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어쩌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차분히 묻고 대답을 듣고 싶었다. 다소 무책임한 소리를 해도 화내지 않고 들을 생각이었다. 집주인의 의중에 따라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의 순서와 내용이 바뀔 것이므로 일단은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한 번 더 했다. 역시 받지 않는다.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다.
이런 거짓말쟁이!
해결한다며! 책임감을 느낀다며...
말이나 말지, 왜 착한 척을 한 거야. 사기꾼 같으니라고.
‘집주인의 해결 의지’에 대한 기대는 깨끗이 지웠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나는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정보를 모았다. 구청에서 하는 무료 법률 상담도 예약하고 법원에 전화도 했다.
무언가를 할수록 자꾸 스스로를 탓하게 됐다. 나는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고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는 집을 덜컥 계약했다. 건물 시세에 비해 이 정도 근저당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집주인이 이것 말고 다른 건물도 많은 사람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중개인의 말을 믿었다. 이런 멍청이.
오래된 건물이라 여기저기 삐그덕 거린다. 화장실 세면대에 연결된 밸브에서 물이 샜다. 타일 바닥으로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밤새 들린다. 건물 관리인에게 전화해 수리를 요청했다. 관리인이 밸브를 갈아 끼우는 동안 몇 마디를 나누었다.
‘경매 건이 해결이 잘 될까요?’
관리인은 ‘지금 주인이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 말고도 저기 빌라도 있고, 뭐, 여러 개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말로는 그 여러 개 가진 건물이 전부 경매에 넘어갔다고 한다. 수시로 집주인(의 남편)과 연락을 한다는 관리인은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건물이 많으니 해결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관리인도 한패라고 여겨졌다. 부동산 중개인도 한 패인 것 같다. 모두가 밉다. 모두에게 화가 난다.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속절없이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