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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Sep 10. 2024

05. 그날의 침묵, 엄마와 나 사이의 틈

 엄마는 나에게 비록 어릴 적 많은 추억을 알려주지는 못했지만, 세상에 더욱 도움이 되는 것을 빨리 알려준 셈이었다. 인생은 화려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화려함을 만들기 위해선 평범함을 이해하고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엄마는 그날의 게임들로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항상 엄마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인가 튀어나오는 말을 목구멍으로 숨기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혹여나 당시 내가 여러 사건 때문에 방황하진 않을까? 속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말을 숨긴 것 같았다.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음에 엄마의 노력을 존중했다.


 하지만 추억도 천천히 잊혀갔고, 자유로운 인생을 원했던 나와 이혼을 통해 안정적인 것을 추구했던 엄마는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란 나는 엄마를 닮아 무뚝뚝하고 다소 차가운 사람이었다. 감정적인 위로나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냉소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가졌다. 점점 갈등은 단단해졌고, 틈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굳어갔다. 대화의 끝은 항상 '인제 그만하자.'로 마무리 되어갔고, 자연스레 모든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했다. 나는 책에서 정답을 찾길 원하는 사람으로 변해갔지만, 그것은 내 나이에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던 나는 1학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 자퇴와 더불어 더 빨리 세상을 보길 원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서둘러 검정고시를 치르고 아주 빨리 고등학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자퇴의 가장 큰 이유는 집 안에서 내가 짐이 되는 것 같아서였다. 이상하게 나는 밖에서는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집에서는 열등감에 쩔어있었던 듯했다. 무엇인가 문제가 생기면 다 나로 인해 발생하는 것만 같고 그것이 점점 커져 짐을 치우기 위해 내가 없어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며 자퇴하고 집을 떠나길 원했다. 지금의 시선에서는 그때의 판단은 큰 오류였지만 당시의 내가 자라온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아니었고, 이혼하고도 넓은 집에 살았지만, 마음과 집의 풍요와는 다른 문제였다. 마음의 병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고쳐줄 사람도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은 다치게 한 것도 나 자신이었다. 스스로 만들어 준 병은 밖에선 웃음이 많은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지만, 집에선 정반대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가끔 감정에 지배를 당한다고 느끼는 순간들로 가득해 어떠한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한 연습을 많이 했다.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보고 문제나 허점을 찾기 시작했고, 타당한 이유를 들지 않으면 어떠한 말에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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