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과 유리코(百合子)
큐레이터의 얼굴을 다시 자세히 본 다니엘은 마치 시간과 공간이 뒤엉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다시 일곱 살로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전시장 한가운데 서 있는 것만 같았다. 큐레이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는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와 너무나 닮은 이 여인은 어머니와 똑같이 부드럽고도 슬픈 미소를 지으며 다니엘을 보고 있었다.
“어째서 전시 이름이 ‘숨겨진 그림들(Hidden Paintings)’인가요?” 다니엘이 영어로 큐레이터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 네. 이 그림들은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한 카페 위층 창고에 보관된 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되물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무엇인가요?”
큐레이터가 설명을 이어갔다.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려면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꼭 아셔야 합니다. 그때 한국은 군사 독재 정권이 권력을 잡으려던 아주 어두운 시기였거든요. 광주의 시민들과 대학생들이 '민주주의를 돌려달라'며 거리로 나왔는데, 당시 계엄군이 이들을 아주 잔인하게 진압했어요. 정말 가슴 아픈 건, 국가의 총칼이 적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을 향했다는 거예요. 그 짧은 열흘 동안의 저항으로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160명이 넘고, 행방불명된 분들을 포함해 희생자가 수백 명에 달했습니다. 부상을 입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 속에 사신 분들은 수천 명이나 되고요.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서로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열흘 동안 민주주의를 지켜냈죠. 비록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려야 했지만, 이 희생은 훗날 한국이 민주화를 이루는 데 가장 거대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다니엘은 주의를 기울여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그 카페를 시민군들이 다친 상처를 치료하는 장소로 쓰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림들이 카페 창고에 쌓인 채 잠겨 있어서, 아무도 그곳에 작품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에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뒤편에 숨겨져 있던 창고에서 이 그림들이 나왔습니다. 이 그림들의 작가를 찾았는데, 1980년 전시를 위해 작품들을 가지고 광주에 갔다가 도시가 폐쇄되면서 그 이후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더군요. 전시를 준비하던 후배는 그때 세상을 떠났고, 이후로 이 그림들의 소재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2016년, 제가 작가와 협의 끝에 이 그림들을 모두 인수했습니다.”
다니엘은 40여 년간 광주의 한 카페 창고에 감추어져 있다가 이제야 세상 밖으로 나온 그림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왠지 모르게 친근하고 잘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림들 중 가장 큰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노란빛은 태양 같기도 하고 달빛 같기도 했으며, 우주의 초자연적인 광선이나 원자의 핵에너지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밑부분 한 귀퉁이가 찢겨 있었다.
“이 그림은 캔버스가 찢어졌네요… 보수하지 않고 이대로 판매하실 겁니까?”
“아… 네. 이 그림은 유일하게 창고가 아닌 카페 귀퉁이에 세워져 있던 작품입니다. 여기 작게 보이는 붉은색은 작가가 칠한 것이 아니라,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카페에서 치료받던 사람의 핏자국입니다. 어쩐지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아 그대로 걸었습니다.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의도적으로 찢은 그림 같은 느낌도 들고요. 작가가 찢은 게 아니라 역사가 찢은 그림인 셈이죠.”
큐레이터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눈을 감아도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인가…
“혹시 1950년대에 독일로 유학 간 고미희 씨를 아시나요?”
“예술가이신가요?”
“제… 제 어머니이십니다.
성공한 예술가는 아니지만 인사동에서 몇 번 전시를 하셨고, 저도 70년대에 어머니와 함께 동아화랑이라는 곳에 와 본 적이 있습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화가셨나요?”
“아닙니다. 조각가이십니다.”
“아직도 활동을 하시나요?”
“아니요… 1977년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가 일곱 살 때요.”
큐레이터는 잠시 다니엘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아… 네. 고미희 씨라는 성함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네… 유명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의 한국 가족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1940년대 말에 일본으로 가셨다가 독일로 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한국 가족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큐레이터는 안쓰러운 듯 미간을 조금 찡그리며 말했다. 슬픈 이야기를 할 때 눈썹을 찡그리는 그 모습조차 어머니와 똑같았다.
