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반림 Sep 10. 2024

07. 자유의 대가, 고된 날들의 연속

 그 후, 곧장 간단한 짐만 챙겨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오른 버스에선 이유 모를 들뜸으로 가득했고, 두 시간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극단으로 향해 인사를 나눈 뒤, 바닥을 쓸고 닦는 것부터 카메오의 역할까지 맡았다. 어린이 극은 대체로 가족뮤지컬 같은 행사형 공연에 속한다. 고정적으로 몇 달을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 3일 정도 공연을 하고 자리를 옮겨 또 다른 행사나 백화점 문화홀에서 공연을 한다. 하지만 배우들이 대체로 김포의 세트를 만드는 곳에 가서 세트까지 직접 제작해야 했기에 나도 세트 제작하는 곳에서 망치질을 했다. 그러던 중 세트장을 운영하시는 분께서 낮에는 여기서 일하고 밤에 극단에서 일하면 어떠냐, 제안하셨고, 그래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구조가 생기는 것이기에 그렇게 하겠다 했다. 생각보다 일은 힘들었다. 낮에 세트를 만들러 가면, 연극 세트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종 행사장의 세트들을 모두 만드는 곳이었다. 그곳은 지금까지 내가 해본 모든 일 중에 가장 힘들다. 오죽하면 40대 아저씨들도 3일을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숙식을 해결해야 했기에 오로지 그 목적 하나로 버텨냈다. 다행히도 사장님은 공연이 있는 날에는 나의 일정을 맞춰 주셔 비교적 자유롭게 일했다. 당시 그 두 가지 일 모두 특수 직종으로 빠져 최저임금 기준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정말 적은 돈을 받았지만, 숙식의 문제가 해결되기에 버텨냈다.


 그렇게 첫 월급을 받곤 고향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은 역시나 학교에 다녔고, 적은 돈이지만 돈을 벌고 있는 나를 내심 부러워했다. 나는 돌아가고 싶었지만, 고작 한 달밖에 안 되었기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받은 첫 월급은 핸드폰 요금과 소량의 옷을 사는 곳에 썼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다. 독립을 한 후 첫 월급을 받아 경제적 자립엔 성공했지만, 그 후의 일상은 너무도 똑같았다. 낮에는 망치질 소리, 밤에는 대사와 음악 소리로 가득한 공간에서 보내는 일상은 하루도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은 내가 원하던 방식의 자유로움이 아니었고, 그저 세상의 굴레에 속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내 사상은 점차 그것에 만족하며 내 방식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구축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은 단 하나도 없지만 피, 땀 흘려 얻은 내 노력의 결실이었다.


 가끔 서는 무대는 너무나 좋았다. 누군가 내가 오른 무대를 봐주고 그것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어떠한 경험보다 짜릿함을 선사했다. 힘든 것들은 무대의 박수로 잊었었고, 주변에 같이 공연을 하던 선배들 덕분에 즐거움도 생겼다. 하지만 나는 그사이 발생하는 선배들의 갈등과 나의 위치에 대한 것들은 계산할 수 없었다. 나는 또다시 관계에서 회의를 느꼈다. 그 회의감은 사회 경험이 적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아세웠다. 그렇게 막상 얻은 자유 속 사회는 나에게 좌절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이전 07화 06. 무모한 용기, 그 첫 도전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