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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May 27. 2022

Prologue

연재소설

   지난봄 어느 날. 나는 인천공항 터미널에서 여행 일정을 구상하며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아내와 함께 해외 유학 중인 손주를 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비행기 시간이 여유로웠다.    

 

  언제나 그렇듯 공항은 설렘으로 일렁였다. 저마다 세련된 옷차림에 각양각색의 선글라스를 눌러쓰고, 묵직한 여행용 가방을 애완견처럼 달고 다녔다. 평소 그리던 곳을 찾아 나선 길이니 한껏 부풀어 있으리라.    

 

  내가 젊었을 때는 해외여행이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외국 바람 한 번 안 쐐 본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됐다. 한때는 떼 지어 다니는 일본인 해외 관광객을 손가락 빨며 부러워했던 우리가 해외 단체 관광 다녀온 게 별 자랑거리가 못되니 격세지감이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일상처럼 여기는 시대가 됐고 황금연휴 비행기표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이렇듯 폭증하는 여행수요에 힘입어 인천공항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ASQ)에서 12년 연속 세계 최고 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항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의 자존심이 된 지 오래다.          

  한데 나는 여전히 인천공항이 좀 낯설었다. 아내도 김포공항은 친근감이 드는데, 인천공항은 어쩐지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 같은 느낌이란다. 소위 ‘꼰대’ 티를 못 벗은 탓인가.


  아내가 북적이는 인파에 시선을 흘리며 감회 어린 듯 말했다.

  “공항에 나와 앉아 있자니 젊은 시절 당신 사우디 갈 때 생각이 나네요. 이역만리 낯선 땅에 남편을 보내며, 아낙네들이 눈물깨나 흘렸지요.”         

  그날로부터 40여 년 전 얘기였다.

  김포공항 국제선 대기실에서 기대 반 걱정 반, 착잡한 심정으로 난생처음 탈 비행기를 기다리던 사우디 파견 근로자들. 가마솥더위와 맞짱 떠 가난을 벗어던지겠다고 나선 산업 전사들이었다. 거의 반세기 가까이 된 일이지만, 지금도 녹화영상을 보듯 내 기억에 생생했다.   




  K건설 작업복을 걸친 수많은 근로자와 배웅 나온 가족 친지들로 대기실은 시끌벅적했다. 그 시절에는 누가 외국에 간다면 배웅하는 사람들이 주렁주렁 달렸었다. 출국 대기실은 활기찼지만, 그 속에는 긴장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근로자들과 가족들이 주고받는 농담 속에서도 그들 앞에 놓인 가혹한 현실이 엿보였다. 

    

  “중도 귀국 하마 왕복 비행기 요금 물린다 캤제? 모래벌판 구경값 한번 뻑쎄잖노.”

  “야, 어데 비행기 요금뿐이가? 그동안 이래저래 퍼질른 돈이 얼마고? 빤쓰까지 벗는 거나 다름없제.”

  “그란디 어떤 놈이 중도 귀국을 할라카나?”

  “짜슥아, 누가 그라고 싶어 그라냐. 여름에 30도만 넘어도 헉헉대제. 거개는 거반 50도라지 않노, 50도!”

  그 옆 근로자가 끼어들었다.

  “그런 찜통더위에 삽질하고 망치질하는기 인간이 할 짓이가? 그것도 허구한 날 그렇게 해봐라카이. 사람이 견딜 노릇이냐고.”

  “아무리 힘들어도 참아 내야제. 좆대가리 힘 있을 때 벌지 못하마 평생 이 모양 이 꼴로 넘에 집살이 면치 못하는기라. 뒈지더라도 거개서 뒈져야 해.”

  그중 노숙해 보이는 근로자의 말이었다.

  “설마 생사람이 바비큐야 되겠노.”

  처음 말을 꺼냈던 근로자가 입을 앙다물었다.    

       

    아내쪽 근로자들은 또 다른 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있었다.

  “그기 여자 치마 한 번 들췄다가는 모가지라 했지비?”

  “이런 미친놈. 어디 감히 여자 얘기를. 모가지보다 먼저 꽂을대부터 뽑아 버리제.”

  “갸는 마눌한테 맡겨놓고 가야제. 그기서 쓸 일이 있남. 아까운 물이 질질 샐 텐디.”

  “그렁게 무슨 재미로 산당까, 하룻밤에 열 번도 모자랄 거구먼.”

  “어허, 내 청춘 모래밭에 묻었다 생각하라니께.”  




    K건설 깃발이 높이 세워진 임시 연단 위로 총무부장이 올라왔다. 사원과 대리급들의 지휘를 받으며 주눅 든 근로자들은, 부장이 마이크를 잡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산업 전사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어려운 전투에 나섰습니다. 5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에서 공사 일을 하겠다니···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이 난공불락의 사막 공사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오는 것일까요. 이유는 단지 하나. 우리네 살림살이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어릴 때는 풀뿌리 나무껍질을 씹고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며 자랐습니다. 가난은 곧 공포였죠.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몸부림이 여러분을 여기에 서게 했다고 믿습니다.      

  내 나라에서는 일하려 해도 일거리가 없지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생활의 반복입니다. 찌든 살림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대대로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가난의 사슬을 끊기 위해 일거리만 있으면 지옥까지도 따라가겠다는 게 여러분의 각오입니다.   

  

  산업 전사 여러분!

  도전하는 자에게 중동은 기회의 땅입니다. 중동에는 일거리가 지천으로 널렸으니까요. 얼마든지 일하고 돈 벌 수 있어요. 몇 년만 썩으면 전세금 마련해 피 같은 돈 사글세로 새 나가지 않고, 더 독하게 마음먹으면 꿈같은 내 집도 마련할 수 있어요.     

  또한, 여러분의 피땀 어린 돈으로 자녀들은 마음 놓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지요. 그렇게 공부한 자녀들이 커서 어떻게 될까요? 내 자식이라고 의사 되지 말고, 판검사 되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내 자식이라고 국회의원, 장관 되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중동에서는 누구나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잠잠하던 대열이 술렁대고,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아,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인생 역전시킵시다, 인생 역전! 우리도 한번 잘살아 봅시다!”

  너도나도 애들처럼 신바람이 났다.

  “의사, 판검사 아들 좋지요!”

  “국회의원, 장관 아들 좋고 말고요!”       

  총무부장이 주위를 진정시키고 한층 목청을 높였다.

  “여러분! 각오를 새롭게 하는 의미에서 다 같이 작업 구호를 외쳐봅시다. 내가 선창, 여러분이 복창, 큰소리로 할 수 있죠?!”

  ‘네!!!’ 근로자들의 함성이 천둥 치듯 울렸다.

  총무부장 ; “가마솥더위 속에 우리의 꿈이 있다!”

  근로자들 ; “가마솥더위 속에 우리의 꿈이 있다!”           

  총무부장 ;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한다!”

  근로자들 ;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한다!”

  총무부장 ; “중도 귀국은 곧 죽음이다.!”

  근로자들 ; “중도 귀국은 곧 죽음이다!”  

  목소리 작은 사람은 행여 안 보내 줄세라, 구호 소리가 공항 대기실을 흔들었다.



                                                      

  그 시절의 김포공항과 지난봄 우리 부부가 본 인천공항이 어떻게 같은 나라 국제공항이란 말인가.

  가난 때문에 감내해야 했던 가족 간의 생이별은 역사가 됐고, 비록 머리는 가마솥더위보다 무서운 세월을 이기지 못해 백발이 됐지만, 우리 부부는 해외 유학 중인 손주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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