“그 당시 한국은 정말로 혼란스러운(Chaotic) 상황이었죠. 한국이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가난한 나라였다는 것 아시나요? 1940년대 말에 일본으로 가셨다면 부잣집 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큐레이터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의 웃음과 꼭 닮아 있었다.
“저… 이런 말씀 드리면 오해하실지도 모르지만, 제 어머니와 너무 닮으셨습니다. 정말 너무나 비슷하십니다.”
큐레이터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서양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이 모두 비슷하다고들 하죠… 아마 저와 스타일이 비슷하셨나 봅니다. 제 이름은 유리코(百合子)입니다. 일본 도쿄 출신의 큐레이터예요.”
유리코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니엘이 자신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다니엘 폰 클릿칭입니다. 독일 사람입니다.”
“성함에 ‘폰(Von)’이 들어가 있으니 귀족이시겠네요.”
갑자기 자신의 이름에 귀족의 혈통임을 증명하는 ‘폰’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쑥스러워졌다.
“네, 아버지가 귀족입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맞추어 그냥 다니엘 클릿칭이라고 불러주시는 게 편합니다.”
유리코는 다니엘을 보며, 그가 ‘폰’을 빼고 이름을 말한다 해도 몸 전체에서 배어 나오는 귀족 특유의 기풍(Aura)은 감출 수 없을 것이라 느꼈다. 180cm가 넘는 큰 키에 마른 체형, 갈색 머리와 눈을 가진 다니엘은 전형적인 유럽 귀족의 형상 속에 동양적인 우아함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다시 천천히 갤러리를 둘러본 다니엘이 말했다.
“이곳에 전시된 그림을 모두 사겠습니다.”
유리코가 웃으며 응대했다. “그렇게 사재기하듯 다 사버리시면 제가 가격을 책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씩 설명해 드릴 테니 천천히 감상하고 고르세요.”
다니엘은 조금 어색하게 대답했다.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돈은 걱정 마시고 가격을 책정해 주십시오.”
“예술 작품에 가격을 매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실 거예요. 마치 사랑하는 자식을 입양 보내며 얼마를 받아야 할지 계산하는 기분일 때가 많거든요.”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말하는 그녀를 보며 다니엘이 말했다.
“실례했다면 용서하십시오. 판매 가능한 그림들을 안내해 주십시오.”
“찢어진 노란 추상화 ‘우주의 근원’은 팔 수 없습니다. 그 외의 작품들은 저와 천천히 협의해 보시죠.”
“그 그림은 어째서 판매할 수 없나요?”
유리코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저는 돈을 벌기 위해서만 그림을 파는 사람은 아닙니다. 예술에는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차원들을 연결하는 마법이 있다고 믿거든요. 이 그림은 유독 이상한 마법이 느껴지는 작품이죠. 반드시 이 그림이 품고 있는 비밀을 알아내고 나서 경매에 부칠 생각입니다.”
다니엘은 마치 게임을 막 시작하려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말했다.
“저에게도 꼭 그 비밀을 알려주시고, 경매가 시작되면 꼭 초대해 주십시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 그림을 꼭 사야겠다는 욕망이 내부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팔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 네, 알겠습니다.” 다니엘은 수표책을 꺼냈다.
“첫 번째 그림부터 가격을 말씀해 보십시오.”
그 모습을 본 유리코가 말했다. “그림의 역사적 배경을 아시니, 클릿칭 씨께서 한번 가격을 정해 보시겠어요?”
유리코는 마치 도박을 시작하는 라스베이거스의 딜러처럼,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눈빛으로 다니엘을 보았다.
첫 번째 그림은 소품인 단색화였다.
"한국의 단색화군요. 크기가 작고 액자를 새로 해야 하며 바니쉬(Varnish) 처리도 다시 해야 하니 5만 달러를 내겠습니다. 이 가격에 액자와 바니쉬 작업 비용까지 포함해 주십시오."
유리코가 탁구 시합에서 공을 받아치듯 재빠르고 정확한 뉴욕 억양의 영어로 대답했다.
"액자와 바니쉬 작업까지 원하신다면 6만 달러는 주셔야 합니다."
다니엘은 유리코의 전문가다운 반응에 미소 지으며 수표책에 6만 달러를 써서 건넸다.
