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반림 Sep 10. 2024

02. 멀어져 간 대화, 커져버린 이해

 가슴이 먹먹하고 아픈 것을 매번 참아야 했던 엄마는 나에게 위로 대신 가끔은 외면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정확하겐 몰라도 그나마 자신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던 내가 위로로 인해 무너질지 두려웠던 모양이다. 엄마도 나와 같은 자식을 둔 적이 처음이기에 어색했던 모양새였다. 엄마는 날이 갈수록 일이 더 많아졌다. 소풍이나 운동회 때면 나는 김밥을 싸간 적이 없을 정도로 엄마는 바빠졌고, 일과 상황은 점점 나아졌다. 그것이 원망이 되는 순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마도 엄마는 나와 누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어디가 아파 가는지도 채 모르고 일을 했던 것이었다. 내 기억으로도 항상 엄마는 어깨와 허리가 아프다고 했고, 나는 젊어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어물쩍 괜찮냐는 말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위로와 걱정하는 방법을 더욱 모르겠는 무뚝뚝한 가족으로 변해가는 우리 가족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항상 우리 가족 같은 가족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기에 변해가는 우리들의 모습에 처음으로 괴리를 느꼈다. 애석하게도 일이 잘되어 가는 상황 속에 우리는 서로 멀어졌다.


 점점 대화가 없어져 갈 때, 나는 음악이라는 것에 자연스레 빠져들었다. 정적인 것은 싫었지만 말할 용기도 쉬고 있는 부모님을 방해하기 싫었기에 충족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집에 아무도 쓰지 않았던 카세트를 방으로 가지고 와 이승기 노래를 내내 들었다. 이승기의 노래는 대체로 사랑 얘기였으나, 전부 이해할 수 없는 가사들이었지만 슬픔이라는 것 하나를 이해했기에 서정적인 발라드를 즐겨듣곤 했다. 그때부터 내 약간의 자유로움이 시작된 듯했다. 음악을 들으려 방으로 들어가는 날이 많았고 그 공간만큼은 제약이 없으니 더욱 혼자만의 생각과 자유로움에 대해 생각하며 어린 나이임에도 자립적 성향이 키워져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시간이 지나 점점 바빠지는 부모님과 자라나는 내 사이의 대화는 현저히 줄어들고, 학업과 운동으로 지쳐있던 나는 퇴근하는 부모님을 보지 못한 나날들이 더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날 학교에 가야 하는 나는 회사라는 개념을 잘 몰랐기에 늦는 퇴근 시간을 기다릴 여력이 없었다.


 엄마는 어린이집 원장님이었고, 아이들을 돌보고 다른 업무를 보고 오면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날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어린 시절엔 어린이집에서 어린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퇴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곤 했지만, 그 외의 일이 많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알기 전까진 나를 방치해두고 다른 어린이들만 챙기는 엄마의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곤 했다. 시간은 너무도 빨라 이제는 그 당시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니 그 당시 엄마는 많은 것을 그저 잃어가고 있던 가족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엄마라는 존재의 희생을 보고 자라온 한 자식으로서 가족이라는 단어는 매번 그렇지는 않지만, 가끔 너무 벅차다고 느낀다. 가족을 의미하는 희생, 나눔 등 다양한 단어들은 가족이라는 것을 가볍고 가깝게 느끼지 못하게 하는 단어들로 가득했다. 다들 개인으로서의 목적과 목표가 있었겠지만, 선택적인 선택으로 이뤄졌지만, 어느 시점이 지난 뒤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에 지쳐 울고 있는 누군가를 볼 때면 나는 가끔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구축한 가족이란 단어의 고리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연민을 느낀다. 엄마는 나에게 가장 강한 존재처럼 느껴진 인간이었지만 지금의 시선에서 엄마는 그저 여린 한 인간에 불과했다.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이전 02화 01. 빠르게 자란 마음의 그림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