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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Sep 15. 2024

서운함, 안개 속의 대화

관계의 선과 속도, 그 미묘한 거리

 관계의 선을 연결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은 필요 없었다. 그것은 그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뿐, 곧음과 진하기를 판단하고 만드는 것 자체에 에너지를 쏟는 것만큼 쓸모없는 행위는 없다. 나는 우리들의 관계 지속을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일제히 금하고 있었다. 그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었고,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부터의 염려에서 멀어지게 했다. 서서히 그저 흐르는 대로 만들어지는 관계의 선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이상하게도 속 깊은 이야기들은 기억에서 금세 사라졌다. 오히려 아무런 목적 없는 그저 의식의 흐름에만 의지하며 이어간 대화만이 기억에 남았다. 예를 들면,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이야기나 '바다를 본적이 언제야?'라는 질문들 같이 할말이 없어질 무렵에 어쩔 수 없는 형태의 문장들 말이다. 가끔 이런 쓸데없는 질문과 대답은 머리를 식히는 정도로 가볍지만, 그것들은 취향을 나타내기도 하는 아주 가벼우면서 중요한 질문일 수도 있었겠거늘, 나에겐 그저 가벼운 농담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가볍게 내던져진 문장들을 주워 담으니 늦은 시간이 되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어 헤어지는 것은 당연하면서 아쉬움을 전하곤 하지만 사회적 가족이 된 우리는 전혀 아쉬운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다음날을 위한 관계적 옳음에 가까웠다. 개인적으로 관계라는 단어에 옳음과 틀림은 없다고 여겼지만, 그저 동료의 이상으로 구성되어 가는 입장에서는 관계에 옳음을 부여하는 것이 더욱 어울렸다. 다소 학습적 느낌의 단어는 자신의 인식을 구성하는 것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그것도 우리들의 선을 만드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것을 따지고 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과 달리 나는 여전히 마음의 벽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통상적으로 관계는 쌍방의 입장으로 시작되는 것이지만 그들과 나는 약간의 기울어진 형태로 시작점을 맞았다. 나보단 그들이 더욱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었고 그것은 '서운함'이라는 단어를 완성하게 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더 솔직한 내면과 자신들의 가족사, 학창 시절의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내 안의 벽이 허물어짐에 집중했지만 내 벽은 좀처럼 무너지질 않았다. 무너지지 않는 벽은 닫은 입을 열지 말라 말하는 것처럼 나는 여전히 침묵 속에 내 이야기들을 모두 가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나와의 대화에서 안개에 갇혀 앞을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과 동시에 찾아오는 궁금증에 허덕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 리 없는 나는 그저 안개처럼 유유히 앞을 가리고 있었다. 이처럼 비등한 관계가 아닌 어느 정도의 쏠림으로 발생한 관계는 닫혀있는 한쪽이 언제 그것을 여는가가 관건이다. 때로는 타이밍이 안 맞는다는 핑계로 그것을 합리화하며 쉽게 끊어내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건강한 정신이 아니다. 자신만의 타이밍을 고수하고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사회에서의 좋은 관계 형성, 미학을 위해선 어느 정도 타인이 가진 속도에 자신을 맞출 수도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들의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 문제의 요지를 찾으려 애썼지만, 당시엔 내 속도의 문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이제 나는 그들의 부모님의 이야기, 성함, 반려묘의 이야기 등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듣고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내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관계 지속을 위해 어느 정도의 벽을 허문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그나마 가장 간단한 음식, 좋아하는 영화 등의 이야기로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것이 먹힐지 안 먹힐지는 미지수지만 일종의 방어벽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굳게 닫힌 입이 열린 그것 자체에 기뻐했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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