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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Sep 10. 2024

08. 육체는 집으로, 정신은 나만의 '배'로

 안 좋은 마음은 전신을 지배했다. 지쳐버린 나의 첫 독립은 그렇게 막을 내리는 것처럼 나를 압도했다. 경험이 부족했던 것일까 더는 버틸 힘이 없어 그만둠을 암시하듯 서울에서 생활을 정리했다. 다행히 올라올 때 짐이 별로 없었기에 내려갈 때도 짐이 많지 않았다. 고작 가방 두 개가 끝이었으니 말이다. 내 첫 서울에서 자립은 비교적 손쉽게 끝났다. 내려가는 기차를 타고 그제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뒤,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세 가족들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었다. 나는 도착해서야 그 소식을 알게 되었고, 다시 한번 내가 짐이었나 생각했지만 돌아오고 나서는 별수 없었다.


 엄마는 내가 3개월 만에 돌아오리라는 것을 마치 알고 있던 사람처럼 아무 말 없이 나를 대했다. 내심 걱정의 말과 내 안부를 궁금해해 주길 원했던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반응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밤낮으로 일하던 버릇 때문에 나는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책상 앞에 앉아 그동안의 일들을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가질 무렵, 예고를 다니던 누나가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떡볶이를 사 들고 집으로 왔다. 누나와 나는 평소 떡볶이를 즐겨 먹었기에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사 온 듯했다. 비록 그 떡볶이는 다 식은 채 도착했지만, 난 떡볶이 속 누나가 묻어둔 위로를 먹으며 따스함을 느꼈다. 가끔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 외동아들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지만 이런 날들이 있던 순간엔 남매가 하나 있다는 사실이 내심 좋았다. 의미가 따스한 떡볶이를 먹고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짧지만 일찍이 겪은 세상은 나에게 더욱 침묵할 것을 알려주었다. 침묵하는 것만큼 나를 가장 차분하고 받아들이는 길을 열어주는 수단이라 여겼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다. 나는 어느새 나만의 배를 만들고 내가 원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며 입은 굳게 닫는 연습을 했다. 그 공간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나름의 방어기제를 만들고 그 방어기제가 뚫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그쳤다. 관계에 여러 번 지친 나는 모든 다가오는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의심은 쉽사리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적용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방어기제를 만들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의심을 받는 지경이 다다랐다. 자신에 대한 얘기를 안 하다 보니 오해가 생기고 그걸 굳이 말하고 싶지 않던 나는 그 모든 관계의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굳은 내 입을 열려고 애썼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점점 엄마와 비슷하게 변해가던 나는 전혀 말할 기미가 없었다. 그런 모습에 지치셨는지 엄마는 점점 고지식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들을 수 없긴 했지만 듣지도 않고 '네가 틀렸어.'라며 꾸짖었다. 나는 전혀 동요되지 않았지만, 그 말들은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있었다. 만일 내가 그 전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상황들이 있었다면 이렇게 됐을까 하는 아쉬움은 점점 상처에 물을 붓는 식의 고통으로 남아서 갔다. 상처는 골이 깊어졌고 이젠 대일밴드 하나로도 부족했다. 생각보다 말로 입은 상처는 육체적, 정신적 상처로 발전했으며 그것은 몸과 마음 모두 아프게 했다.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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