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 기행
김인주
대학 평생교육원 인문학반이 가을소풍을 간다.
조그만 중형버스에 탄 사람들 모두 점잖아 보인다.
나도 가끔 듣던 얘기인데, 남이 그러하니 적응이 안 되고 이상하다. 점잖은 사람이 점잖은 사람들의 단체를 만났다. 흔치 않은 상황이다.
나서는 사람도 없고 차내 마이크 잡는 사람도 없다.
수업시간에도 말들이 없고 쉬는 시간은 아예 없다.
이 이상하게 조용한 공부반의 여행에
나는 신입사원인 듯하다. 신입사원 소개 인사도 못했다. 눈치코치 주위 동정을 예의주시 할 뿐이다.
야유회 소풍인데 흔하고 편리한 등산복 입은 사람도 없다. 나는 빨간색 등산 재킷을 안 입고 오기 천만다행이다. 사실 더우면 갈아입으려고 얇은 빨간색 등산복을 가져왔다. 백팩에 숨겨져 있다. 더워도 참아야겠다. 나는 운동화 신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정장 구두를 신었다.
당진 쪽으로 가는데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는지 모른다. 카톡으로 여행안내 보냈는데 글씨가 작아서 안 봤다. 왜 교양 있는 사람들은 글씨를 작게 쓸까. 버스 안에서 누군가의 설명은 없다.
평상시처럼 마스크도 쓰고 있고 자세히 쳐다볼 수도 없어서 우리 일행인지도 잘 모르겠다.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버스를 잘못 탄 듯하다. 강의하시는 언제나 반듯하신 교수님만 졸졸 따라다녀야겠다.
나는 버스 좌석에 혼자 앉았다. 갑자기 요즘 살짝 재미가 붙은 글쓰기를 시작한다. 특별한 목적이 없는 글쓰기가 최소한 치매 예방이라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아직 이른데 점심 생각이 난다. 점심이 배는 안 부르고 맛만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버스 타자마자 창문 커튼을 연다. 밖의 풍경을 본다. 파노라마 영화다. 버스 기차 비행기 등을 타고 자는 법이 거의 없다. 바깥 풍경이 재미있다. 무엇을 타고 이동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시골에서 자라 버스를 많이 못타 봐서 그런지도 모른다. 역시 평생에 못한 것은 언젠가 다 하게 마련인 총량제의 법칙인 거 같다.
당진 주위에 산이 안 보인다. 얕은 언덕들만 있다.
강원도 비탈 출신인 나는 평지가 대부분인 것이 왠지 낯설지만 이색적인 풍경이다.
신리 천주교 성지에 도착했다. 헹해서 허전해서 많이 비워 있어서 아주 좋다. 가슴이 뻥 뚫린다. 시원한 바람이 지난다. 사람이 뜸해서 좋다.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사람 적은 곳을 찾다니 이율배반이다. 모순이다. 인생 자체가 늘 그렇다.
조용하던 사람들이 드디어 언어를 시작한다. 조금씩 조심스럽게 들뜨기 시작한다. 술렁이기 시작한다. 나도 말문이 서서히 트이기 시작한다. 아직은 별 의미 없는 말 수준이다. 하품이 옆사람 동조시키듯 묶였던 언어 실타래가 풀린다.
솔뫼 성지는 대단하다.
김대건신부는 여러 개 언어에 능통하고 다학다식한 분이었구나 한다. 나는 영어 하나만 40년 이상 공부하고 있는데 능통치 못하다. 그는 행동하고 실천한 진정한 종교인이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힘들다.
나도 아는 척 잘난 척하고 많은 말을 했는데 실천은커녕 말로써 남의 가슴을 후벼 팟을 일이 많았을 것이다. 세치 혀를 잘못 놀려 남의 가슴에 천추의 한을 남겼을지 모른다.
지옥에 안 가려면 많은 공덕을 쌓아야 되는데 큰일이다. 속죄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순교자들도 대단하다. 목숨을 걸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다니 그리고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나는 그렇게는 못한다. 네 번이라도 부인한다. 솔뫼성지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쪼그라든다.
