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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Sep 10. 2024

09. 두 번째 붕괴와 존중

 나는 아픔마저 외면하며 더욱 내가 만들어놓은 나만의 '배'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나에게는 더 이상 무언가를 받아들일 이유가 사라진 셈이었다. 엄마의 걱정은 어느덧 과해져 압박으로 왔고, 강압으로 변했다. 자신의 의견만을 앞세워 미래를 결정하길 바랐으며 그걸 이행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 당시 엄마는 어린이집을 접고 학원을 차렸다. 엄마는 다른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는 것처럼 나에게 인생을 가르치려 했지만, 그 방법은 틀렸다. 공부는 정답이 있는 것이지만 인생은 정답이 없는 미로에서 각자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그 방식은 나에게 그저 압박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그때 나는 어느새 엄마가 앞에서 말할 때도 멍때릴 수 있는 지경이 됐다. 나름대로 들은 듯 안들은 듯 모르게 만들려던 방법이었지만 예리한 엄마의 눈은 속이지 못했다.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을 무렵 엄마는 누나와 내가 보는 앞에서 손에 칼을 들었고, 자신을 해치려는 자세를 잡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직도 그 장면을 생각할 때면 알 수 없고, 알고 싶지 않다. 다행히 상황은 누나의 만류로 끝났다. 모두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나의 고통을 이해하질 못했었다. 왜냐하면 그래도 우리 집은 이혼 가정임에도 벌이가 나쁘지 않았고, 외부에선 나름대로 본받을 집이라 여겨졌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실속은 이러했다. 우리는 그 어떤 물질적 가난보다 정신적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모든 마음을 알 순 없었지만, 내 마음만은 확실했다. 가족은 또 한 번의 붕괴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미 일전에 단련이 된 나는 그 붕괴를 짐작하고 차분히 대처할 방법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준비한 상태에서 붕괴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 나만의 길의 약도를 그렸다. 약도는 한 번의 실패로 제법 괜찮은 형태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혼자 있을 때면 자주 울것 같다. 언젠간 무언가에 사무쳐 구석에 위치를 잡고 울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날 나는 떨어지는 낙엽과 우리 집을 비유했다. 묵묵했던 감정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았다. 서서히 그렇게 오랜 시간 묻혀있던 안 좋은 감정들이 내 폐와 목, 옆구리 사이로 터져 나오려 하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흘릴 수 있는 모든 눈물을 쏟으며, 글을 적었다. 그 종이엔 반복적인 문장이 있었다. 그것은 '절대로 집으로 돌아오지 말자.'는 것이었다. 아마도 나는 두 번의 붕괴를 볼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첫 번째 붕괴는 최악이었고, 두 번째 붕괴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더욱 최악이 될 것을 미리 짐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서 엄마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내 입은 그제야 열렸다. 모든 말을 따지듯 물으니, 엄마는 당황했다. 왜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내 생각을 인정하지 않냐고 내 말에 엄마는 지금이라도 들어줄게 대답하라며 가볍게 말했지만 정말 모든 것을 들어줄 것 같았던 엄마는 나의 모든 말에 다시금 '틀렸다.'라며 대화를 종료시켰다. 그날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 붕괴의 정점을 찍었다. '저는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엄마의 인생을 존중하니 제 인생의 시작을 존중해주세요.' 내가 엄마에게 던진 마지막 말이었고, 엄마도 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합의하에 쓰러져 내릴 것 같던 붕괴를 잘 포장한 붕괴로 마무리 지었다. 그 후로도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은 지켰지만 각자의 인생을 잘 살다 서로를 존중할 수 있을때 회복하기로 하며 현실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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