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인사 한마디 없던 우리는 그간의 소통 교류가 없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친해졌다. 물론 한동안은 회사안에서 대화를 한 게 다였지만 말이다. 관계라는 것은 만들어지는 것 중 가장 종잡을 수 없고, 속도를 예측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로도 힘들다. 그 과정에서 창조적 현상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떠한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보다 아름다울 때가 있으며, 과정은 모두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든다. 물론 과정이 완료되어 관계가 형성되기 직전까지의 말이다.
그 사람들과 나의 관계도 그 아름다운 과정을 거쳐 빠르게 형성되어 갔다. 물론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는 점에서는 아쉽지만 말이다. 우리는 더욱 많은 고민을 나누고 더욱 많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공통점도 빠르게 찾았다. 우리 모두 말주변이 없어 대화의 맥을 끊는다는 점. 별것 아닌 공통점이었지만 침묵하면서도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관계가 형성되어서 그런지 대화를 못 하는 성격의 우리는 쓸데없는 말까지 하면서 많은 양의 대화를 이어갔고, 그것은 더 이상 회사에서만이 아닌 우리를 밖에서 만나게 했다. 막상 회사를 떠나 밖에서 만나니 생각보다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회사에서 거의 모든 대화를 나눴던 우리가 거의 각자의 이야기들이 소진된 상태에서 밖에서 만났으니 할 말이 딱히 없었다. 서로 말을 쥐어 짜내며 간신히 꺼낸 말들은 '그냥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어 볼까?'였다. 정적을 뚫은 말이 고작 가만히 있자는 거라니, 웃음이 피식하고 나왔다. 그 뒤론 정말 몇 시간을 가만히 각자 할 일을 하며 보냈다. 하지만 그 시간의 정적들이 어색하지만은 않은 기분이었다. 이미 관계는 모두 형성되어 침묵마저 그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관계를 위해선 많은 대화가 필수일 거라 여기겠지만 차원이 넘는 관계는 침묵을 유지한 상황도 괜찮을 때 생긴다.
점점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며 굳이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있으니 허기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식사는 참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저 허기를 달램이 아니라 친분을 인정하고 약간의 굴욕적인 찰나들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라 여겼던 나는 식사를 권하지 못하고 참고 있었다. 하지만 위는 내 머릿속을 알지 못하는 듯 연실 꼬르륵 소리를 내어 누가 봐도 배가 고픈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배에서 나는 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식사를 권했다. 약간의 미묘한 경계심이 있었기에 그 식사 자리는 다소 불편했지만, 생각을 아예 못 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체념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우린 여전히 별말을 하지 않았고 그것은 더욱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말하지 않고 밥을 먹으니 식사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후 각자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는 알았지만 좀 더 나은 대화를 위해 자리를 옮겼고 그제야 우리는 간단한 살아온 환경에 관해 이야기했다. 다행히 모두 객관적인 이야기를 즐겼기에 대화가 감성적으로 흐르진 않았고, 약간의 성찰적 대화를 이어갔다. 종종 인생의 선배들이 사회에서도 가족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 의아해하곤 했지만, 나는 그런 객관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과 가족 같은 사이로 발전했다.
가끔은 관계에 있어 침묵이 더 중요했다. 침묵은 관계를 완화해 주고 그 관계를 과하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그저 그런 지속성이 아닌 선으로 연결해 끊어질 수 없도록 만들어 준다. 선으로 연결된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기보단 침묵 속 내면을 보여주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식사는 보이지 않던 선을 진하게 만들어주는 매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