점심은 우렁이박사 식당에서 우렁쌈밥이다. 우렁이가 든 된장 소스를 쌈에 싸서 먹는다. 좋아하는 쌈도 싱싱하고 충분히 주었다. 몸에 좋은 우렁이 쌈장을 많이 먹다 보니 밥은 거의 안 먹었다. 남자 넷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제 보니 말들을 잘한다. 더불어 이야기한다. 나도 말 못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별로 없다. 역시 밥 한 끼라도 같이 한다는 것은 연대감을 만들어 준다.
아미미술관으로 가는 길이다. 날씨는 흐려졌다.
흐리면 흐린 대로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땀나면 땀나는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우비 입고 우산 쓰자가 지혜이다. 지리산둘레길을 사시사철 걸으면서 얻은 교훈이다. 내 백팩 속에는 비장의 무기 접이식 우산이 들어 있다. 남들은 모르는 나 만의 비밀병기이다. 웬만해서 비를 안 맞는다. 초등학교 사 학년 때 홀로 비 맞은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버스에서 대학 때 뜻도 모르고 들었던 카사블랑카 올드팝송이 흘러나온다. 지금도 뜻도 모르고 듣고 있다. 대학 때가 마치 지난주 같다. 지난주 화요일에 대학 입학하고 목요일에 졸업하면서 회사에 입사했다. 지난주 주말 토요일쯤에 대전에 이사 왔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내일 수요일이면 68 아뿔싸 속도위반이다. 인생 얼마 남지 않았다. 왜 신은 시간 후진기어를 만들지 않았을까?
오는 세월은 천천히 시속 10킬로로 기어 왔으면 좋겠다. 말 잘 듣는 진돗개처럼 기다려하면 기다리기도 한다.
아미미술관은 폐교를 활용한 듯하다. 건물 안에 미술품들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회화보다 설치미술이 많이 전시됐다. 건물 주변이 숲과 나무 꽂들로 둘러 쌓여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최적이다.
본격적인 사진촬영 경쟁이 사방에서 시작되었다. 운동장에서 여성 일행들 네다섯 명이 제자리 뛰기를 반복하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애를 쓴다. 잠깐 허공에서 사지를 벌려 몸부림친다. 인간은 왜 날지 못할까.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으로 착각을 한다. 착각은 자유다. 사실 착각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펄쩍펄쩍 뛰어 뛴다. 순간 스냅사진을 찍으려는가 보다. 아무래도 버거워 보인다. 중력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음은 백팩 속의 우산은 심심하다. 펴보지도 못하고 귀가할 판이다. 그런데 사실 비가 왔어도 나를 위해 쓰지는 이팔청춘 16킬로그램이다. 처절한 날갯짓의 몸부림을 우연히 15미터쯤 근거리에서 목격하고 신기한 일도 있구나 했다.
신리성지 솔뫼성지 아미미술관은 다시 와야겠다.
마음에 쏙 든다. 버스에 탔다. 태양은 서쪽으로 하늘의 삼분의 이쯤 지나고 햇볕이 차창 안으로 들어온다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연약해 보이는 교수님에게 쓰였을 것이다.
남자의 손수건은 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것이다를 믿기 때문이다. 서양식 예절이다.
지금까지 보아 온 가장 규모가 큰 카페 로드 1950에 들어왔다. 당진시 식평면에 있고 서해대교가 보인다. 크기가 대단하다. 그런데 커피값도 대단하게 비싸다. 갯벌과 바다를 보는 관람료로 생각한다. 사방이 트였다.
흩어져 앉은 모든 사람들의 커피 주문과 셀프 배달을 두 분 회원이 대신하는데 힘들어 보였다. 돈봉투를 들고 다니는 붉은색 코트를 입은 분은 친절하고 날씬하고 열성적이었다.
또 한분은 안경 쓰고 내 사진도 찍어 주었는데 목소리가 아주 교양 있고 많이 공부한 듯하고 키도 컸다.
두 분 다 씩씩하게 봉사하는 모습이 멋졌다.
