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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Sep 10. 2024

04. 짐이 될까 두려운 마음과 작은 웃음

 결과와 마찬가지로 야속하게도 기도는 들어지지 않았다. 가족의 평화와 관계 회복은 아쉽지만 신의 뜻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약속된 이혼은 다행인지 아닌지 합의 이혼으로 쉽게 끝났다. 내가 학교에 있던 사이 엄마는 짐을 싸 외할머니댁으로 누나와 함께 갔다.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집에 남겨있던 아빠와 생활하게 되었다. 아빠는 나에게 이상하리만큼 부드러워졌다. 시간을 애써내 나와의 시간을 보내려 했고, 친척들마저 고작 나 하나를 위해 친척 누나까지 우리 집에서 지냈다. 나는 그런 내가 또 다른 짐이 되었다며 한탄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잠깐 근처에서 보자는 연락이 왔고 나는 나를 두고 간 서운함을 둘째로 미뤄두고 반가움에 빨리 나섰다. 엄마를 보자 눈물이 너무나 쏟아졌다. 아무리 그 끝엔 대화가 적어졌어도 엄마라는 존재는 보게만 해도 안도의 눈물이 나오는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엄마는 나더러 연실 사과하며 형편상 그렇게 결정됐다고 했지만, 그 얘기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그저 엄마를 만난 것에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하루하루 그저 양쪽에 짐이 되기 싫어 나다니며 생활하니 어느새 걸음은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선물했고, 모든 결정과 행동에 자유로움을 얻었다. 나는 그제야 부모의 이혼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배제될 수 있었던 이유도 나름대로 정리했다. 그 당시 철학책을 가까이했다. 세상을 빠르게 배워 좀 더 빨리 자립하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것이었다. 철학책은 나를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에서 고민하게 했고, 제대로 철학을 알려주던 이 없던 내겐 다소 충격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에 자유로움을 얻기 시작할 무렵 아빠가 나를 불러 세워 더 이상 나를 키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세상에 혼자 남겨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터라 생을 마감하길 원했다. 하지만 두려움은 나를 금세 지배했고, 두려움조차 어린 나에게 기회를 주듯 할머니에게 전화하게 되었고, 나는 엄마가 있는 외할머니댁으로 갈 수 있었다. 무거운 내 짐을 다 이고, 약 7km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가며 흘릴 수 있는 눈물을 모조리 흘렸다.


 도착하니 모두 밝은 얼굴로 편안해 보였다. 생각해 보면 아마도 슬퍼하며 오고 있을 내게 밝은 모습으로 반겨주고 싶었던 모양이었지만, 나는 그 모습에 스스로 짐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동안은 밥을 먹으라는 말을 할 때 빼곤 절대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학교에서 최대한 늦게 귀가했다.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갔다. 엄마의 얼굴에 주름이 하나 지는 것은 나였고, 또 다른 하나가 지는 것은 누나였던 모양이다. 다행히도 누나는 먼저 고등학생이 되어 예고로 진학해 엄마는 신경 쓸 것이 조금 줄었다. 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다. '절대 짐이 돼선 안 된다' 가 나의 10대 시절의 유일한 슬로건이었다. 그렇게 사춘기까지 온 나는 점점 자유를 원했고, 이혼을 통해 더욱 통제가 심해진 엄마는 고지식해져만 갔다. 사실 그것이 고지 식이 아니라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모른 채 지나쳤다.


 더 이상의 끝을 원하지 않는 엄마와 나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신 가끔 게임을 했다. 명절이 아니어도 윷놀이하고, 보드게임 같은 시간 소비적 게임들을 즐겼다. 그것은 특별히 어딜 놀러 가거나 여행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릴 적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을 생각할 때면 먼저 생각나는 장면 중 하나다. 어른이 된 나도 추억을 만들고자 하면 무언가의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맛집을 찾길 반복하며 살고 있지만 진정한 추억은 엄마가 알려준 집안에서 작은 웃음을 지으며 서로 마주 보고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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