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우리 역시.
매순간 늘 언제나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주제의 글들을 썼다. 그 주제가 가령 눈을 찌푸리게할만큼 직관적이고 비판적일지라도 그 생각을 하는 그 순간이 아니면 그 어떠한 글도 진심을 담아 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의 삶을 사랑하고 살아 숨쉬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들 앞에서 나의 감정을 속이고 삯힐 순 없기 때문이다.
이기적이지만 그렇게 쓰인 글들 중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아서 세상에 보여주지 못한 글들도 많았고 때로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이 돼서 잘 읽힌다고 하기도 했다.
결과가 어찌됐든 나는 내 삶에서 느끼는 핵심들을 글속에 담으려 한다.
많은 것들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특별함을 알아주길 바라고 생일을 챙겨주길 바라고 기쁜일 슬픈일이 있으면 그 누구보다 많은 이들에게 축하받고 또 위로받길 바라는 이기적인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좋아보이는 것들은 더 좋게 보이려 하고 슬픔 분노 증오 불쾌함 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한 감정은 숨기기 위해 더욱 깊고 우울한 지대로 추락됐다.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일종의 양극화 또는 분열증에 심하게 걸려 있다. 이상과 현실이라고 치환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그러한 양극화 속에서 오랫동안 헤매었다.
내 삶에는 그 어떠한 화려함이나 우월감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데 내 주위 지인들 건너 아는 사람들의 sns에는 재벌3세에서나 들을 법한 화려한 이미지들로 치장 돼 있다. 우린 이러한 ‘환각’에 노출되어 이상과 현실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병에 시달리게 됐다.
내 삶에, 내 인생에 나를 신경 써주고 챙겨주고 걱정해주고 늘 안부를 물어봐주는 이들은 한손가락에 꼽을 정도인데 이상히리만큼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쓰여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종종 연락이 올 때면 ” 아 또 무슨 특별한 일이 있나, 부탁이 있나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이젠 스트레스를 떠나서 환멸이 날 지경이다.
찰나의 순간을 붙잡고 싶어하는 이 모든 감정들은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분열증에서 파생된다. 분열증의 특징은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일종의 환각마약 같은 기분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sns가 발달되고 온갖 화려하고 치장된것들로부터 많은 자극과 도파민에 중독 돼 있다. 스스로가 그런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은 환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생일 때가 되면 축하 문자와 받은 기프티콘, 명품 로고가 새겨진 선물들, 가족,지인들에게 받은 용돈을 sns스토리에 하루종일 전념하느라 정신이 없다.
평소 몇 년 연락도 안 하던 친구에게 결혼한다고 연락이 온다. 남들만큼 화려하고 멋있고 많은 지인들을 불러야만 나의 기가 살 거 같으니까. 그래도 오래 알고 지낸 친구니까 너 생각해서 연락 했어, 너 신경 써주고 싶어서 등등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들만 붙혀 복사넣기를 한다.
타인에게 잘 보여야하고 나의 결혼식은 화려해야 비교당하지 않고, 나의 생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아야하고 sns에 잘 나온 사진들만을 편집하여 올려야 인생이 멋있어보이고 정말 모든 순간을 그런 화려한 삶으로 치장하고, 영위할 수 있을 거 같고. 이런 모든 플라스틱같은 감정들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미지’이자 ‘허상’일 뿐이다.
언젠간 플라스틱은 썩고 문들어져 우리 감정의 깊은 골을 갉아먹을 것이 틀림 없다.
삶의 대부분은 무미건조한 회색 권태로 둘러 쌓여 있다. 이런 건조한 일상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행복이란 결코 대중들과 타인들 sns 블로그가 만들어낸 기준들에 입각한 소비를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절대 행복한 소비라고 할 수 없으며 몇백번의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사진 몇 컷을 제외하고 삭제된 사진함으로 들어가버린 그 사진들처럼 sns에 업로드 하고 나면 바로 여운은 끝나버리는 감정은 그저 다 마신 플라스틱 페트병과 그리 다를 바 없다.
플라스틱같은 소비 사회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 라는 책에서 현대사회를 소비사회 라고 규정했다. 자기가 소비하는 물품을 자기와 동일시하며 자신의 개성을 표출한드는 의미이다. 책이 출간 됐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자면 분명 맞는말이 틀림없지만 현대 사회는 경제 성장의 쾌거를 달성한 이후 개인의 소득도 상승된 이시점에 그 어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명품에 닿을 수 있는 소비 체계와 성향이 마련되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인 자극= 이상’을 누리기 그리 어렵진 않은 시대이다. 개인의 관점입각한 소비보단 sns의 정보과열로 인하여 ‘좋아보이는 것 남들이 다 사는 것 유행하는 것 뜨는 것 ’이 취향이 돼 소비되는 문화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욜로와 잘나가는 카페사장이다. 자신에게 맞는 합당한 자극을 주입 받은 후엔 더 이상 그 공간 그 장소를 갈 필요가 없어지니 당연히 감성카페들은 더 자극적이고 높은 금액을 투자해 공간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비단 부자의 이야기만이 아니더라도 특급호텔에서 하룻밤, 해외여행, 명품, 오마카세와 같은 과시의 성향을 띄는 아이템 하나 정도는 누리려는 성향이 짙다. 비롯하여 삶의 질이라는 것은 단순히 절대적인 개인의 성향만을 두고 평가하는 것이 아닌 상대적박탈감도 함께 수반된다는 인식이 퍼졌다. 단순히 나의 목표와 꿈만을 갖고 삶의 질을 파악하기엔 세상은 다양한 정보와 다양한 직업군이 섞여 있는 또 하나의 우주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9시-6시까지 근무하고 월 소득 300만원이지만 어디 핫플 카페 사장은 12시간 근무하고 한달에 1000만원의 마진을 가져간다. 대표적으로 서울 중산층 청년들은 습관처럼 틈만 나면 카페나 차릴까 하는 말버릇 역시 뭐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조금 더 극잔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단순히 안정적인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승진해서 안정적인 강남, 잠실의 좋은 아파트에 거주하며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리기 보단 더 구체적인 격이 다른 행복이 존재하는 상태를 꿈 꾸는 ‘이미지’.
더 확실하게 짚어보자면 나혼자산다와 같은 최상위 소득자에 삶을 일반인들에게 노출시키느 미디어의 흐름도 한몫한다. 화려한 파티 같은 삶. 혹은 벽난로를 켜고 턴테이블 쳇 베이커의 엘피를 듣는 평온한 삶을 지향하게 됐던 건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는 모두 과시라는 결핍에 잠식되어 생긴 문제이며 문제는 모두가 ‘상향평준화된 이미지’를 각자가 그리는 그림대로 확고히 품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미지’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환각을 주입되며 우리는 당연하게 그 이미지에 ‘도달 가능하다’고 속삭이는 사회적 성향이 우리도 알게모르게 동기 되어 있음을 스스로가 인지하고 꺠어야 있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오늘 8월8일은 입추입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라고 기재 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가을은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일 때 쯔음으로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짓고 다음해를 기약하는 중요한 시기이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더욱 깊은 가을을 향하는만큼 충분히 익어서 겸손히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인품이 잘 배양된 한해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