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처럼 환하게 웃는 언니
사진 속의 언니는 윙크를 하며 이가 보이게 활짝 웃고 있다. 개구진 브이자 손 모양 내 앞을 가로막으며 쭉 뻗은 팔. 팔자 모양의 발 모양. 붉은 카라 있는 원피스 차림. 사방으로 뻗친 곱슬머리. 그 옆에 어깨를 움츠리고 웃는지도 모르게 처진 입꼬리. 남자아이 같은 셔츠와 흰 반바지. 옷과 어울리지 않는 나비 모양 샌들. 우리는 이렇게 달랐다.
염원하던 반장이 된 날. 언니는 친구들을 몰고 대문을 들어섰다. 재잘거리던 언니의 친구들. 언니는 백 점 시험지를 들고 있을 때보다 당당해 보였다. 쭈볏쭈볏 남자애들도 대문밖에 보였다. 엄마가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엄마는 언니에게 늘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백점 짜리 시험지를 두고두고 자랑스러워했다. 반면 나는 칠십 점 언저리의 시험지를 접어서 몰래 공책 사이에 끼워 넣고는 했다. 언니는 늘 누구 앞에서건 당당했고. 나는 누구 앞에서 건 수줍어했다. 한 반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 오면 그 친구는 끝내 언니와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리코더를 불거나 우스꽝스러운 언니의 농담에 웃다가곤 했다. 누구 앞에서 건 부끄러움이 많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언니가 부러웠다.
그렇지만 언니와 내가 싸우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번번이 언니를 울렸다. 지고선 못 사는 언니가 약이 바짝 올라 엄마에게 이르는 날이면 나는 안 그런 척했다. 엄마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언니는 약이 올라 소심한 복수를 하곤 했다. 샤워하는데 불 끄기. 화장실 문 막고 버티기. 내가 좋아하는 반찬 다 먹어버리기. 친구와 놀다 들어온 날, 현관문 안 열어주기.
그럴 때마다 나는 태연하게 행동했고 언니는 더 약이 올라 씩씩대다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언니를 약 올리는데 천부적인 나는 간혹 언니가 얄미우면 살살 약을 올렸다. 공부도 잘하고 반에서 인기도 많은 언니. 생일파티를 할 때면 열댓 명씩 찾아오는 친구들. 모든 게 나와 반대였다.
언니의 텃밭에 고추가 상추가 가지가 옥수수가 무성하게 자라난 사진이 톡으로 왔다. 텃밭은 오밀조밀하게 가꿔져 있었다. 작년에 심은 조팝나무가 울타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언니의 텃밭은 자로 잰 듯 가지런하다.
앵두가 가지에 늘어지게 달렸다며, 이번에 오면 앵두를 따서 앵두청을 담글거냐고 연락이 왔다. 온 김에 상추도 가져가고 아욱도 가져가라고. 시골 사람이 다 된 언니. 시골에 집을 짓고 거실에 앉아 떴다 풀렀다 뜨개질을 하는 언니. 아직도 눈웃음을 치고 여덟 살처럼 환하게 웃는 언니. 나를 살린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