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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Aug 29. 2024

예술가와 프리랜서 사이

예술가와 프리랜서 사이에서 갈등하던 시기에 써내려 갔던 글 입니다.

 "예술가는 돈을 못 벌지?" 누군가의 말이 나에게 큰 작용으로 남을 것이라 판단하여 나는 예술가라는 타이틀에 이따금 부담을 느끼곤 했다. 정작 예술가라는 타이틀은 마치 클래식 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하게만 느껴졌고, 그들이 생각하는 예술가인 앤디 워홀이나 피카소, 제프 쿤스, 김환기 등 거대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에 큰 스트레스였다. 나는 그들처럼 위대하지도 그들처럼 숭고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나에겐 그들의 입을 막을 또 다른 타이틀이 필요했다. 어쩌면 방패막이를 찾아다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둘 찾다 보니 적당한 것은 없었고, 그래도 나름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1인 사업가 혹은 프리랜서였다.

그때 심정은 마치 전장에서 방패막이를 꺼내든 사람처럼 안도했다. 그렇게 나는 프리랜서라는 칭호를 하나 획득한 셈이다.


 도피는 나에게 나름의 안정감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현실에 좌절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예술가로 가기 위해 다듬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그저 인정할 수밖에 없을 뿐이다.

 

 스스로를 프리랜서라 칭했지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별로 없었다. 우선 일을 구하는 방법도 몰랐으며, 도대체 프리랜서는 뭘 하고 다니는 사람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방패막이의 단어인 프리랜서를 조금씩 이해하고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다지 알 길이 없던 나는 SNS나 팟캐스트에 의존했다. 물론 전부 성공한 사례들과 현직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공간이었지만, 실패 사례와 힘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름대로 즐기며 듣곤 했다. 콘텐츠를 하나둘 읽고 듣다 보니 그것마저 대단한 것이었고, 오히려 예술보다 더 숭고하다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공부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깟 예술이 뭐라고 라는 말과 함께 가치에 집념을 보이는 나에게 경제적 논리를 끝도 없이 펼쳤다. 하지만 내가 프리랜서라는 방패를 택한 것도 비록 경제활동을 위한 것이지만 더 가치 있는 것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기에 그 논리가 나에겐 와닿지는 않고 오히려 더욱 생각을 고착하는 단계로 이끌었다.


 프리랜서로 내가 일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하니 제법 할 줄 아는 것들이 있었다. 다섯 가지 정도로 추리고 나니 가장 자신 있는 것이 영상편집이었다. 영상편집은 독학으로 시작해 어느덧 5년 이상을 해오던 것이었기에 자신이 있었고, 서둘러 포트폴리오 만들 구축을 세웠다. 포트폴리오가 하나씩 완성되며 드디어 나는 방패막이로 쓰려던 프리랜서의 자격을 얻은 느낌이 들었고,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인 예술 활동을 위해 수익화 구조를 구축했다.

 비록 이것이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나는 길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하나의 인간 도리를 할 수 있는 현실에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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