기 터진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대부분이 체계의 비인간적인 명령과 그 비인간성으로 곪아 왔다는 것이다! 터질 때도 되었다. 디지털도 이누리도 조직도 체계도 백성도 정치도 지옥도..
목적은 돈이다. 수행하는 것도 목숨을 빼앗는 것도 돈이다. 디지털들은 깡패 조직들에게 신상 관리를 받는다. 거짓깔들은 힘으로 제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고, 깡패 조직은 디지털들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런데 깡패 조직에 대한 디지털들은 두려움이다. 이만이가 법이 되었고, 깡패 조직도 법이 되고 말 것이다. 안아무인 격이라고 할까. 이누리 사람들은 대개 그랬다. 자기 마당이라고 멍석을 깔아 놓고, 자기 자랑을 했쌌는다.
살아보려고 이들에게도 다른 면이 있다. 버리지 못한 자기 얼굴이 있었다. 인간성은 남아 있나 보다. 그게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얼굴마저 가면인 사람들이 있더라. 거짓인 사람들이 있더라.
자신이 스스로 고통스럽다는 것은 남을 생각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절망이 희망으로 희망이 소망으로 바뀐다. 그리고 소망이면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여기까지는 아직 오지 못했다. 희망을 확인했을 뿐, 서로에게 사람에 대한 보루는 남아 있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서로 믿음이 부족하고, 그 입장을 모르고 이해가 얕은데..
그것을 안다. 우리는.. 그래서 함께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이다. 숨기지 말고.. 솔직해지는 것에서 시작해서 솔직한 것에서 결론 짓는 그 사실이 진짜이기 때문에.. 서로 부르튼 그 입으로 진실과 진심을 말하면 되는데, 거짓깔쟁이들이라 그게 어렵겠다. 이 문제가 현실이다.
그러나 악하기만 한 자들이 있다. 마지막 얼굴도 가면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진짜 디지털이고 이누리다. 자기가 악마인 줄 아는 자들이다. 싸이코인 것이다.
이것을 재차 말하는 것은 그 사이코들이 누군가 죽인다는 것이다. 그 사이코들 때문에 누군가 죽는다는 것이다. 종교의식이라는 미명 아래, 재물밥으로ㅡ!
제 5 장 경 과
일상에 침투한 이누리와 디지털을 파헤치며 생활 요원이 되어 가고, 절망 속으로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영혼과 함께 빠져 나간 생활은 빈곤해져 날아다녔다. 생각도 판단도 의욕도 행동도 눈빛도 말도 모두 힘을 잃었다. 좀비처럼 꿈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협박하는 디지털들은 사는 것 그대로 방송되는 라이브 방송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럴 수 있다. 비슷할 수도 있고, 부분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역시 내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고, 사실도 아니었다. 그들의 라이브 방송은 문자였다. 그리고 그들의 전문성은 뛰어난 소리들이었다. 이 소리들, 실제에서 녹음한 내용을 바꾸고 왜곡하고 변형하여 내보냈다. 그렇게 방송되는 문자도 실제와 달랐다. 어쩌다 이런 저런 라방 영상도 방송되었다. 이 디지털들은 습성이 돈을 위해 사람을 갉아먹다보니 라방을 운영하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악들의 출처도 만남도 같은 곳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라방보다는 과장된 더미였고, 아닌 재물밥이었고, 그 보다는 그들이 원한 것은 내 시였고, 그둘에게 내 시는 돈이었다. 결국 나는 이누리와 디지털들에게 돈일 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걸려 있는 목숨이었다.
