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결혼을 꿈꾼 그녀는 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나

‘정상성 회복’이라는 허상에 집착했던 과거

by HASSE PARK


오래전부터 나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결혼을 하는 것이다. 애정 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즐겁게 딴딴다단 행진도 하고 축가도 듣고 피로연도 하는 그런! 진부한 결혼식을 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고리짝 시절에 유행하던 미국 틴에이지 영화 주인공이나 할 법한 소망이지만 나는 진지하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외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변명거리가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나는 레즈비언이기 때문이다.


레즈비언이란 무엇인가.


1. 표준국어대사전

레즈비언lesbian: 여성 동성애자를 이르는 말. 고대에 여성의 동성애가 성행하였다는 에게해의 레스보스섬과 관련지어 붙여진 이름이다.

2. 나무위키

레즈비언(lesbian)은 여성 동성애자를 일컫는 말이다. 보통 줄여서 레즈, L이라고도 말한다. 최근 비언이라 부르는 움직임도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걸 눈치챘다. 첫사랑도 초등학생 시절이었고, 첫 연애도 초등학생 때였다. 이 정도면 엘리트 레즈비언 코스를 밟은 것이라 해도 좋다. 그런 초엘리트 레즈비언이라 해도 처음부터 결혼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여자를 좋아한다는 건 응당 숨겨야 하는 일이었다. 이 감정이 나쁜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도 같다. 실제로 나는 나를 숨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누구도 나의 정체를 알아선 안돼, 라는 절박한 외침과 함께 하루를 살았다. 나의 존재의 일부는 어느 정도 은밀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 나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은 너무나 큰 리스크를 갖고 있는 일이라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실제로 정체성을 자각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이 큰 비밀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그동안 여자와 연애는 몇 번 했다. 그러나 그런 비밀들(내가 여자를 좋아한다, 나는 여자랑 사귀고 있다)은 여자친구와 나 사이에서만 통용되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비밀이었고 우리는 외롭게 둘만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어 그곳에서만 놀았다.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게 연애는 그 자체는 재밌지만 세상 전체를 따돌리고 비밀 속에 사는 고통이 수반된 행위였다. 나는 감내하고, 기꺼이 비밀을 지켰다. 허나 비밀을 갖는다는 것은 고독이라는 커다란 돌덩이를 목구멍으로 꼴딱꼴딱 넘겨야 하는 일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장 친한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그 뒤로 약간의 숨통이 트였다. 그러고 나서 유년기를 돌아보니 나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여자와 결혼이 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워 몰랐으나 되돌아보니 평생 함께할 사람과 서약을 맺고 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내 안에 있던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아직도 나는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이 꿈은 아직 사회적으로 품어지지 않는다. 나의 소망은 오롯 나 개인의 것이며(물론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오랜 꿈이다) 아직 명문화도, 법제화도 되지 않았다. 양귀자 작가님의 <나는 소망한다, 나에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제목에 잘 어울린다.


나는 정말... 정말 결혼이 하고 싶다! 여자친구랑 결혼 서약도 읊고 싶고 신혼여행으로 유럽여행을 가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걷고 싶고, 아주 예쁜 성당 앞에서 웨딩 스냅도 찍고 싶고 호텔에서 제공되는 'happy anniversary' 케이크도 받고 싶다.


내가 '식' 자체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셨다면, 정답이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결혼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 사회에서 결혼 생활을 상상하는 것이야 말로.. 자해의 일종이 아닐까? 결혼은 하고 싶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은 너무 막연하고.. 어렵고..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 속에서 살다 보면 결국에는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올바른 상대를 찾아서(미국 애들이 좋아하는 그것 말이다. right one) 식장에 손잡고 들어가면 만사 오케이라는 생각. 마치 수능 이후의 삶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고 점수에만 목메는 고등학생 같다. 대학교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하여 전혀 상상하지 못하지만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다 해결될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수능을 준비하는 경주마 같은 고등학생. 차이점이 있다면 수험생들은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지만 나의 경우엔 ‘미래’가 정말 존재할까?라는 불온한 의문이 나를 계속 괴롭힌다는 것이다. 걔네는 SKY에 입학하면 멋진 삶이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지만 나는 그냥, 그냥... 헛된 꿈을 꾸고 있다는 찝찌-입한 느낌을 애써 지우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럼에도,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갈망이라도 좋다. 아무런 청사진이 없을 때에도 (내가 어릴 땐 규지니어스님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결혼이 하고 싶었다. 남자랑 하는 결혼 말고, 나랑 여자친구랑 하는 그런 결혼. 따뜻하고 행복한 그런 결혼.