“계산은 모두 고르신 후에 한꺼번에 하시죠.”
유리코가 오로라 디아만테(The Aurora Diamante) 만년필을 꺼내 수표에 서명하는 다니엘을 보며 다니엘의 행동이 조금 거슬렸다.
이 만년필은 140만 달러 (20억) 가 넘는, 매년 단 한 사람에게만 판매되는 이탈리아 명품으로 30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가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이렇게 비싼 만년필을 주머니에서 꺼내고 수표책을 꺼내는 것이 마치 큐레이트를 돈으로 위협 히려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다니엘에게 이 만년필은 아버지가 주신 귀중하고 의미있는 선물이란 생각으로 항상 가지고 다니는 만년필일 뿐이지 실제적으로 이 만년필이 얼마나 비싼지 그리고 이 만년필의 다이아몬드가 진짜인지도 가짜인지.. 그런 생각을 따로 해 본 적이 없었다.
다니엘이 18세 성인이 되던 날 아버지 한스는 다니엘에게 다니엘의 이름을 만년필에 새기어 선물했다.
혼자 많은 것을 결정하고 중요한 일들을 엄마없이 혼자 해 나가는 다니엘에게 한스는 책임감과 돈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 이 만년필을 선물했다..
아버지 한스가 이 만년필을 줄때
“ 네 또래들이 절대로 가지고 다닐 수 없는 명품 만년필이다. 앞으로 서명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길태니 조심해서 잘 관리하고 이 만년필로 싸인 할 때마다 진정한 가치 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라”
다니엘이 유리코를 보며 말했다.
“저는 이렇게 작품 앞에서 예술가나 큐레이터에게 직접 수표를 건네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술과 돈이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에게 일깨워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죠.”
유리코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예술 작품이 돈이 된다는 건, 마법을 믿는 사람들이 하는 비밀 거래 같은 거예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시죠?”
다니엘은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과 예술은 그래서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마법이 일어나고, 그 가치는 그 마법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니까요.”
작품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다니엘은 전시된 대부분의 그림을 구매했고, 유리코와의 대화도 이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점점 더 어머니와 함께 갤러리를 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가족 같은 친밀함과 안도감이 느껴졌다. 갤러리의 그림들이 주는 편안함은 평생 그리워하면서도 가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고향 집에 와 있는 듯한 안식을 주었다.
“정말 찢어진 추상화만 빼고 거의 모두 구입하셨네요… 저와 사무실로 가셔서 진품 증명서 발행과 보험 처리를 진행하시죠.”
두 사람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나란히 서서 전시장 뒤편 사무실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정리된 사무실 책꽂이 한쪽 벽면은 영문 예술 서적들로 가득했다. 다니엘이 서적들을 둘러보던 중, 다시 한번 숨이 멎을 듯한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가 평생 만지시던 나무 소재의 소녀 얼굴 조각상이 책꽂이 한쪽에 놓여 있었다. 다니엘은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조각상 쪽으로 다가갔다.
“이… 이 조각은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너무나 놀란 기색이 역력한 다니엘을 보며 유리코가 말했다.
“아… 네. 그 조각은 제 어머니가 일본으로 입양될 때 가져오신 거예요. 제 어머니는 일본으로 입양된 고아 출신입니다. 두 살 때 지인의 딸이라며 입양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때 한국에서 가져온 생모의 유품 몇 가지 중 지금까지 제 곁에 남은 유일한 물건입니다. 어머니는 평생 자신의 생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일본에서 자라셨죠.”
다니엘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어내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듣다가 물었다.
“어머니가 일본으로 입양된 때가 몇 년도인지 아시나요?”
“1950년경이겠죠… 한국 전쟁이 그때 일어났으니까요. 그런데 왜 그러시죠?”
다니엘의 떨리는 손이 이미 조각상을 향하고 있었다.
“잠깐 이 나무 조각상을 보아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유리코가 조심스럽게 조각상을 들어 건넸다. 다니엘은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듯 조각의 구석구석을 돌려가며 천천히 살폈다. 그리고 조각 밑바닥에 새겨진 선명한 글자를 발견했다.
(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