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도 그렇다.
8살에 나만의 내 방이 처음 생겼고,
29살에 우리의 공간이 생겼다가,
41살에 나만의 내 방을 다시 꿈꾼다.
8살부터 결혼 전까지 나는 내 방이 있었고, 원룸이지만 내 집이 있었다.
결혼하고는 내 방 네 방 할 것 없이 우리의 공간이었다.
아이가 태어났고 우리의 공간을 누렸다.
내 공간이 따로 필요할 일이 없었다.
모두 우리의 공간이었으므로.
어느 날 전남편은 자신만의 공간이 갖고 싶다고(그 방에서 자격증 공부를 할 예정이라며) 작은 방에 새 침대를 들였고, 밤이면 방문을 닫고 내 눈치 안 보고 1번과 카톡을 했다.
(내 방이야. 나 이렇게 각방 쓸 만큼 와이프랑 사이 안 좋아. 코스프레는 덤. 각방과 사이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1번은 알았을까.)
이혼을 했고,
아빠가 소풍 가셨고,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우리의 공간이지만,
각자의 공간이 아니라서
거실은 엄마의 침대가 있는 곳이라서
큰방은 아이가 자고 공부하는 곳이라서
작은방은 잡다한 짐을 쌓아놓은 창고처럼 쓰는 곳이라서
주방은 거실과 이어져 있고 주로 엄마가 누비는 곳이라서
나는 나만의 공간, 내 방이 갖고 싶다.
우리 집엔 나만의 아지트가 있다.
큰방에서 한평 남짓의 베란다로 통하는 미닫이 중문이 있는 곳이다.
이 미닫이 문이 살짝 높이 있어서, 문지방에 앉으면 베란다 창밖의 풍경을 고스란히 눈에 담아낼 수 있다.
우리집 앞에는 9차선이나 되는 큰 도로가 있다. 그 도로 양쪽은 각각 사거리로 매일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며 , 빨간불 초록불 신호등과 가로등이 밤을 밝혀 주어 야경이 끝내준다.
나는 이 아지트에 쪼그려 앉아 남몰래 울고, 남몰래 설레고, 남몰래 빗소리를 듣고, 남몰래 술을 홀짝였다.
1번 여자와 뒹구는 바람난 전남편의 옷을 빨랫대에 널다 문득 내 처지가 가여워 울고,
고생하는 딸내미 조금이라도 편해지라고 좁디좁은 베란다에 삐집고 들여놓은 건조기에 담긴 엄마 마음에 울고,
거실에서 아파 끙끙거리는 아빠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해 소리 죽여 울고,
부모의 이혼으로 전처럼 지낼 수 없음에 어찌할 줄 몰라 침대 위에서 주먹으로 매트리스를 치던 내 아이에게 미안해 밤을 꼬빡 새워 울었다.
이런 나라도 아낌없이 예뻐해 주던 그 언젠가의 그 사람 목소리에,
언제나 괜찮다며 충분히 잘하고 있다며 응원해 주던 그 마음에,
함께 저 골목 어딘가에 있는 곱창집에서 곱쏘를 하자던 그 약속에,
혼자 베란다 중문 문지방에 앉아 두 볼이 빨개졌고,
두근대는 심장아 나대지 말라며 남몰래 설레기도 했다.
빗소리 들으며 혼자 감상에 빠져 비 오는 야경을 찰칵찰칵 찍어댔고,
사락사락 함박눈 내리는 날에는 추운 줄도 모르고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기분이 좋아지는 날에는, 술이 빠질 수 없지!! 하며 엄마 몰래 와인을 따라 마시고, 캔맥을 따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나만의 아지트라는 자리가
사실 미닫이 문을 여닫는 문지방 위라서 옹삭 하기 그지없다.
말하자면 창틀인 곳이라, 올록볼록 홈이 파여있고, 무엇보다 좁다.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에 쥐가 난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방이 갖고 싶다.
아늑하고 편안한 곳.
오래 앉아 있어도 엉덩이에 쥐가 나지 않는 곳.
언젠가 내 방을 갖게 된다면...
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니까...
싱글 침대 하나, (이불은 내가 고른다! 맨날 엄마가 사주는 꽃무늬 이불 지겹다, 지겨워!)
침대 옆에 조그마한 협탁 하나, (자기 전에 읽을 책 한 권, 무드등 하나, 향기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디퓨져 하나, 우리 넷-아이, 나, 엄마, 강아지-사진 하나. 시계 하나. 분위기 있다! 근데 이게 조그마한 협탁으로 될까?)
책장 딸린 작은 책상 하나, (책장에는 내 책 한가득! 스탠드 켜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대학생이 된 것 마냥! 아 생각만 해도 신난다!!)
아, 화장대도 있어야겠다. (그런데 공간이 부족하다면 책장이나 협탁 한쪽을 화장대로 써도 된다. 코덕(코스메틱 덕후)도 아니고 기초 몇 개 있을 뿐이니까. 그런데 분명 아까 조그마한 협탁이라고 하지 않았어?)
벽면에는 내가 좋아하는 제주도 이호테우 해변 사진 하나,
가 본 적은 없지만 꼭 가보고 싶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야경 사진 하나.
가끔 생화도 어딘가에 툭.
지나온 삶만큼이나 미니멀리즘(?)한 돌싱의 방이다.
그런 나만의 방을, 오늘도 나는 꿈꾼다.
아무튼!
나만의 돌싱은!
언젠가 생길지 모르는 남자친구와 간질거리는 통화를 하고,
밤늦게 환한 불 켜고 책을 보고,
타다다다닥 들리는 타자 소리에 식구들 깨진 않나 조심하지 않아도 되고,
잠든 아이가 깨지는 않을까 맛깔나게 못 땄던 캔맥 뚜껑을 촥! 열어 젖힐 수 있고,
내 향기와 내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 나는,
나만의 방이 갖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부부의 방보다 더 나다운 나만의 방을 소유할 수 있기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튼, 돌싱은!
나다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