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안 하고 싶다.
전남편을 아직 사랑하거나 그리워하는 감정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남편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렵다.
마치,
나를 싫어하는 직장 상사에게 보고 해야 하는 일처럼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픈 일이다.
마치,
교무실에 불려 가는 학생마냥 마음매무새를 가다듬게 된다.
자주 연락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 10월에 한번,
올 2월에 한번,
3월에 한번,
5월에 한번,
8월에 한번.
그러니까 1년 동안 5번 연락이 고작이었다.
모두 아이의 면접 교섭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고작'인 것이다.
연락이 고작 5번이 아니라, 면접 교섭이 고작 5번.
그마저도
8월엔 아이가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8월에는
몇 번을 고심하다 톡을 보냈다.
아이를 보러 와 주면 좋겠다고.
주로,
주말에는 당장 답이 안 올 테니,
평일 오후 시간에 보낸다.
배려라고 하면 배려이고,
사실은 답을 기다리는 내가 싫어서 이다.
답을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
빨리 아이와 만날 스케줄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먼저 아이에게 연락을 해 주면 좋으련만,
그런 법이 없다.
(내가 계속 나서서 만남의 날짜를 잡지는 않는다. 보통 아이가 전화를 먼저 하는 편.)
어렵사리 연락을 하고 나면
매의 눈으로 내가 보낸 조악한 문장들을 되짚어 본다.
내가 보낸 문장들에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은 없는지 따져 보는 것이다.
용건만 간단히.
감정은 빼고.
마침표도 꼭 찍어 보낸다.
진지하게.
그러다 오타나 너저분한 말들이 나오면
재빨리 삭제를 누르고 수정한다.
다행인 건
아직 1이 사라지지 않아 삭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대도 내가 삭제한 메시지에 대해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용건만 간단히.
그래서,
전남편, 전 부인과 편하게 연락하는 돌싱들이 부럽다.
그들이 마음이 있어서 편하게 연락하는 것은 아닐 터.
물론 그들의 마음도 마냥 편하지는 않을 터.
그래도
아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돌싱들이 있어서 부럽다.
그런 '상황'이 된다는 것이 부럽다.
아무튼,
돌싱은,
내 아이의 아빠에서 남의 아이의 아빠가 된,
전남편과 연락하는 일이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더 싫은 건,
이게 어려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