같은 이누리의 뿌리를 보면, 교회 이누리와 이만이의 이누리가 있다. 이만이는 원래 이누리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그러던 중 생각과 교리와 그 내용을 달리하여 탈하게 되고 독자노선을 탔다. 그것이 같은 이름인 이누리라 불리면서 이만이가 위시하는 디지털 이누리가 이누리라는 이름을 더럽히게 되었다. 이누리 교회들은 근래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아니다. 오래 전 백성들이 디지털들에게 당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이누리에 대한 명칭 사용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만이는 이누리라는 명칭을 고수했고, 이누리 교회들에게서 이누리 명칭 사용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이만이 이누리는 자기가 이누리라 떠들고 다녀쌌는다. 지금 이누리 교회들은 이누리라는 명칭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누리는 이누리다. 이만이의 이누리의 상부 조직과 이누리 교회들의 상부 조직의 체계가 한 줄로 만난다는 것이다. 이누리 교회들은 이것을 모르고, 부인하고 거부하고 있으며, 부당하다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누리라는 이름은 이미 더럽혀진 이름이라기보다는 더러운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애환은 그 더러움 속에 있었고, 그들에게서 이누리가 싫어 탈한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 탈하겠다면 탈이 되는 곳이 이누리였지만, 이젠 마음대로 안되어 내개 이누리인가 아닌가는 의미가 없어졌다. 나도 이누리다..라는 말은 이제 공방 모두에게 의미가 없어졌다.
그들의 언어를 스스로 흩은 이유가 율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과 그들의 철칙인 위시와 그들만의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도 언어도 관계도 흩어져 있다. 그들은 결국 흩어진다. 그들을 묶는 것은 디지털도 이누리도 아니다. 돈이겠지만 그들도 사람이어서 그들끼리라도 아직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제 6 장 시스템 1 - 데이타들과 이야기꾼과 의식과 의식자들 그리고 프로그램과 율법
제 7 장 시스템 2 - 내부 시스템과 외부 시스템과 시스템 거짓말들
제 8 장 개인의 현실과 대처, 국민의 현실과 계몽
하는 행위와 공격 하는 자와 당하는 자 모두 digital이라 하니 헷갈릴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공격하는 자를 디지털(털)이라 하고, 당하는 자를 디지탈(탈)이라 하며, 그 행위를 디지팃(팃)이라고 하자.
다 디지털이다. 디지털을 사용하고, 디지털이 돼서 디지털이 되게 한다. 미친 기계를 사용해 미친 짓을 배우고 미치게 하고 미치게 된다. 이것이 digital이다. 이 모두를 digital 이라 하고, 그 세상과 세계를 Digital 이라 하자.
디지털들은 거짓말로만 거짓깔로만이다. 대처 방법은 하나다. 끝까지 하는 거짓말과 거짓깔들 그 협박과 두려움을 끝까지 무시하는 것이다. 문은 잠그고 창문은 열고서! 그들이 확언을 시켜주어도 믿지 마라. 감동도 확신도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철저히 무시하라!! 인질극을 벌여도 죽는 비명 소리가 들려도 완전 무시하라!
꼬셔도 유인해도 말장난 하지 말라! 나오라는 말하고 만나자는 말하고 돈에 관한한 100%거짓말이다. 꾸준히 말해온 것이라 해도 믿으라해도 정말이라해도 이것만은 해도 다 이들의 말은 거짓말이다. 무시하라!!! 잔인하게. 그들은 만나지 않는다. 주둥아리다! 철저히 주둥아리다. 그들이 말한 것에 반대가 맞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무시하라! 분석하자 마라! 무시하라! 음악은 그냥 들어라! 그러나 자신에게 해가 될 정도로는 듣지마라! 위험한 경우는 크게 들으라! 시끄러운 곳에서는 디지털들의 주둥이짓이 어렵다.
문제는 이들의 이야기다. 안빠져들 수가 없는 것이다. 무시할 수가 없다. 무시가 안되나 곧 스토리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습관을 길러라! 이들의 숴토리는 감동적이고 논리적이뫠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빠져든다.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다시 문제가 된다! 들리면 그냥 듣고 있지만 말고 내 일에 집중하라. 내 생할을 하라!
이렇게 해도 이 말을 해도 이것을 안다해도 또 무시가 안될 것이고, 또 무시가 안될 것이다. 방편을 생각하라 각자 생활 속에 침투한 스티커 껄떡쇠들이니 그렇다. 탈들에겐 두려움이나 털들에겐 장난이고 노는 것이다. 일단 알로고 신고하라! 이젠 경팔이나 사람들이 알만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거까저 오기가 그렇게 그토록 힘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밤이 찢겨져 나가야 했는지..
