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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리 Oct 02. 2024

11 쓸데없는 예습, 쓸모 있는 독서

유방암으로 인생역전 (11)

   3,630,000원짜리 맘마프린트 유전자 검사를 신청한 것이 9월 22일이었고 결과를 듣는 날은 10월 11로 잡혔다. 20일도 안 되는 기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미련이 남지 않는 대화를 하고 진료실을 나오려면 예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으므로 이번에도 예습을 하려고 시도도 하고 노력도 했다. 잘 되지 않았던 것은 암선배들의 무서운 후기들 영향이 크다. 많은 사례글을 읽어보았지만 나처럼 조직분화도 등급이 3인 경우에 맘마프린트 검사로 항암을 패스한 경우는 찾을 수 없었다. 아~ 항암을 준비해야 하나 보다, 하는 마음으로 항암 관련 사례글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 겁부터 났다. 할만하네요, 하는 글은 찾아보기 힘들고 상상할 수 있는 부작용부터 상상해보지 못한 부작용까지 다양한 증상들을 호소하는 글 천지였다. 읽을수록 두려움이 몰려왔다. 


  두려움. 이것은 피해야 한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공부한 바를 떠올려보자면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로 구성된다. 눈앞에 멧돼지가 나타났다거나 하는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교감신경계가 항진되어 생존하기에 최적의 몸이 되게 한다. 위급한 상황이므로 싸우거나 도망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근육에는 혈액을 보내고 다음 세 가지 기능은 약화시킨다. 소화, 면역, 생식. 일단은 살고 봐야 하기 때문에 잠깐 접어두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두려움을 느끼면 내 뇌는 '멧돼지 상황'으로 인식한다. 멧돼지 아니야,라고 백날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 생각보다 똑똑하지 못한 뇌는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이미 교감신경 우위 상태로 내 몸을 만들어 버린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면역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니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예습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안 하는 것이 더 낫다. 이럴 때는 완치한 사람들의 수기를 읽는 것이 좋다. 어떤 사람들은 암을 만나도 완치되고 발병 전보다 훨씬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배울 점도 많고 희망과 확신이 생기면서 부교감신경계가 살아난다. 이때 내가 처음 읽은 책은 제인플랜트라는 과학자가 쓴 '여자가 우유를 끊어야 하는 이유'라는 책이었다. 그녀는 네 번이나 유방암이 재발한 상황에서 유방암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모든 유제품을 끊었다. 유제품과 목축 고기 안에 있는 성장인자가 암세포를 키운다는 것에 설득이 된 나도 바로 유제품을 끊었다. 수십 년 동안 매일 2잔씩 카페라테를 마시며 살았지만 라테를 먹고 암세포가 커지는 상상이 되자 쉽게 끊어졌다. 가끔 우유 느낌의 음료가 마시고 싶을 때는 코코넛밀크가 훌륭한 대용품이 되어 주었다. 


  두 번째 읽은 책은 '말기암 10년,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주마니아 지음)이었다. 저자는 신장암으로 3개월 여명을 선고받은 상황에서도 공부를 통해 사람의 몸이 가진 치유력을 믿고 자신에게 맞는 치유법을 찾아 노력한 끝에 지금은 훨씬 더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4기암이나 1기암이나 몸이 암세포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환경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설득되었다. '초기암이라고 해서 다행스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집에 잔불이 붙었으면 불이 작아서 다행이다,라고 하지 않고 얼른 인화성 물질을 치우고 화재 원인을 찾아 치우려고 하지 않겠는가.'라는 저자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암경험자들의 몸은 '고혈당, 저산소, 저체온'이 특징이다. 내 생활습관과 생각습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고혈당, 저산소, 저체온을 불러오는 습관들이 가득하였다. 어떻게 바꿔가고 있는지는 하나씩 천천히 말씀드리겠다. 


  암이 가벼운 병이 아니지만, 넘을 수 없는 벽도 아니구나!를 알게 해 주는 독서였다. 암을 경험하고 있는 모든 이웃들이여! 이런 이야기를 읽자. 뭐가 좋다더라, 하는 단편적인 정보들에는 없는 희망의 기운과 확신을 얻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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