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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Sep 21. 2024

방황하는 젊음의 착각

 이젠 미련 없이 떠날 채비를 마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일과도 관계에서도 모든 마음을 정리했다. 일종의 회피의 개념으로 남을 수도 있었겠지만 후회하기엔 많은 것들을 이미 놓쳐버렸다. 나는 젊기에 위로하며 젊음의 회피조차 당당함으로 여겼다. 실은 무언가로부터 그저 책임을 다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제일 큰 것 같았다. 방황하는 젊음은 한날의 기억일 뿐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고, 숱한 나날들의 만난 그저 그런 인연이었던 것으로 스스로 마침표를 적었다. 이젠 그 모든 마음을 전하러 가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슬픔이 앞에 깔리겠지만 그것마저 피하기엔 무조건 직면해야 할 부분이었다. 나는 회사에 먼저 힘듦과 더불어 그만두겠다. 의사를 전달했다. 그들 역시 같은 회사에 있었다 보니 내 그만둠을 직면했지만 왜인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내심 서운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부분에서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다가올 이별에 대한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일을 그만두려 짐을 싸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편했다. 애초에 이 일조차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었던 것. 처음부터 잘못된 매듭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날까지도 그 잘못됨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젊음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용기 내 문제를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비록 얼마 일하진 않았지만, 짐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열정으로 하지는 않았구나 내심 깨닫는다. 그들은 조심스레 내 옆으로 와 내 짐을 같이 챙겨주었다. 짐 정리가 끝나갈 무렵 그들 중 한 사람이 '이거 하고 내 것도 도와줘.'라는 말을 건넸고,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탱탱 부은 얼굴은 그 사람도 그만두었다는 것을 알게 했다. 나 역시 아무런 말 없이 그 사람의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왔다. 우리는 그렇게 전부 같은 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언젠간 그들이 그만두리라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타이밍이 참 묘했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앞으로 같이 다른 일을 구하자고 했지만 나는 이제 그 동네조차 싫었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들이 싫어졌다. 이유는 지쳤다는 것 하나였다. 더 이상 같이 무언가를 하고 사회에서 만난 가족이 되는 것은 별 의미 없이 느껴졌다. 당시 나는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내심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내 나의 힘듦을 전했다. '이젠 더 이상 같이 무언가를 하기 힘들어요. 저는 이제 다시 집으로 갈 겁니다.'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의 깔끔하고 정확한 전달, 상처받지 않을만한 문장의 구조였다. 그러나 감정은 내 예상과는 다른 법이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내가 당시에 어떠한 말로 종료를 알렸어도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녀들은 내 말에 눈물을 보이며 내 말을 재차 확인했지만 나는 확고했고, 그들과의 관계 지속에서 이탈했다.


 지금까지도 그날의 내 선택이 틀렸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마지막으로 그들과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가끔은 생각난다. 그날 대화를 종료하고 차에서 내렸을 땐 겨울이긴 했지만, 유난히도 추웠고, 그것은 아마 마음의 큰 공허가 찾아온 것이었다 추측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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