다른 방펀이라면, 무시하고 차라리 여행을 가라! 기차 속에서 자라! 확실한 곳에서 자되 하루 이틀 대충 자도 대부분 괜찮다. 그러나 시스템화 된 곳이 많으니 그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결국 이렇게 경험하게 되는 디지털 세상이다. 세상이 지옥인 것이나 무시하는 수 밖에 없다. 음악을 듣고 여행을 가라. 강력한 단체에 들거나 강한 가정이거나 권력이 있는 가정이 있다. 강해야 사는 세상이다.
이 방편은 말하고 싶진 않지만, 차라리 디지털을 배워라. 디자털이 돼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인간 말종이 되고, 인생 막장이 된다.
자, 다시 돌아가서 살펴 보자.
하나의 꽁트를 가진 것을 프로그램이라 하고, 이야기를 가진 것을 스토리라 하며, 스토로가 이어지고 역할과 대역을 가진 것이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즉흥적이다. 그만큼 거짓말에 능숙하고 거짓깔에 강하다. 각본 대본 시나리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한다!'하면 그 멘트와 대사와 문장과 상황과 분위기와 스토리가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할은 눈치껏 자동 분배되나 해보겠다고 하면 그 역할을 맡는 것이고, 그 목소리로 출력하게 되면 그 자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그 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이만이도 이억도 김풍도 박단도 박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이들이 일당을 주어 보낸 디지털들이 대신하기도 한다.
디지탈들은 여기서 우왕좌왕하게 되며 구별과 분별력 없이는 그 스토리에 말려들게 된다. 말려들게 되면 말려 버린다. 사람이 말라 간다. 입이 타고 심장이 타들어 간다. 뜨거운 지옥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두려움에 떨게 되고, 모든 상처를 입는다. 하소연이나 호소할 곳도 받아줄 사람도 없다. 하자니 막연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경우가 많아서 돈을 뜯기고, 강간을 당하고, 자살을 하게 되고, 사람을 죽이게 되고, 일을 스르치기도 하고, 결근을 하게 되고, 아프게 되고, 화를 내게 되는 등 한 개인의 삶이 부서지고 엉망이 된다. 이것이 디지탈이 겪는 현실이다.
디지털들은 거짓말로만 거짓깔로만이다. 하나의 꽁트를 가진 것을 프로그램이라 하고, 이야기를 가진 것을 스토리라 하며, 스토로가 이어지고 역할과 대역을 가진 것이 시나리오이다. 구러나 이것들은 즉흥적이다. 그만큼 거짓말에 능숙하고 거짓깔에 강하다. 각본 대본 시나리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한다!'하면 그 멘트와 대사와 문장과 상황과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할은 자동 분배되나 해보겠다고 하면 그 역할을 맡는 것이고, 그 목소리로 출력하게 되면 그 자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그 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이만이도 이억도 김풍도 박단도 박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이들이 보낸 디지털들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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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결 탁
국방 공안 경찰 검찰 법원 국회 공공 정부 국가 기관 할 것 없이 별마다 장급마다 자리의 요소마다 실무마다 청탁에 의한 결탁이 이루어졌다. 이누리 봐주기식 일처리는 교묘했고, 그들의 위시는 하늘을 찔렀다. 다른 내용이지만, 운전시 낮에도 헤트라이트를 켠 채 달리는 위시는 꼴보기에도 멋쩍다. 그것을 국만의 반 이상이 그러고 있다. 어린아이들처럼 떼거지로 도심 도로마다 낮에도 눈에 불을 켠 채 다닌다.
제 12 장 결에 부쳐
D와 D의 전쟁이었다.
더미와 디지털.. 가난한 국민들이다.
그들이 이용하는 하위 계급인 것이다.
더미는 일반 백성이다. 누구나 될 수 있다.
디지털.. 졸, 이들도 역시 누구나다.
이들이 가해자이고 계몽과 개혁의 대상이지만
이들이 피해자와 함께 애환에 중심에 서 있다.
그들은 초딩이고! 중딩이고! 고딩이고!..
내 아들들이고 내 딸들이다.
조직도 정치가도 대기업도 대통들도
국가 정부기관 수장들이 그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와 왜 쌔워야 하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인 급한 사리사욕 때문에?
시기와 질투 때문에?
재물밥 때문에?
권위와 위시 때문에?
