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싫어진 지 네 달째, 이른 장마가 시작됐다. 베란다 창문을 서둘러 닫고 방금 넌 빨래를 걷어 건조기에 넣었다.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아차 싶어 빨래를 헤집는다. 그 속에서 지희가 아끼는 브랜드 티셔츠를 찾아 들었다. 예전에 같은 브랜드 옷을 건조기에 돌렸다 옷이 작아져 지희에게 혼난 적이 있다. "십만 원도 훌쩍 넘는 옷이 뭐 그러냐"고 중얼댔더니, 지희는 "비싸니까 더 조심히 다뤄야지!"라며 성을 냈다. 딸래미 앞에선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게 엄마다. 그래도 비가 계속 올텐데, 이미 빨아버린 옷을 말릴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옷을 건조기에 다시 집어넣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죽기야 하겠어?
죽기야 하겠어? 순간 뇌리를 스친 그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급하게 건조기 문을 열고 티셔츠를 꺼냈다. 감히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소름끼쳐 젖은 옷을 붙잡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내가 그 마음으로 누구를 잃었는데. 죽을 수도 있다. 어깨에 내려 앉은 한 톨의 먼지에 깔려 죽을 수도 있는 거다. 나는 그걸 몰라서 지아를 붙잡지 못했다. 지아는 착한 딸이니까, 힘내서 살아달라는 엄마의 한 마디에 발길을 돌렸을지도 모르는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라는 안일한 판단이 지아를 죽음으로 몰았다. 내가, 지아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