커가면서, 내 그런 소망이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점점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말했던 대로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주변 헤테로 커플들의 결혼을 보면서 결혼이 마냥 낭만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우선 결혼할 상대를 만나기 전에 내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외국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헤테로 커플, 게이 커플, 레즈비언 커플의 평균 수입을 비교해보았더니 게이 커플이 소득이 제일 많았으며 그다음이 헤테로 커플, 마지막으로 레즈비언 커플이 소득이 제일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마음이 아프지만 현대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임금 격차가 분명히 있다. 때문에 여자와 여자의 결합은 평균 소득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까 나는 결혼을 하던 안 하던 레즈비언으로 태어난 이상 그런 가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건 패배주의가 아닌 적확한 사실이다. 현실이 어떻든 간에 나는 위에서 언급했듯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딱히 야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는 그나마 무난한 선택을 했다.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고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그렇지만 적당히 사회적인 시선도 나쁘지 않은 직업. 공무원. 타인에게 나를 '공무원'이라고 소개한다면 그 큰 나의 비밀을 그쪽에서 눈치채기도 전에 '공무원'이라는 관습적인 이미지로 나를 평가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를 숨기기에 적당한 직업 같았다. 남의 눈에 돋보이고 싶지 않고, 몰개성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나에게 얼마나 적당한 직업인가. (저는 공무원 여러분들을 아주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건 저 개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소득이 월등히 나은 직업은 아니었지만 미리 말했듯 나는 큰 야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어차피 가난할 거면, 연금도 있고 잘리지도 않는 공무원이 났겠지. 안정성이 최고야’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공무원 사회는 아주 보수적이지만, 우리 전체 사회가 막 개방적인 것은 아니니 도긴개긴이라 괜찮겠지 싶었다. 어차피 오픈 퀴어로 살 것이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하던 어느 일정 부분은 나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뭐 공무원 복지 중의 최고라는 육아 휴직 등을 평생 쓸 수 없다는 것은 속이 쓰린 일이지만.. 일단 그런 건 합격하고 생각해야지. 하고 안일하게 공무원 시험의 세계로 들어갔다.


고시 공부를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고 우당탕탕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일들은 다 적지 않으려고 한다. 현재 공무원 시험의 인기가 줄어들어 응시생의 수가 급격히 사라졌다고는 하나, 수많은 공무원 준비생들이 쏟아내는 수기와 에세이가 흔해 빠졌고, 타인의 실패담은 본인한테나 의미가 있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처절하게 실패했다.’라는 말로 짧게 줄이겠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다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모로 성장했고, 배웠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아직 결혼을 생각할 만큼의 경제적인 자유를 얻지는 못했지만 결혼하고 싶은 상대를 만났으니 반절의 성공이라 하겠다.


모든 삶이 녹록지 않지만 레즈비언의 삶은 팍팍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자꾸 방어적으로 말하게 된다.) 공직에 종사하는 레즈비언도 참 많다. 예전에 다니던 레즈비언 홈페이지에 레즈비언 공무원 모임이 따로 존재했던 걸 보면 확실히 안정성을 추구하는 이쪽 사람들이 꽤 있다. 나도 그런 부류였는데 어쩌다 보니 전혀 안정적이지 못한 일을 하며 내 여자를 책임지려 애쓰고 있다. 내가 직면하려고 했던 ‘가난’은 허상의 적일까? 내가 추구하는 안정성도 손에 닿지 않는 무지개였을지도 모른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통해 소위 말하는 정상성을 회복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것은 유년기 정체성에 대한 죄책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 같다. 그놈의 정상성은 무엇이고, 결혼은 또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 허락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은 인간 존재의 본능일까? 그럼 나는 엄청나게 정상적인 사람일 것이다. 정상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나는 뭐 내 범위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작동한다. 그럼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공무원 시험을 다시 보고 싶을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고, 내 여자를 안정적이게 돌보고 싶고 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또 맞는 선택일 수 있다. 그렇게 또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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