카페는 모두 만족한다. 이구동성으로 바다 경치에 감탄한다. 사람들이 좋은 배경에 너도나도 분주히 사진을 찍는다. 단편영화 한편씩 찍는다. 중년 모델 시니어 모델이 야외 촬영 나온듯하다. 문희 남정임 윤정희에 못지않다. 적어도 포즈와 배경은 그렇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가설극장 땅바닥에 앉아서 본 영화 속 눈이 크고 깊은 문희 누님은 아직도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일몰 보러 왜목마을로 서둘러 가기 위해 버스에 탔다. 버스 안에서 언제인지 들은 멜로디인가 하는 팝송이 들린다. 기사 아저씨의 배려 깊은 선곡이 기분을 좋게 한다. 그러나 꼬브랑 말 팝송 말고 한국의 70년대 80년대 가요도 듣고 싶다고 살짝 생각했다.
요즘 정훈희와 최백호 노래 가끔 듣는다.
두 사람 다 70 넘었다.
그동안 딱히 일몰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타의로 보러 간다. 얼마나 좋은지 살펴보자.
왜목마을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내리자마자 모래사장이 넓은 바다로 향한다. 거기는 동쪽인데 일출인데 반대로 가고 있다. 방향을 모른 체 무리만 따르는 아프리카 들소 떼와 다를 바 없다.
이에 정신줄을 놓지 않은 박 선생님과 나는 서쪽으로 방향을 과감히 돌렸다. 햇빛 밝은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섯 시 반이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봐야 한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뛰는 듯 걸으면서 언덕을 넘었다. 박 선생님은 걸음이 빨랐다 뒤도 안 돌아본다. 나는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헐떡대며 뒤쫓아간다.
그런데 아뿔싸 바다가 나타나려니 하고 언덕 하나를 넘었는데 논과 밭 나대지가 저 멀리까지 펼쳐 있다.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고생 끝에 낙은 없다. 서쪽 바다 붉은 지평선 너머로 장엄하게 사라지는 일몰은 없었다. 박 선생님은 약간만 실망한 듯 그러나 마치 종군기자처럼 덤프트럭이 오고 가는 도로를 건너 휴대폰 사진을 찍는다. 논두렁 밭두렁 너머 태양 나오는 걸로 두 장 찍었다
한참을 지나 만난 일행들은 사진 만이라도 두 장 건졌다고 막 좋아한다 그나마 박 선생님의 조직을 위한 투철한 사명감, 종군기자 정신으로 건져 올린 작품이다.
나는 목격자다. 태양은 내일 다시 떠오른다.
집으로 대전으로 가자 버스에 몸을 싣고 달려 가자
오늘 하루는 더없이 즐거운 여행이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같이 공유한 일행들 모두 멋졌다. 친절하게 보였다. 시간들도 칼 같이 지켰다. 수업만 열심히 듣는 줄 알았는데 즐길 줄도 안다.
모두가 행복한 모습이어서 나도 그렇다.
스스럼없이 대화도 나눴다.
역시 인생 자체가 여행이라고 믿고 사는 것이 맞다.
기사 아저씨 인상이 좋았다. 19명을 실은 중형버스는 가끔 드르럭 대고 오래돼 보였지만 정감이 가는 노란색 버스였다.
만추의 낭만과 추억을 안전하게 실어 날랐다.
오늘 하루 각자 주연 배우가 되었다.
연출기획 운영도 더없이 훌륭했다.
일당도 봉투에 받았다 잘 놀고 용돈도 받았다.
아침에 걷은 회비 남았다고 정확히 계산해서 각각 봉투에 넣어 모임도 아직 안 끝났는데 그렇게 빨리 돌려주는 단체는 몸에 털 나고 처음이다.
충대 정문 앞까지 안전하기를 바란다. 해피엔딩이 얼마 안 남았다. 오늘 보약보다 약발 있는 9천6 백보 걸었다. 뿌듯하다.
먹기도 잘 먹었다.
안전벨트가 아랫배를 조여 오고 있다.
(2022.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