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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Jun 20. 2022

셋방살이 설움

연재소설

  야간작업까지 끝낸 근로자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를 찾아들었다. 각자 머리맡에 놓여있는 가족사진이 말없이 그들을 맞았다. 


  “또 하루 죽였네.”

  방현우가 성큼성큼 벽에 붙어 있는 달력으로 다가갔다. 벽에 걸린 한 장 짜리 12개월 달력엔 7월 1일부터 20일까지 가위표가 그어져 있었다. 

  “에헤야 디야! 니 고생 많았다. 잘 가그라잉!”

  그가 21일을 큼직한 X로 덮었다. 지켜보던 근로자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아직 344개의 X가 더 필요했지만, 오늘도 하나를 추가했다는 성취감은 피로를 잊게 했다.   

  

  “산업 전사들이여!”

  방현우가 달력을 등지고 선생처럼 무게를 잡고 말했다.

  “그대들은 멋 땜시 이 먼 더운 나라까지 와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능교?”

  “뭐 하라 오긴 뭐 하라 오노? 돈 벌러 왔재.”

  생활고로 아내가 가출했다는 윤창식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돈 벌어 장가들려고 왔지비. 부랄 두 쪽만 보고 올 여자가 있어야제.” 

  32살 노총각 한 씨가 말했다. 그는 사막 모래에서 결혼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나 사람답게 살려고 왔소. 그놈의 셋방살이, 사람이 사람 꼴이 아니야.” 

  필성은 전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뻔뻔한 영감탱이의 비위를 맞추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서글펐다.

  “장개들라니께, 셋방살이 면할라니께. 그런 거지유? 아닌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 봐유.”

  “손은 무슨 손을 드남. 모래 밥 먹으러 온 사람들 사정이 다 거기서 거기지.”

  설경찬이 다친 손가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는 결혼한 지 한 달, 꿀맛 같은 신혼기에 이곳에 왔다고 한다. 캠프 공사 때부터 일해 다른 사람들보다 한 달 선배였기에 K숙소 방장을 맡고 있었다. 

  “빌어먹을 셋방살이! 죽어라고 벌면 뭐 해. 그놈의 전세금 따라잡기 바쁘지.”

  “그렁게 말이여. 애가 달렸으면 방도 안 주잖여. 지들은 새끼도 안 키우는지.”   

  “시 사는 사람은 뒷방 쪽문으로 드나드는데 말이여.”

  너도나도 셋방살이에 대한 설움을 넋두리 했다.

  “하느님 위에 집주인이 있는 거야.”

  k숙소에서 제일 나이 많은 봉수한이 노숙하게 말했다.      


  셋방살이. 그것은 그들이 어릴 적부터 시달렸으며, 앞으로도 평생 삶을 옥죄어 올지도 모르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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