교만을 채우기 위하여?
알량한 돈 때문에?
조직 체계 때문에?
악한 마음 때문에?
이 모든 사람들이 이 모두인 것 같다.
그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이제 졸과 더미들이 울부짖고 있다!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뭐 먹을 게 있다고..!
서로 가난한 줄 알면서..
그들까지 그들의 이해를 내놨었다.
왜 다시 우리가 우리를 갉아먹는 것이냐.
가만히 지켜보는 자들이 무서운 것이다.
그들은 뺏어 먹는 게 아니라
내 자체를 먹으려고 한다는 것을..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졸이 더미이고, 더미가 결국 졸이 된다.
이누리가 그렇게 만든다.
그리고 이누리도 deWar를 겪는다.
그들도 착한 쪽과 나쁜 쪽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선과 악의 씨움이다.
이렇게..
지옥을 면하려면
모두 착해지는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은 쉽다.
디지털과 이누리를
내려 놓으면 되는 것을..
우리 모두!
대한민국이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이 있다.
그깃은...
이누리는 이누리고
디지털은 디지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조심해야 할 대상은
악하기만 한 싸이코들이다.
처벌은 처벌이고 습관과 버릇과 그 악함은
그 사람에게 달려 있으므로.
그러나 두려움과 억눌림은 법도 사랑으로 대할 것이다.
이누리와 디지털이 해결됐을 때
걱정인 것은
민생 범죄가 늘어날 것이머
일반 범죄들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비인간적인 사건들과 이누리와와 관계된 많은 희생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려하고 있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고 문제다!
[ 프롤로그 ]
이누리는 민심당에도 있고, 함께당에도 있다. 같은 이누리다. 그런데 이누리가 거짓깔 부대 디지털로 이 나라를 좀먹고 있고,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고 있다.
이누리 수뇌부를 제외하고는 돈과 자리와 권위와 청탁에 눈이 먼 자들이 이들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백성들을 잡고 잡들이를 하고 있다 . 인육을 먹는다는 것으로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도 그렇고, 더미이자 재물밥을 강제로 만들어 놓고 그 피해자인 박단을 북송해서 십자가에 메단다는 것도 그렇고 북한에 관계된 말들이 떠다니고 있다.
이누리의 대국민침투 방법 또한 그렇다. 북한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누리 조직과 그 체계와 그 아래 극성분자들이다. 우리 백성이기도 한 그들이 북한 조직의 일원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누리의 실질적인 회원이 백만을 넘었지만, 진짜 이누리는 수천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극성분자들까지 수천에 불과하지만 이들도 다시 회귀되고 있다. 이들까지 제외한다면 그들은 수십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누리의 디지털 교육은 계속되고 있고, 지옥의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이것은 Dummy와 Digital 과의 전쟁을 넘어선 국가의 운명이 달린 문제다! 이것은 Department 와 Digital 과의 싸움으로 번질 것이다. 나라는 대한민국 부대에 거짓깔부대를 창설한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수많은 거짓깔을 부대에도 둘 것인가! 그 거짓깔은 어디서 배울 것인가! 거짓깔 부대를 키우는데는 이누리 밖에 더 있는가.
디지털을 상대할 원천가술을 가지고 있는 경찰부대를 만들어야 될 것이다. 나라와 나라의 싸움으로 같은 거짓깔부대를 만들 것이냐. 디지털은 경찰이 때려잡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정치는 왜 경찰력을 축소하였는가! 그 장비들은 왜 낡아빠졌는가! 경찰이 디지털들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원과 장비와 교육이 문제다. 그리고 디지털을 어디서 교육이 이루어졌고, 누구한테서 배웠는가! 이누리다!! 국가기관 정부기관에도 이누리와 디지털이 많다.
그러나 북한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백성들이 디지털이 되고 있다! 북한 주민이 되고 있다! 나라는 공산화가 되고 있다. 북한이 되고 있다! 그리고 내부로 침투하여 함께당이나 민심당의 분열을 조장하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지만 국회의원들 중 이누리가 많고, 디지털을 거느리는 자들이 많다. 국민 생활의 전면전이다!!!
초등생 디지털들이 울부짖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아냐고!! 이를 어쩔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