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라는 이름이 족쇄가 되었을 때

‘쉬는 청년’이라는 자화상 뒤에 숨겨진 어느 서른 후반의 처절한 분투기

by 석대

최근 뉴스에서는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그저 ‘쉬고 있는 청년’이 역대 최다라는 소식이 연일 들려온다. ‘쉬는 청년들’이라는 표현은 이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넘어, 이 시대를 상징하는 서글픈 자화상이 되었다. 세상은 그들을 향해 ‘백수’라는 차가운 꼬리표를 붙이며 노력 부족이나 의지 결핍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감히 누가 그들의 삶을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 침묵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쉰다’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처절한 분투가 숨어 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 침묵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서른 후반. 무엇을 분명히 이뤘다고 말하기도, 그렇다고 새롭게 시작하기에도 애매한 나이가 되어 있었다. 한때 나는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 하나로 사업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사업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내가 걸 수 있는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호칭은 자부심이 아니라 버거운 족쇄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업가라고 불리는 것이 쪽팔렸다.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분명 얻은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경험이 얕았던 나에게 현실의 벽은 그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무거웠다. 내일의 수입을 걱정하기 전에, 오늘의 자괴감을 견디는 일이 더 시급했다. 결과는 없는데 호칭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나의 꿈은 어느 순간 멈춰 서 있었다.

나는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 ‘완벽한 준비’라는 말 뒤로 숨어버렸다. 남들에게는 치열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비겁한 도피에 가까웠다.

사업을 접은 뒤, 이전의 경험을 내세워 회사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반복되는 탈락 통보뿐이었다. 거절 자체보다 더 힘들었던 건, 그 순간마다 나 자신을 가장 먼저 깎아내리던 내 안의 시선이었다. 세상의 문전박대보다 더 무서운 것은, 거절당한 나를 가장 먼저 버리는 나 자신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실패가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실패한 나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 것일까.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질문 앞에서, 당시의 나는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믿어버렸다. 연이은 실패가 나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는 긍정보다는 자기 비하와 남 탓에 익숙해져 있었다. 환경 탓, 상황 탓을 하며 회복보다는 무너짐에 머물렀고,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들을 체념처럼 받아들였다.

캄캄한 길 위에 멈춰 서 있던 나는 과거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저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후회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거에는 내가 보지 못했던 미래가 숨어 있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가능성마저, 후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문제는 환경도, 의지도 아니었다. 내 삶을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이미 고장 나 있었다. 나는 비로소 내 삶을 하나의 시스템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느끼는 공허함과 무너짐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지금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나를 지탱할 수 없다”는 내면의 가장 정직한 신호라는 것을.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다시 설계하라는 알람이었다.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은 거창한 결심이나 완벽한 계획을 세웠을 때가 아니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비장한 다짐도 아니었다. 하루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아주 단순한 하루를 무사히 끝냈을 때였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라, ‘오늘을 버텼다’는 사실 하나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들이 정해놓은 속도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더 강해지겠다는 다짐 대신,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삶의 구조를 점검하는 쪽을 택했다. 완벽한 회복이 아니라, 조용하지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계속 가는 것. 나는 이 과정을 ‘조용한 계속’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선택 이후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천천히 기록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